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토중래 나섰지만…전경련 회장 ‘돌연 사의’에 뒷말 무성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이 최근 사의를 표명한 배경을 두고 재계에서 뒷말이 무성하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옛 위상을 되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회장이 갑작스레 “쇄신이 필요하다”며 회장직을 내려놨기 때문이다. 윤 정부와의 ‘코드 맞추기’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이야기들이 흘러 나오는 이유다.
21일 재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허 회장의 사의 배경은 최근 윤석열 정부의 ‘전경련 패싱’이 주된 이유로 거론된다. 정부 출범 초기 전경련에 우호적이었던 정부의 태도가 최근 달라졌고, 재계 단체의 주도권 되찾기가 여의치 않자 회장이 거취를 표명한 것이란 얘기다.
문재인 정부 때 청와대·정부 행사에서 철저히 배제됐던 전경련은 새 정부 출범 이후 ‘권토중래’에 나섰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 대통령 당선자와 경제단체 수장들의 첫 회동을 주선하며 존재감을 과시했고, 이후 대통령실과 정부 행사에 빠짐 없이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윤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 땐 기업인 방문단도 전경련이 꾸렸다.
그런데 지난 12월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경제단체장 만찬 참석자 명단에서는 허창수 회장이 제외됐다. 지난 14일 시작된 윤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연합(UAE)·스위스 순방 때도 허 회장은 동행하지 않았다. 첫 국빈방문이어서 대규모 경제사절단을 꾸렸지만, 전경련은 아무 역할도 맡지 못했다. 아랍에미리트 일정은 한국무역협회가, 스위스 다보스포럼 행사는 대한상공회의소가 각각 조율했다.
윤석열 정부와의 ‘관계 회복’이 삐끗한 건, 대통령실 참모들의 ‘비토’가 영향을 끼쳤다는 후문이다. 대통령실은 이미 대한상의 등을 중심으로 재계 소통 창구가 재편된 상황에서 ‘전경련의 복귀’에 부담을 느낀다고 한다. 전경련을 탈퇴한 4대 그룹의 복귀 의사가 전혀 없는 상황이어서 명분도 실리도 없다는 것이다. 국회 대관업무를 담당하는 재계 임원은 “대통령실은 ‘(전경련을) 돕고 싶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는 기류다. 허 회장이 물러나면서 ‘쇄신’을 강조한 것도 이런 대통령실의 신호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말했다.
재계에서는 권태신 전경련 상근부회장의 행보에 주목한다. 모피아 출신인 권 부회장은 2017년부터 부회장을 맡아 사실상 전경련 업무를 주도해왔다. 한 재계 단체 관계자는 “새 정부와의 관계 회복에 권 부회장이 적극 나섰는데, 이 과정에서 이른바 ‘여의도 윤핵관’ 등 자신의 개인 네트워크와 비선을 통한 실력 행사가 많았다고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 인수위 시절 당선자와의 만남도 권 부회장이 여의도 네트워크를 통해 성사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권 부회장은 허 회장과 함께 동반 사퇴 의사를 밝힌 상태다.
대통령실의 ‘기류 변화’는 지난해 11월 전경련이 미국 헤리티지재단과 공동으로 주최한 ‘서울 프리덤 포럼’ 이후 가시화됐다. 이 행사는 윤 대통령이 취임 이후 강조해 온 ‘자유’ 이념을 핵심 콘셉으로 잡은 포럼이다. 애초 대통령의 참석 및 축사가 예정돼 있었지만, 행사 직전 대통령실 쪽에서 불참을 통보했다. 이태원 참사 직후여서 외부 행사 참석이 부적절하다는 게 대통령실 설명인데, 윤 대통령은 불과 이틀 전에 열린 중견기업의 날 행사에는 직접 참석해 격려사를 하고 시상도 했다.
전경련은 “서울 프리덤 포럼은 권태신 상근 부회장이 평소 헤리티지 재단 창립자와 인연이 깊어 행사를 준비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계 관계자는 “당시에도 경제단체가 보수 정치색이 강한 인사들을 초청해 자유를 주제로 포럼을 여는 게 부적절하다는 말이 많았다. 누가 봐도 순전히 대통령 코드에 맞춘 행사인데, 오히려 대통령과 참모들한테 부담을 준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과 전경련의 ‘악연’도 새삼 거론된다. 최 수석은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으로서 재직하면서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특검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는 등 곤욕을 치렀다. 당시 전경련은 미르재단 출연금의 모금 창구 노릇을 했고, 최 수석은 당시 안종범 경제수석의 지시로 그 심부름을 했다. 형사처벌은 받지 않았지만 국정농단 사건 연루 의혹 탓에 문재인 정부 시절 사실상 야인 생활을 했고, 윤석열 정부 인수위원회 경제1분과장으로 다시 컴백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건 수사를 총괄했던 특별검사팀 수사팀장이었다.
김회승 선임기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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