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국립공원 탐방객과 사찰 간의 갈등을 일으켰던 문화재 관람료를 폐지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의 불편을 없애고 문화재 관리에 소홀함이 없도록 사찰 문화재 구역 입장료 징수 제도를 개선해 나가겠다”며 “궁극적으로는 문화재 관람료가 전면 폐지될 수 있게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관람료 징수를 고집하던 불교계가 입장을 바꾼 건 국가지정문화재 민간 소유자나 관리 단체가 문화재 관람료를 안 받거나 줄일 경우 그 비용을 국가가 지원하도록 한 문화재보호법 개정안이 5월부터 시행되기 때문이다. 이에 문화재청은 문화재 관람료 감면 지원 예산으로 421억 원을 책정했다. 조계종은 4월까지 연구 용역이나 당국과 협의 등을 거쳐 구체적인 관람료 개편 방안을 결정할 전망이다.
문화재 관람료는 어떻게 “산적 통행세”가 됐나
문제는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되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국립공원 내의 많은 사찰이 절 방문 여부와 상관없이 매표소를 지나는 탐방객 모두에게 문화재 관람료를 받았기 때문이. 이에 탐방객들은 “절을 들리는 것도 아닌데 왜 문화재 관람료를 내야 하느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지리산 천은사는 소송까지 맞붙을 정도로 문화재 관람료를 두고 가장 큰 갈등을 일으켰던 곳 중 하나다. 천은사는 절 바로 앞이 아닌, 1㎞여 떨어진 지방도로 옆에 매표소를 두고 1600원의 관람료를 받았다. 이에 천은사와 상관없이 지리산 노고단에 가기 위해 도로를 지나 차량도 돈을 내야 했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등산객들을 상대로 통행세를 뜯는 산적 단속법을 제정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오는 등 항의가 빗발쳤다.
2000년에는 참여연대가 ‘부당이득 반환 청구소송’을, 2013년에는 73명이 “관람할 의사가 없는 사람에게 관람료를 내야만 통행할 수 있게 한 것은 불법”이라며 낸 집단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양 측은 모두 천은사를 상대로 승소했지만, 관람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후에도 논란이 이어지자 환경부‧문화재청‧전라남도는 천은사 측과 협상에 나섰고, 결국 2019년 4월에 관람료를 받지 않기로 합의했다. 소송까지 이어진 천은사 통행세 갈등은 지난해 ENA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소재로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21년에는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해인사의 문화재 관람료 징수를 ‘봉이 김선달’이라고 비유했다가 불교계가 거세게 반발하면서 사과했다.
14개 사찰이 탐방로 입구서 관람료 받아
관람료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보리암이 1000원으로 가장 싸고, 경주국립공원의 불국사와 석굴암은 6000원으로 가장 많은 금액을 받는다. 탐방객이 많은 설악산(신흥사)과 오대산(월정사)도 탐방로 입구에서 각각 4500원과 5000원을 징수한다.
탐방객들에게 문화재 관람료를 받는 대신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기로 하면서 해묵은 통행세 갈등이 풀릴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과제도 있다. 특히, 문화재 관람료 감면분 지원의 30%를 지자체 예산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놓고 조계종이 반발하고 있다. 화엄사 주지 덕문스님은 19일 조계종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 회의에서 “현재 기재부에서 요구하는 사항대로 진행됐을 경우 문화재 관람료 면제에 대한 사항을 우리는 전면 거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는 “관계기관 협의체 운영을 통해 국립공원 내 사찰과 상생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