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1년’ 근로계약 맺은 평택 경비노동자들

정희완 기자 2023. 1. 2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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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통보 후 기자회견·1인시위 끝에 1년 재계약
3개월 계약하던 다른 경비·청소노동자들도 적용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평택안성지역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 등이 지난해 12월 30일 경기 평택의 한 아파트 앞에서 경비노동자의 3개월짜리 근로계약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평택안성지역노조 제공

[주간경향] 경기 평택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A씨(70)는 이번 설 연휴에도 하루는 근무를 서야 한다. 24시간 맞교대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만큼은 예전보다 가볍다. A씨는 지난해 12월 경비용역업체로부터 월말까지만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계약연장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자칫하면 우울한 설 연휴를 보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재계약이 성사됐다. 근로계약 기간도 기존 3개월에서 1년으로 늘어났다.

A씨만이 아니다. 같은 아파트에서 일하는 다른 경비노동자 7명과 청소노동자 3명도 1년짜리 계약을 맺었다. A씨는 “경비원들은 3개월짜리 계약을 ‘노예계약’이라고 부른다. 보통 입주민의 ‘갑질’을 말하지만 3개월 계약 자체도 일종의 갑질”이라고 말했다. 이어 “평택을 비롯해 전국의 다른 아파트에도 3개월 계약이 아주 많다. 이런 초단기계약이 개선됐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했다.

해고 통보에서 1년 계약 맺기까지

대부분의 경비노동자가 그렇듯 A씨도 그간 고용불안에 시달렸다. A씨는 2020년 9월 이 아파트에서 처음 경비일을 시작했다. 당시 용역업체와 1년짜리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2021년에도 같은 기간으로 두 번째 계약을 맺었다. 중간에 용역업체가 부도가 났다. A씨는 새로운 용역업체와 1개월짜리 계약을 맺었다. 이어 지난해 1월부터는 3개월짜리 근로계약을 했다. 지난해에만 4차례, 약 2년 동안 모두 7차례나 근로계약서를 썼다.

지난해 12월 A씨는 용역업체의 요구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다른 경비노동자 7명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계약을 맺기 전에 이뤄지는 ‘관행’이었다. A씨는 당연히 재계약이 이뤄지리라 기대했다. 김기홍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평택안성지역노조 위원장(평택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기간제 노동자에겐 특별한 사정 변경이 없는 한 근로계약이 갱신될 수 있을 것이란 ‘갱신기대권’이 있다. A씨도 그간 여러 차례 계약을 연장해왔기 때문에 이를 인정할 수 있었다”라며 “관행이라는 이유로 사직서를 요구해 제출받는 것은 이런 갱신기대권을 무력화하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많은 경비노동자가 계약 만료 전 사직서를 내는 실정이다.

A씨는 그러나 지난해 12월 21일 용역업체로부터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사실상 해고나 다름이 없다. 자발적으로 그만둔 다른 경비노동자 2명을 제외하면 A씨만 유일하게 재계약 대상에서 제외됐다. A씨는 노조에 도움을 요청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에서 말한 A씨의 해고 사유 가운데 핵심은 근무시간에 잠을 잤다는 민원이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A씨는 근무시간이 아니라 휴게시간에 정당하게 취침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A씨는 지난해 여름 휴게시간을 이용해 운영하지 않는 빈 경비초소에서 잠을 잤다. 이를 목격한 입주민이 근무시간에 업무를 게을리했다고 오해했을 가능성이 있다. 아파트에 경비노동자를 위한 휴게시설이 있긴 하다. 하지만 지하에 있는 데다 에어컨도 없어 여름이면 눅눅해 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고 한다. 실제 휴식을 취할 수 없는 ‘전시용 휴게시설’은 다른 경비노동자들도 겪는 고충 가운데 하나다.

A씨와 노조, 시민사회단체 등은 지난해 12월 30일 아파트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부당한 해고, 3개월 계약으로 인해 부당한 처우에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문제점 등을 입주민들에게 알렸다.

이에 용역업체는 A씨에게 올해에도 일단 출근하라며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한 달짜리였다. A씨와 노조는 지난 1월 2~3일에도 아파트 앞에서 1인 시위 등을 벌였다. 결국 용역업체는 A씨와 1년짜리 계약을 맺기로 하고 지난 1월 6일 계약서를 새로 작성했다.

“3개월 계약 확산, 제동 걸어야”

A씨는 그나마 고용불안을 덜 수 있게 됐지만, 전국의 많은 경비노동자는 초단기계약에 따른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특히 3개월 계약은 전국에서 확산하는 추세다. 김기홍 위원장은 지난 1월 9일 주간경향과 만난 자리에서 “3개월 계약으로 관리사무소장이나 동대표 등 누군가의 눈 밖에 나면 언제든 해고될 수 있다”며 “말을 잘 들어야 살아남는, 순응적 노동자상을 만드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김기홍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평택안성지역노동조합 위원장이 지난 1월 9일 경기 평택 사무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 정희완 기자

A씨는 노조 조합원이라 자신의 문제를 노조에 알려 대응 가능했지만, 노조에 가입한 경비노동자들은 아직 소수다. 다단계 간접고용 구조 등이 원인이다. A씨는 “경비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경비원의 처우가 열악하고 고용이 불안하다는 얘기는 들어왔다. 실제 일을 해보니 그런 문제들이 와닿았다”라며 “혼자 힘으론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아 노조에 가입했다”라고 말했다.

A씨 외에 다른 경비노동자 7명과 청소노동자 3명도 1년으로 근로계약을 했다. 청소노동자들 또한 그간 3개월짜리 계약을 맺고 있었다. 김 위원장은 “비조합원인 다른 경비·청소노동자까지 투쟁으로 혜택을 누리게 돼 보람이 있었다”라며 “노조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모범 사례가 전국에 널리 퍼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다만 A씨 등처럼 모든 아파트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일일이 대응하며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국회와 중앙·지방정부가 나서서 구조적 문제를 제도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김 위원장은 3개월 초단기계약을 두고 “심각한 상황이다. 제동을 걸어야 한다”라며 제도 마련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고용 승계를 의무화함으로써 고용의 연속성을 가질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라며 “법제화가 어렵다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1년 이상 근로계약을 맺도록 장려하고, 이런 아파트에는 최우선으로 지원하는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사무소장, 경비노동자 등이 모여 상생을 논의하는 토론회나 공청회를 여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고용이 안정되면 직업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그러면 주민들을 상대로 한 서비스의 질도 향상될 수 있다”라며 “이런 선순환의 모델이 생겨 널리 퍼졌으면 한다”고 했다.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22년 12월 20일 평택시의회에선 노조 소속 경비노동자들과 시의원, 평택시 주택과 관계자 등이 모여 간담회를 개최했다. 3개월 초단기계약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논의한 자리였다. 앞서 2022년 5월에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소속 시장 후보 측과 경비노동자들이 정책 협약식을 하기도 했다. 협약서엔 1년 미만 초단기계약 금지 등 고용안정 대책을 시행하도록 노력한다는 내용 등 5개 과제를 담았다.

김 위원장은 “평택시 주택과에 시의회 등과 함께 협의체를 구성해 경비노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기적 협의를 진행하자고 제안했다”라며 정치권과 지자체의 적극적인 대응과 함께 입주민의 관심도 촉구했다.

1년 계약을 체결한 경비노동자 등이 근무하는 경기 평택의 한 아파트 정문 앞에 지난 1월 9일 입주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 평택안성지역노조 제공

해당 아파트 정문 앞엔 평택안성지역노조가 내건 이런 내용의 현수막이 있다. “아파트 입주민 여러분 고맙습니다! 입주민과 노동자가 모두 행복한 아파트를 위해 함께하겠습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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