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이 갑자기 늘었냐고? [노원명 에세이]

노원명 기자(wmnoh@mk.co.kr) 2023. 1. 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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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전 국정원 압수수색이 이루어지고 있는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서울 사무실 앞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압수수색에 항의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물리력을 보유한 집단은 국군이다. 그러나 한국 군대의 물리력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쓰일 일이 없다. 한국은 쿠데타를 졸업한 지 40년도 넘었다. 계엄령이 발동될 일도 없다. 계엄령 전에 정권이 몇번은 고꾸라질 것이다.

현실적으로 대한민국 내부에서 가장 큰 물리력을 보유한 집단은 민노총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조합원이 100만명을 헤아리고 마음먹으면 경제를 올스톱시킬 수 있다. 정치 파업은 불법이지만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면 그 자체로 정권퇴진 운동이 된다. 그들은 어울리지도 않게 반미, 반일 집회를 조직하고 이끈다. 그들의 물리력은 늘 우리 체제 내부를 향한다는 것이 군과 다른 점이다. 그러니 군대보다 몇 배, 몇십배 무섭다. 박근혜 정권을 실제 끌어내린 힘은 어디에서 나왔나. 나는 민노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민노총의 일부 간부들이 북한과 접선을 하고 지령을 받아 정치 집회를 선동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물리력이 북한의 지휘로 작동했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북한의 지시로 총파업을 벌이고, 반미집회를 열고, 정권퇴진 운동을 벌이고, 대선·총선에 개입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민노총의 친북 성향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그 수뇌부를 오랫동안 NL 주사파들이 장악해 왔다. 그들의 성명이 북한 노동당의 그것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때도 자주 있었다. 그러나 친북은 친북이고, 간첩은 간첩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친북질은 할 수가 있다. 멍청한 사람들 중에 그런 친북자들이 꽤 된다. 잘못된 독서, 유치하고 오도된 민족 관념, 무식에 기원한 용감으로 북한을 두둔하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도 있다. 그러나 멍청한 것이 불법은 아니다. 가급적 그런 멍청이들이 나오지 않게 역사 교육을 똑바로 하는 것 외에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간첩질은 다르다. 그것은 이적이고 반역이다. 세상에 반역을 처벌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당연한 것이 반역을 그대로 두고서 살아남은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간첩질을 처벌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망할 것이다. 우리 국민 중에 친북은 아니지만 북한을 동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이고, 저 거지 같은 애들이 뭘 할 수 있겠어.’ 분명히 알아야 한다. 북한이 민노총만 제대로 부린다면 그들이 대한민국을 망하게 하는데 굳이 핵을 쓸 필요가 없다.

지난 정권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정원의 민노총 수사에 대해 이런 촌평을 내놓았다. “간첩 이야기가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는데, 갑자기 대한민국에 간첩이 급격하게 많아진 것인지 알 수 없다.” 이게 대한민국의 숙환이 아닌가 한다. 간첩에 놀라지 않는 병, 간첩보다 간첩 잡는 동기를 의심하는 병 말이다.

국정원은 간첩 잡는 조직이다. 그들이 이번 사건을 공개수사로 전환한 배경에 간첩 수사권을 계속 보유하려는 동기가 섞여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문제가 되나. 모든 조직은 조직의 유지를 위해 일한다. 진짜 문제는 국정원이 민노총의 간첩 혐의를 진즉에 포착하고도 지난 정권 눈치를 보느라 지금에 서야 터뜨렸을 가능성이다. 간첩을 보고도 잡지 못하는 나라. 모골이 송연해지는 얘기다.

간첩이 갑자기 늘었냐는 윤건영 의원의 비아냥은 섬뜩하다. 이유를 알만한 사람이 천연덕스럽게 묻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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