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치모터스, 사건번호 133호

홍사훈 2023. 1. 2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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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혐의에 대한 1심 재판 선고가 2월 10일로 예정돼 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는데 중요한 사실 한가지가 또 나왔습니다. 원래 이 사건은 2013년 경찰이 내사를 시작하면서 처음 혐의가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앞서 2012년 이미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에 이상 거래가 적발돼 조사를 받은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법정에서 공개됐습니다.

지금까지 금감원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관련해서는 조사한 적이 없었다고 계속 주장해왔습니다.
금감원은 왜 조사했다는 사실을 숨겼을까요? 법정에서 나온 말과 확인한 사실을 풀어보겠습니다.

지난해 11월 11일 재판에서 판사가 검사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판사: 이상거래는 한국거래소에서 자동으로 포착된다는데 그 당시엔 적발된 게 없었나?
검사: (2012년) 적발된 게 있었다. 도이치모터스 시세조종 관련해 남부지검까지, 금융조사부까지 의뢰된 게 있는데 수사로까지 진행되진 않았다.

그러면서 2012년 당시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에서 작성한 '사건번호 133호, 도이치모터스 불공정거래 조사자료'라는 보고서를 재판부에 참고자료로 제출했습니다. 경찰이 내사를 벌이기 이전에 이미 금융당국에 이상 거래가 적발돼 조사받았고 검찰에 수사 의뢰까지 됐다는 얘기입니다.

통상적으로 이상 거래가 있으면 한국거래소의 적발시스템에 자동으로 포착됩니다. 거래소에선 이상 거래 자료들을 금융감독원에 통보하고 금감원은 1차 적으로 문제가 있는 거래인지, 아닌지 자체적으로 분석합니다. 문제가 없으면 자체적으로 종결시키고 문제가 보이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데 이때 금감원에 파견 나와 있는 검사와 상의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합니다. 수사할만한 사안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위해서 말이죠.


당시 수사로 이어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법정에서 나왔습니다. 검사는 현재 도이치모터스 시세조종 혐의 피의자로 함께 기소돼있는 '김OO'가 거래한 데이터들이 2012년 당시엔 빠진 채 넘어와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검찰에 수사 의뢰까지 이어졌다는 건 매우 중요한 사안이기에 중앙지검에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검사가 법정에서 한 말이 사실인지, 또 수사로 이어지지 않은 정확한 이유가 뭔지 물었습니다.

중앙지검 공보관은 "2012년 당시 검찰에 수사 의뢰 들어온 것은 없었고, 검사가 법정에서 한 발언은 착오를 일으켜 잘못 말한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법정에서 검사가 구체적으로 "남부지검, 또 금융조사부로 의뢰가 왔다"고 말했는데 이걸 착오로 말할 수 있을까? 또 해당 검사는 공판뿐만 아니라 수사도 직접 했기에 누구보다 사안을 잘 꿰고 있습니다. 중앙지검 공보관의 답변이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검사 본인한테 확인한 건지 말이죠.

공보관은 "검사 본인한테 물어본 건 아니다, 수사 의뢰 들어온 기록이 없으니 검사가 착오를 일으켰다고 봐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매우 중요한 문제이니 검사에게 물어봐 달라,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냐고 했지만
중앙지검 공보관은 "검사에게 직접 물어봐 확인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습니다.

중요한 문제가 또 있습니다. 금감원이 이상 거래 혐의를 적발해 조사했고 2012년 보고서까지 작성했다는 사실을 숨겨왔다는 겁니다. 법정에서 검사는 "당시 거래 데이터에선 '김OO'의 데이터가 빠져 있어서 혐의 연결이 안 되다 보니 종결됐다"라고 밝혔습니다.

현재 재판 중인 도이치모터스 사건에서 검찰이 시세조종 혐의로 밝힌 거래는 7천여 건에 달합니다. 기소된 9명의 피의자가 동원한 계좌도 156개입니다. 지금 검찰이 보고 있는 거래 데이터나 2012년 당시 금감원이 봤다는 데이터나 똑같은 거래 데이터들입니다. 단지 2012년엔 피의자 가운데 한 명인 '김OO'의 거래 데이터만 빠져 있었습니다.

"단지 한 사람이 빠졌기 때문에 이상 거래로 성립이 안 된다? 지금 법원에서 드러난 내용 들로 본다면 '김OO' 그 사람이 빠진다 하더라도
이상 거래로는 볼 수 있는 여지가 다분히 있기 때문에 최소한 수사 의뢰까지는 갔어야 하는 거 아니냐. 이렇게 보는 게 합리적이죠"
<김득의 / 금융정의연대 대표>

금감원에서 당시 자체적으로 '혐의 없음' 종결시켰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김OO' 데이터들이 빠져서, 또는 당시 조사팀의 역량이 떨어져서 일 수도 있습니다. 금감원이 당시 조사해서 '무혐의' 결정을 내렸던 건 큰 잘못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왜 숨겼냐는 거죠. 이상 거래를 적발해서 조사했다는, 어찌보면 금감원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었다는 사실을 왜 계속 숨겨왔느냐가 중요합니다. 금감원은 그동안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혐의를 조사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주가조작과 관련돼서는 저희가 조사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검사한 적이 없기 때문에 관련된 자료가 없습니다."
<정은보 / 전 금감원장, 2021년 10월 7일 국정감사>

검찰이 금감원에서 확보해 재판부에 참고자료로 제출한 '도이치모터스 불공정거래 조사자료'란 제목의 보고서엔 '사건번호 133호'라는 금감원의 사건번호까지 붙어 있습니다. 아무리 10년 전 기록이라 하지만 이 기록을 찾지 못해서 조사한 사실 없다 말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더구나 검찰은 이 자료를 금감원에서 받았습니다.


검찰에 다시 물어봤습니다. "금감원은 당시 조사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고 말이죠. 중앙지검 공보관은 "금감원이 왜 그렇게 말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검찰이 법정에서 재판부에 참고자료로 제출한 자료는 한국거래소와 금감원에서 확보한 자료다"라고 확인했습니다. 금감원이 왜 경찰이 내사하기 훨씬 전에 이상 거래 사실을 적발해 조사했다는 사실을 숨겨왔는지 규명돼야 합니다.

다만 금감원은 2012년 당시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회장을 불러 조사한 사실은 있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주가조작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대주주 공시의무 위반'으로 당시 권오수에 대해 '경고' 조처를 내린 바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주가조작과 관련해서 조사했다면 그 주가조작에 대한 자료가 있었을 텐데. 거기에 따른 조사를 한 것이 아니고
보고 위반을 조사했다는 점이고요."
<정은보 / 전 금감원장, 2021년 10월 7일 국정감사>

2011년 6월, 당시 권오수 회장이 주식계좌에 자투리 돈이 있어서 도이치모터스 주식 23만 원어치를 매수한 적이 있었답니다. 대주주는 보유주식 변동이 있으면 바로 공시해야 하는데 23만 원어치 산 걸 공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금감원이 조사해 '경고' 조처를 내렸다는 겁니다. 그런데 당시 권 회장이 23만 원 주식 매수한 사실이 걸린 게 2011년 6월이었고, 경고조치가 나온 게 2012년 10월입니다. 대주주 공시의무 위반 조사하는데 1년 4개월이나 걸렸다는 겁니다.

사실 대주주 보유주식 변동에 대한 공시의무 위반은 범죄행위도 아니고 그리 큰 문제도 아닌데 이걸 조사하는데 이렇게 오랜 기간이 걸렸을까? 이때 주가조작에 관한 부분도 조사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1년을 끌어온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혐의에 대한 선고는 다음 달 10일 내려집니다. 검찰은 권오수 전 회장에게 징역 8년에 벌금 150억 원을 구형했습니다. 나머지 피의자 8명에게도 중형을 구형했습니다.
주가조작은 자본시장의 근간을 흔드는 중범죄이기에 형량도 높습니다.

현재 중범죄로 기소된 똑같은 사건을 2012년 금융감독원에서는 왜 혐의가 없으므로 자체종결시켰을까? 혐의를 입증한 만한 자료가 부족해서였는지?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가 있었던 건지? 조사했다는 사실조차도 밝히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규명돼야 합니다.

[관련 영상] https://youtu.be/S-sX9DUxVt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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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훈 기자 (aristo@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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