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총에서 나오고, 총은 당이 지휘한다”...시진핑의 군권 장악
송재윤의 슬픈 중국: 대륙의 자유인들 <63회>
푸틴, 시진핑, 바이든, 김정은... 누가 가장 큰 권력을 갖고 있나
1970-80년대 한국 어린이들은 태권브이, 마징가, 짱가, 그랜다이저 등 만화영화 로봇 중에서 누가 가장 강력한가 놓고 언쟁을 벌이곤 했다. 21세기 20년대를 살아가는 중장년 성인들도 비슷한 논쟁에 빠져들 때가 있다. “푸틴, 시진핑, 바이든, 메르켈, 수낵, 모디, 룰라, 김정은 등 세계 여러 나라 지도자 중에서 과연 누가 가장 큰 권력을 갖고 있나?”
이 질문은 “어느 나라가 가장 강력한가?”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후자가 경제력, 군사력, 소프트파워(soft power) 등 각 나라 국력에 관한 질문이라면, 전자는 권력자 일개인이 발휘할 수 있는 실권(real power)에 관련된다. 한 나라 지도자의 실권은 크게 ‘합법 권력’(legitimate power)과 ‘전제 권력’(despotic power)으로 나눠볼 수 있다. 여기서 합법 권력이란 한 나라의 지도자가 그 나라 헌법에 명시된 적법 절차에 따라 투명하고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공식적 권위’(formal authority)를 말한다. 반면 전제적 권력이란 통치자의 자의적 권한이다.
합법 권력만 놓고 본다면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갖고 있음은 분명하다. 행정력, 경제력, 군사력, 기반 시설, 소프트 파워 등 모든 면에서 현재 미국을 능가하는 국가는 없다. 반면 의회 및 사법부의 견제와 감시 아래 놓인 미국 대통령은 한순간도 자의적으로 권력을 오용하거나 남용할 수가 없다. 선거를 통한 권력 교체뿐만 아니라 감사, 문책, 기소, 탄핵 등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는 법적 장치가 두텁기 때문이다.
전제 권력 면에서 전 세계 지도자 중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을 들자면, 1등이 김정은, 2등이 시진핑, 3등이 푸틴일 듯하다. 김정은이 단연 1등인 이유는 북한의 “최고 존엄”은 “수령 유일주의”라는 일인 지배의 이념에 따라 국가권력을 제멋대로, 제 맘대로, 무제한 쥐고 흔들며 휘두를 수 있는 종신직 절대 군주인데다 이제 “책상 위에 핵 단추를” 올려놓고 만지작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의 “최고 존엄”은 자의적으로 고모부를 처형하고 친형을 독살하고, 인권을 유린하고, 군사 테러를 감행하고, 수십 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서도 보란 듯 멀쩡하게 절대 권력을 유지하는 전체주의 정권의 세습 전제 군주다.
전 세계 그 누구도 오늘날 북한의 “최고 존엄”처럼 막강한 대민 지배력을 행사할 수는 없다. 일례로 강력한 징집령에 저항하는 수십만 러시아 청년의 국외 탈출에서 보듯, 러시아 최고 영도자 푸틴의 권력 역시 한계가 명확해 보인다. 그렇다면 오늘날 중국의 시진핑은 어느 정도의 실권을 갖고 있는가? 미국 대통령과 북한 “최고 존엄” 사이에서 시진핑의 권력은 과연 어느 쪽에 가까울까?
중국공산당의 권력 기반은 당의 군대 ‘인민해방군’
오늘날 중국공산당의 권력 기반에는 “인민해방군”이 놓여 있다. “인민해방군”은 중국공산당이 창설한 당의 군대, 곧 당군(黨軍)이다. 국공내전 당시부터 그 군사 조직은 공군(共軍)이라 불렸다. 국민당의 군대는 국군(國軍)이라 불렸다.
1927년 8월 7일 서른네 살의 마오쩌둥은 후베이성 한커우(漢口)에서 열린 중공 중앙 긴급회의에서 전 단계 당의 운동이 실패한 원인 분석하면서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일갈했다. 1938년 그는 “전쟁과 전략 문제”라는 글에서 “당이 총을 지휘한다(黨指揮槍)”는 중요한 원칙을 천명했다. 국군의 위초(圍剿, 포위·토벌) 작전에 쫓기며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한 공군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원칙이다. 당이 존립하기 위해선 군대를 일으켜서 싸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최초에 정치조직으로서의 공산당이 있었고, 당이 내전을 거치면서 군대를 창설했고, 그 군대가 전국을 무력을 점령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웠다. 한마디로 “당이 군을 일으켜 국(國)을 세운”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마오쩌둥은 군대를 철통처럼 장악하지 못하면 정치권력이란 고작 허수아비에 달린 빈 깡통에 지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1962년 1월 “7천인 대회”에서 대약진 운동의 책임을 인정하고 행정의 일선에서 물러선 마오쩌둥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은 절대로 내려놓지 않았다. 문화대혁명으로 정치권력을 되찾는 과정도 보면, 국방부 장관 린뱌오(林彪, 1907-1971)를 측근으로 삼고 이후 후계자로 지명할 정도로 군권 장악에 혈안이 돼 있었다.
문화혁명 관련 재야 사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1962년 2, 3월 문혁 발발을 앞두고 우한에 머물던 마오쩌둥은 소련군의 침략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수도방위 부대를 몽골 및 소련과의 접경 지역으로 이동시킨 후, 그 틈에 랴오닝성 선양(瀋陽) 군구(軍區)의 정예부대를 움직여서 베이징을 포위하는 대규모 군사 작전을 지휘했다. 베이징 권력 집단을 위협하는 마오쩌둥의 무력 시위였다. 중국 학자의 표현을 빌자면, 병변(兵變) 혹은 군사 정변이었다. 문화혁명을 일으킬 수 있었던 마오쩌둥의 정치력 역시 총구에서 나왔음이 분명하다.
1978년 12월 이후 명실공히 최고 영도자로서 개혁개방을 주도한 덩샤오핑 역시 공산당 총서기나 국가주석 등의 직무 대신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붙잡고 있었다. 1982년 개정 헌법에 따라 그는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를 새로 창설하여 제1기 주석직까지 맡았다. 중국공산당의 “당군”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군”이 분리된 듯하지만, 양자가 실은 “중앙군사위”로 통합되어 있다.
이후 장쩌민 정권에서 후진타오 정권으로의 권력 승계는 공산당 총서기직 (2002년), 국가주석직(2003년), 중국공산당 군사위 주석직(2003년)이 이양되었고, 2004년에야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 주석직이 최종적으로 넘어갔다. 그런 이유로 장쩌민이 권좌에서 물러난 뒤에도 배후에서 태상황처럼 군림했다는 가담항설이 나돌았다. 중공 중앙의 권력 투쟁을 돌아보면, 병권을 장악하면 정권을 잡는다는 정치사의 통설에 들어맞는다.
시진핑 정권 출범 직후부터 군권 1인에게 집중시키는 제도 만들어
후진타오 정권에서 시진핑 정권으로 이양될 때는 단계적 승계가 아니라 일시에 모든 권력을 통째로 넘겨주는 전면 승계의 양상을 보였다. 시진핑 정권이 그만큼 강력하게 당과 군과 국가의 권력 기반을 장악했다고 할 수 있다. 시진핑 정권이 제3기로 연임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군사적으로 쉽게 설명될 수 있다.
시진핑 정권은 출범 직후부터 기민하게 시진핑 일인에게 군권을 더욱 집중시키는 군사 개혁을 추진했다. 1982년 개정 헌법에서 도입된 중앙군사위 주석 부책제(負責制=책임제)는 최고 영도자의 일인 지배를 기본으로 한다는 점에서 중공 중앙이 원칙으로 삼은 집단 지도체제와는 크게 어긋난다. 그 점에서 중앙군사위 책임제란 오랜 군사적 경험과 업적을 쌓은 덩샤오핑의 권력을 보장하는 제도였다고 할 수 있다. 시진핑은 다시금 중앙군사위 주석 책임제를 강화함으로써 군권 장악에 성공한 사례다.
시진핑의 반부패 운동 과정에서 후진타오 시대 군부의 영도자들이 제거되었다. 단적인 예로 쉬차이허우(徐才厚, 1943-2015)는 2014년 3월 수뢰 혐의로 구속되었고, 6월 출당 조치를 당했다. 궈보슝(郭伯雄, 1942- )은 2015년 7월 당원증을 빼앗기고, 2016년 7월 종신형을 선고받아 현재 복역 중이다. 이 두 사람은 2004년 장쩌민이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후진타오에게 이양해야 하나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을 때 장쩌민의 편에 섰던 인물들인데, 후진타오 시대 중앙군사위 부주석을 역임했던 중요한 인물들이었다. 군부의 권력 교체는 시진핑 권력 강화의 신호탄이었다.
시진핑은 2014년 10월 말 중국 군부의 기관지들은 중앙군사위 책임제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기 시작했다. 1) 당이 군을 지휘하며, 2) 인민해방군은 중앙군사위 주석의 명령과 지휘를 따르며, 3) 모든 국방 및 군사 문제는 중앙군사위 주석 일인에 의해 결정되며, 4) 인민해방군은 반드시 중앙군사위 주석의 명령을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실행해야 하며, 5) 중앙군사위 주석 책임제가 상기 모든 임무 완수를 지휘, 감사한다는 다섯 원칙이었다.
시진핑 정권은 인민해방군을 통제하고 감시하기 위해서 ‘중공 중앙 국가안전위원회(이하 국안위)’와 ‘국방 및 군대개혁의 심화를 위한 중앙 군위 영도 소조(小組)’를 신설해서 직접 관장했다. 국내외의 복잡다단한 안보 위기에 기민하게 대처하고, 군에 대한 당의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실질적 조치였다. 무엇보다 중국의 군사·방위·안보 체제를 당 총서기 일인에게 집중시켜서 인민해방군의 독자적 행동을 막기 위함이었다.
이 밖에도 시진핑은 2015-16년에 걸쳐서 인민해방군 30만 병력 감축하고 대대적으로 군부의 명령계통을 개편하는 파격 조치를 감행했다. 당이 실질적으로 군을 지휘하기 위해서 군조직 내부에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절차였다. 군권 장악의 노력은 제도에만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선전·선동 작업으로 확장되었다.
시진핑은 집권 초기 4년에 걸쳐 매월 평균 2회 각 지의 군부대를 직접 방문하고, 당 기관지를 통해서 “인민해방군 최고 통수(統帥)”로서의 위상을 선전했다. 군부대 당 위원회 회의실에는 마오쩌둥에서 시진핑까지 5명 군사위원회 주석의 인용문이 게시되었다. 군 기관지<<해방군보>>는 시진핑 주석에 대한 군의 무조건적 복종과 충성을 강조하는 선언문이 게재되었다. (더 상세한 내용은 Chien-wen Kou, “Xi Jinping in Command: Solving the Principal-Agent Problem in CCP-PLA Relations?” The China Quarterly 232 [2017]: 866-885 참조)
요컨대 시진핑은 집권 초기부터 군권 장악에 비상한 노력을 경주했다. 그는 군사위원회 주석 책임제를 강화하여 인민해방군 “최고 통수”로서 일인 지배의 군사적 기반을 확보할 수 있었다. 2022년 11월 시진핑 정권 제3기의 출범은 강력한 군권 장악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었던 극적인 권력 공고화의 과정이었다. 문제는 시진핑 일인 지배가 정치적 반대, 정책적 비판, 사법적 감시, 행정적 견제를 용납하지 않는 전제화된 통치라는 데 있다. 그 폐해를 바로 지금 중국 인민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코로나에 대항하는 ‘인민전쟁’의 실패... 중국 전역서 9억명 감염
2016년 전후하여 군권을 완벽하게 장악한 시진핑은 2020년 초부터 3년에 걸쳐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항하는 “인민 전쟁”을 펼쳤다. 단순히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중국 전역은 실제로 군사 훈련을 방불케 하는 전투적인 방역 봉쇄령에 시달려야 했다. 전국을 무균지대로 만들려는 비과학적 발상이었지만, 시진핑으로선 권력의 공고화와 집권 연장을 위한 최선의 방책이었는지 모른다. 결국 집권 연장에 성공한 후에야 경제 문제와 대규모 시위에 놀란 시진핑 정권은 하루아침에 180도 돌변해서 방역 해제를 선언했다. 그 결과 중화 대륙으로 통하는 팬데믹의 지옥문이 일시에 활짝 열렸다.
최근 베이징 대학의 한 연구에 따르면, 2023년 1월 11일 현재 중국 전역에서 9억 명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다. 감염자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을 꼽자면, 간쑤(甘肅)성 91%, 윈난(雲南)성 84%, 칭하이(靑海)성 80%이다. 방역 전문가들은 1월 23일 춘절(春節, 설날) 대이동을 전후해서 감염자 수가 최고조에 달한다고 예고한다. 비교적 의료시설이 좋은 도시 지역의 병원도 이미 포화상태인데, 심각한 문제는 낙후된 농촌 지역이 거의 무방비 상태라는 점이다.
날마다 방역 성과를 자랑하며 업적을 자찬(自讚)하던 중공 중앙은 더는 확진자와 사망자 총수를 발표하지 않는다. 중국 인민 모두가 일시에 병균과의 백병전에 투입되어 각개전투를 벌여야 하는 상황이다. 인큐베이터 속에서 무균상태로 양육되던 영유아들을 바이러스가 득실대는 세상 밖에 일시에 풀어놓은 격이다. 살아남은 자들만 다시 모여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이루자는 얘기인가?
시진핑은 지난 3년간 제로 코비드 “인민 전쟁”의 구호를 외치며 전국을 틀어막고 들쑤시는 “총력전(總力戰)”을 펼쳐왔다. 시진핑의 인민 전쟁은 허망한 실패로 끝이 났으나 그 과정에서 그는 권력의 공고화에는 일단 성공한 듯하다. 불행히도 이제 중국의 인민은 무정부 상태에서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출로를 찾는 “인민 전쟁”에 내몰려 있다. 정부 통제도, 의료 서비스도 믿을 수 없게 된 인민들 개개인은 위챗 앱 등을 사용해서 의약품 기부를 신속히 받아서 위급 환자에게 직접 전해주는 민간의 자구책으로 위기를 헤쳐 나가고 있다. 새로운 “인민 전쟁”은 바로 내일 1월 22일 춘절(春節, 설날) 전국적 대이동을 기해 절정에 달할 조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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