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평한 지구론’을 믿는 사람들…그들과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려면?
[주말 & 책] 토요일, 책을 소개합니다.
콰콰콰쾅! 굉음과 함께 로켓이 발사됩니다.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땅 위에서 솟구친 로켓, 지상에서 이륙한 지 불과 수 초 만에 점으로 보일 만큼 높이 올라갑니다. 하지만 이 로켓을 끝으로 '평평한 지구론'을 주장했던 마이크 휴스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스턴트맨으로 활동하며 지구는 평평하다고 주장했던 마이크 휴스, 그는 두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생전에 사제 로켓을 개발에 힘을 쏟았습니다. 일정 부분 성과도 거뒀습니다.
2018년, 자신이 제작한 로켓으로 시험 비행에 나서 570미터 상공까지 올라갔고 낙하산을 타고 무사히 귀환했습니다. 조금 더 개량된 로켓을 만들고자 했던 그는 2020년 2월, 이번에는 로켓을 타고 캘리포니아 사막에서 1,525미터 상공까지 올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그는 자신감을 드러냈고, 로켓은 힘차게 하늘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사고가 났습니다. 낙하산이 너무 일찍 펴졌습니다. 마이크 휴스는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의 나이 예순네 살이었습니다.
'무모한'(dare-devil) 마이크, '미친'(mad) 마이크로 불렸던 '평평한 지구론' 신봉자 마이크 휴스, 그가 로켓을 만든 곳은 특별한 공장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집 뒤뜰이었습니다.
엄청난 돈을 들여 개발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소형 승용차 한 대 가격과 비슷한 18,000달러, 한화로 이천만 원 정도를 들여 증기를 동력으로 삼는 로켓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평평한 지구론의 대명사 같은 인물이었지만, 평평한 지구론이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생전 언론 인터뷰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하늘 높이 올라가면 (공 모양의 지구가 아니라) 평평한 원반을 볼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뭘 정해놓은 것은 아니에요. 올라가 봤더니 만약 지구가 면이 아니라 공 모양이라면, 그러면 내려와서 말해야죠. '내가 틀렸나 봅니다. 지구는 공 모양이 맞아요.' 얘기해야죠."
지구에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관련 '학회'도 열립니다. 과학 부정론(science denier)을 연구해 온 철학박사 리 매킨타이어는 이들이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궁금했습니다. 과학과 기술 없이는 존재하기 힘든 현대 사회에서, 왜 과학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인지 그들의 진짜 얘기를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답을 알고 싶어 하던 리 매킨타이어 박사는 2018년, '평평한 지구 국제 학회(Flat Earth International Conference)'에 참석합니다. 평평한 지구론을 믿는 사람들이 무엇을 논하고, 어떤 얘기를 나누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이죠. 수백 명이 참석한 학회에서 그는 지구 평면설을 믿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그들의 논리를 들어봅니다.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에 관해 고민도 해봅니다.
만나보고, 연구하고, 리 매킨타이어는 평평한 지구론을 믿는 사람들과 접촉했던 경험을 글로 옮겼습니다. 그렇게 나온 책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지구가 둥글지 않다고 얘기하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우주선이 화성 사진을 보내오는 시대에 지구 평면설을 말하다니, 한눈에 봐도 기이한 사람들 아닐까?'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것도 선입견일 수 있습니다. 지극히 정상적으로 보였다는 게 리 매킨타이어의 얘기입니다. 그는 외계인의 (전파) 공격을 막아준다고 믿는 '은박지 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며, 평평한 지구론 신봉자들이 적어도 겉으로만 보면 특별할 게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또 이들은 '지구가 둥글었다면 노아 시대에 홍수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을 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종교적 관점만으로 평평한 지구론을 논했던 것도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이틀 동안 참석한 여러 세미나들의 주제는 대체로 이랬다. '둥근 지구 파괴자들', '과학으로 배우는 평평한 지구', '평평한 지구 행동주의', '나사와 사이비 우주론들', '성경이 전하는 평평한 지구의 증거 열네 가지', '가족과 친구에게 평평한 지구 알리기'. 이런 이야기들이 난무하는 곳에서 나는 꼬박 이틀을 견뎠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 p33~p34
과학적 사실을 무조건 부정하거나 비과학적 사실을 일단 믿고 보는 게 아니라, 이들도 논리를 따지고 증거를 말하면서 평평한 지구론을 주장했다는 것이죠.
리 매킨타이어 박사는 일부 평평한 지구론자들은 명확한 증거가 제시되면 신념을 바꿀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면서, 그와 같은 사람 가운데는 사제 로켓 개발로 이름이 났던 마이크 휴스도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휴스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그를 비판하지는 않으려 한다. 자신의 신념을 검증하기 위해 도전적인 열정과 헌신을 보였고 실패할 경우 승복하겠다고 약속한 모습이야말로 과학적 태도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평한 지구론을 주장하는 그의 동료들도 같은 태도를 보이는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 p42
평평한 지구를 믿는 사람들의 '논증하는' 방식을 알고자 했던 리 매킨타이어는 평평한 지구론을 말하는 사람은 물론 기후 위기가 거짓이라고 얘기하는 사람까지, 여러 사람을 만나봅니다. 다양한 접촉을 통해 그는 이들 과학 부정론자들에게서 일정한 유형을 발견합니다.
그에 따르면 과학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원하는 증거만을 선택적으로 골라내는 등 이른바 '체리피킹'을 하고 있었습니다. 반증이 발견됐어도 기존의 이론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 등 음모론에 빠져있기도 했습니다. 진짜 전문가는 무시하고 가짜 전문가에 의존하는 경향도 나타났습니다.
리 매킨타이어는 그렇기에, 이들을 진정한 과학의 세계로 '안내'하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 평평한 지구론 신봉자들을 모른 척하고 대화도 피해야 할까요? 리 매킨타이어는 그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과학 부정론자들이 여러 전술을 사용해 지구 평면설 같은 비과학적 주장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무시하고 조롱한다면 이는 적절한 해결책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책에서 과학사가의 말을 인용해 경청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지독한 회의론자이자 과학사가인 마이클 셔머(Michael Schermer)는 자신의 심도 있는 에세이 '잘못된 사실을 믿는 이들을 설득하는 방법'에서 다음과 같은 전략을 조언했다.
내가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은 이러하다. 첫째, 소통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배제해야 한다. 둘째, 토론하되 공격하지는 말아야 한다... 셋째, 상대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그의 입장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넷째,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 p16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그들이 말하는 내용이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으로 보일지라도 그들의 얘기를 먼저 들어봐야 한다는 것이죠. 존중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야만 대화가 이어지고, 대화가 이어져야만 비과학적 얘기에 솔깃했던 사람이 과학적 얘기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세상에는 음모론이 존재하고, 음모론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편견이나 선입견에 빠진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들에 관한 책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입니다. 하지만 이 책이 '평평한 지구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관한 얘기만을 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나만의 생각에 빠져 일관성을 잃은 사람들에 관해서도 얘기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전하는 사례들은 우리 모두의 얘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음모론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때로는 편견이나 아집에 빠져, 진실이 앞에 있어도 못 본 체하거나 별거 아니라고 하면서 기존의 '비과학적' 생각과 태도를 고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
리 매킨타이어 지음, 노윤기 옮김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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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기자 (inblu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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