DVD 사업으로 시작해 'OTT 제국'으로... 넷플 창업자 명예로운 퇴장
넷플릭스를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로 키운 리드 헤이스팅스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 1997년 넷플릭스를 설립한 지 25년 여 만이다. 헤이스팅스는 DVD 대여 업체로 시작한 넷플릭스의 진로를 바꾸고, 오늘날의 콘텐츠 제국으로 성장시킨 주인공이다. 그의 퇴진으로 넷플릭스는 한 시대의 막을 내리고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게 됐다.
가입자 766만명 증가 발표한 날, "물러나겠다"
넷플릭스는 19일(현지시간) 테드 사란도스 공동 CEO와 함께 넷플릭스를 이끌던 헤이스팅스가 CEO직에서 물러나고, 그렉 피터스 최고운영책임자(COO)가 후임 CEO를 맡는다고 밝혔다. 헤이스팅스는 CEO 자리에선 내려오지만, 이사회 회장직은 유지한다. 아마존을 만든 제프 베이조스,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한 빌 게이츠처럼 다른 사람에게 CEO직을 넘기는 대신 이사회를 이끌며 경영진을 후방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헤이스팅스는 성명을 통해 "지난 2년 반동안 두 CEO(사란도스, 피터스)에게 경영권을 지속적으로 위임해 왔다"며 "이사회와 나는 지금이 승계를 마무리할 적기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또 "두 CEO와 이사회의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며 "자선 사업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넷플릭스 주가가 잘 유지되도록 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했다.
헤이스팅스는 퇴진 발표 시점을 신중하게 고른 것으로 보인다. 이날은 넷플릭스의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일이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작년 4분기 전 세계 가입자가 766만 명 증가했다고 밝혔다. 당초 시장이 예상한 457만 명을 훌쩍 뛰어넘은 수치로, 사상 처음으로 가입자가 감소한 지난해 1분기 이후 3분기 만에 반전에 성공했다. 헤이스팅스 입장에선 박수 받을 때 떠날 수 있는 상황이 된 셈이다.
중대 국면마다 승부수... 무광고 정책 포기 결단도
이날까지 헤이스팅스가 걸어온 길은 곧 넷플릭스의 역사였다. 그는 중대 국면마다 시대를 앞서가는 결정으로 넷플릭스를 적수 없는 OTT로 키워냈다.
넷플릭스는 1991년 소프트웨어 기업 '퓨어 소프트웨어'를 설립했던 헤이스팅스가 두 번째로 창업한 회사다. 초창기 넷플릭스는 매달 일정 금액(5달러)만 내면 넷플릭스가 보유한 DVD를 무제한으로 빌려볼 수 있는 서비스로 DVD 대여 시장을 빠르게 장악했다. 2007년엔 DVD 누적 주문이 10억 개를 돌파하기도 했다.
그러나 헤이스팅스는 사업이 정점을 찍은 그때 오히려 컴퓨터로 동영상을 시청할 수 있는 서비스를 새롭게 내놨다. 사업의 무대를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쪽으로 옮기면서 2011년 넷플릭스의 DVD 대여 수익은 2006년의 절반 수준으로 쪼그라들었으나, 전체 매출은 증가했다.
안팎의 우려 속에 2013년 처음 선보인 자체 제작(오리지널) 콘텐츠 '하우스 오브 카드'가 그해 미국 에미상 등을 휩쓰는 등 대성공을 거둔 뒤부터는 오리지널 콘텐츠에 막대한 투자금을 쏟아부었다. 이후 애플TV, 디즈니 플러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등 경쟁 OTT 서비스들이 우후죽순 생겨났지만, 넷플릭스가 여전히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 '오징어게임'같은 파워 콘텐츠의 힘이다.
지난해 상반기 처음으로 가입자가 순감소하자, 헤이스팅스는 24년 간 유지해 온 '무(無) 광고' 정책을 전격 포기하고 저렴한 가격의 광고 요금제를 내놨다. 그리고 이는 가입자 2억3,080만 명이라는 성적표로 돌아왔다. OTT 서비스 중 최초이자, 최대다.
퇴임 후 교육 자선 활동 힘쓸 듯
스스로 밝힌 것처럼, 헤이스팅스는 앞으로 자선 사업에 주력할 전망이다. 교육 자선 활동에 특히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그는 2007년 차터스쿨(대안학교 성격의 공립학교) 설립을 위해 100만 달러(약 12억 원)를 기부하기도 했다.
후임 CEO인 그렉 피터스는 최근까지 넷플릭스의 광고와 게임 사업을 주도했던 인사다. 피터스의 연봉은 300만 달러(37억 원)이며, 이에 더해 1,700만 달러(210억 원)에 이르는 스톡옵션과 1,400만 달러(173억 원) 이상의 보너스를 받을 예정이라고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전했다.
실리콘밸리= 이서희 특파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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