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AE 40조 투자 약속 등 ‘경제외교’ 성과에도 윤 대통령 말 ‘한마디’에 불거진 외교 후폭풍 첫 순방 땐 ‘비선 논란’…‘의전 실패’·‘구설’도 ‘가짜뉴스’ 문제삼아 초유의 전용기 제외까지
윤석열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UAE)와 스위스를 차례로 방문하는 6박8일 일정을 마치고 21일 귀국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순방을 ‘경제외교’에 초점을 뒀다며 UAE로부터 40조원의 투자 약속을 받은 것 등을 성과로 강조했지만, 윤 대통령의 ‘UAE의 적은 이란’ 발언에 대한 후폭풍에 밀려 무색해진 모양새다. 이 한마디로 양국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했다. 대통령의 말은 나라를 대표하는 외교적 언어이자, 특히 해외 순방에서는 국익·국격과 직결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신중했어야 한다는 지적을 피하긴 어려워보인다.
역대 정부에선 대통령 해외 순방을 지지율 상승의 호재로 여겼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서는 유독 논란이 더 부각되는 모습이다. 오죽하면 해외에 나설 때 마다 야권에 공격 빌미를 제공해 대통령 ‘순방 리스크’라는 꼬리표가 붙을 정도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순방에서도 윤 대통령이 “‘제2의 외교참사’를 불렀다”며 거세게 비판했다. “단세포적 편향 외교”, “국가 망신”, “차라리 외교를 하지 말라” 등의 고강도 비난을 쏟아냈고, 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외교라인 교체까지 요구했다.
◆‘비선’에 ‘의전 실패’ 등 논란 연발
윤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첫 순방이었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출장에 지인을 ‘민간인’ 신분으로 참여시켜 ‘비선 논란’을 자초했다. 대통령실은 적법한 승인을 받은 수행원 신분이어서 순방 동행에 문제는 없다고 해명했지만, 앞서 김건희 여사의 ‘사적 보좌’ 논란과 더불어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사조직처럼 운영된다는 의구심을 키웠다.
이원모 인사비서관의 배우자로 드러난 ‘민간인’ 신모씨는 대통령실 소속 직원이 아닌 상태에서 스페인 동포 만찬 간담회 행사 등 나토 정상회의 순방 행사 기획 업무를 맡았다. 지난해 5월에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 방문 당시 김 여사의 오랜 지인인 김모 충남대 교수와 김 여사가 대표로 있던 코바나컨텐츠 출신 직원들이 동행한 바 있다. 이후 대통령실 부속실에 최모 선임행정관이 윤 대통령의 외가 쪽 6촌인 것이 확인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영국 순방에선 엘리바제스 2세 여왕 조문일정이 현지교통 상황으로 취소됐다. 대통령실은 “일정 변경은 왕실과 조율했고 장례식엔 참석했다”고 해명했지만, ‘의전 실패’라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웠다. 당시 이를 두고 ‘조문’없는 ‘조문 외교’라는 지적이 나왔고, 대통령실에 대한 인적쇄신 요구가 빗발쳤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 후 대통령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여왕 이름을 잘못 쓰는 아찔한 실수도 벌어졌다.
◆정상회담 불발에…양국 발표 내용도 달라
정부는 지난해 9월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윤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질 것이라는 발표했지만, ‘48초 환담’에 그쳐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연준 금리인상, 한미 통화스와프 등 민감한 현안이 산적해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에 시선이 집중된 상황이었다.
‘48초 환담’ 이후 대통령실은 ‘한·미 정상 간 환담 결과’ 보도자료를 공개했는데, 이후 백악관에서 발표한 것과 차이를 보인 것도 문제가 됐다. 대통령실은 이 환담과 이어진 리셉션에서 우리 기업 피해가 예상되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대해 두 정상 간 논의가 이뤄졌다고 밝혔지만, 미 백악관 발표에서는 광범위한 우선 현안을 논의했다는 포괄적 설명이 있었을 뿐 인플레이션 감축법 관련 언급은 없었다.
이어진 한일정상회담도 약식으로 끝나며 실망스러운 결과로 남았다. 유엔총회를 위해 뉴욕을 찾은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맨해튼 유엔총회장 인근 한 콘퍼런스빌딩에서 약 30분동안 만났다. 한국 정부는 이를 ‘약식회담’이라 했지만, 일본 정부는 ‘간담’(懇談)이라고 규정해 서로 시각차를 드러냈다. 일본 정부의 간담 규정은 ‘사전에 의제를 정하고 진행한 정식 회담이 아니다’라는 일본 정부의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됐다. 회담이 끝난 뒤 모두발언도 공개되지 않았고, 취재기자단도 없이 진행돼 형식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일었다.
최근 청와대 의전비서관 시절 행사 준비 비화 담은 책 ‘미스터 프레지던트’를 출간한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대통령의 해외 순방 일정과 관련해 “정상회담이 아니라 자체 일정 하나라도 취소되는 건 아주 드문일”이라고 밝혔다. 탁 전 비서관은 “특히 상대국 정상과 회담이나 만남의 경우는 절대로 그런 (취소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며 “만나기로 했는데 못 만났다거나, 정식 회담을 하기로 했는데 환담에 그치면 그 책임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영방송 대통령 전용기 배제…‘언론탄압’ 지적
지난해 11월 동남아 순방길 직전 MBC 기자만 전용기에 탑승시키지 않은 것도 초유의 사건으로 기록됐다. 대통령실은 순방 이틀전 윤 대통령 미국 순방 중 욕설 논란을 MBC가 최초로 보도했던 것을 문제삼고, MBC 출입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순방을 마친 후 윤 대통령은 이에 대해 “우리 국가 안보의 핵심 축인 동맹관계를 사실과 다른 ‘가짜뉴스’로 이간질하려는 악의적인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라며 “대통령의 헌법 수호 책임의 일환으로서 부득이한 조치였다”고 말했다.
당시 전국언론노동조합‧한국기자협회‧방송기자연합회‧한국영상기자협회·한국PD연합회 등 언론현업단체들은 긴급성명을 내고 “윤석열 대통령은 반헌법적 언론탄압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대통령실이 권력비판을 이유로 특정언론사에 대해 취재 제한 및 전용기 탑승을 배제하는 것은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언론탄압이자 폭력이며, 헌법이 규정한 언론자유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라고 비판했다.
국제기자연맹(IFJ) 역시 이와 관련한 성명을 통해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비판적 보도에 근거한 언론 배제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한국은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를 수호해야 할 자랑스러운 역사를 갖고 있다”며 “MBC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계속된 공세는 위험한 선례를 남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제기자연맹은 전세계 140여개국 180여개 매체 소속 언론인 60만명이 가입한 세계 최대 언론인 단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