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북한의 음악공연의 의미…김정은을 말하다
신년 경축공연에서 남한 노래 '표절' 의혹도 제기돼
(서울=뉴스1) 강동완 동아대 교수 = 한국의 유명 걸그룹 노래를 표절한 북한 음악공연 관련 소식이 연일 화제다. 김정은이 관람한 지난 1월1일 신년경축대공연에서 연주된 '우리를 부러워하라'라는 곡은 한국 걸그룹 여자친구의 '핑거팁'과 매우 유사하다. 두 곡의 음이름을 비교하면 표절임은 더욱 명확해진다.
북한당국은 지난 2020년 12월 '반동사상문화배격법'까지 제정해 북한 내 한류를 철저히 단속하고 있다. 새세대들 사이에 유행한다는 한국 음악과 말투, 영상물 등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런데 정착 정치선전을 담은 기존의 유명한 노래에 남한 노래를 표절해 편곡했다. 이전 음악공연과는 분명 다른 양상이다. 그렇다면 북한에서 음악공연은 어떤 의미일까?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 주요 행사 때마다 반드시 음악공연을 개최했다. 북한은 음악정치라 표현할 만큼 음악공연을 주요한 정치선전과 체제결속을 위한 도구로 활용한다. 특히 김정은이 직접 공연을 관람한 경우라면 해당 공연의 의미와 내용은 더욱 중요 의미가 있다. 공연의 선곡과 무대 배경화면을 통해 정책 의도와 방향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김정일 시대 은하수관현악단, 보천보전자악단, 왕재산예술단을 비롯한 음악공연을 통해 정치선전을 극대화했다. 이를 '음악정치'라고 표현하는데 김정은 시대 역시 국보급 예술단체로 부르는 연주단을 통해 '김정은의 음악정치'를 이어가고 있다.
새로운 악단의 결성과 역할은 그 시대의 정치적 상황과 연관이 있다. 악단이 새롭게 결성되면 북한의 공식 언론을 통해 악단 결성의 의미를 발표하기도 한다. 특히 악단의 창단과정에 김정은이 직접 발기했다든지, 악단의 이름을 직접 지어주고 노래 선곡까지 지도했다는 선전도 빼놓지 않는다. 김정은 시대를 대표하는 악단은 <모란봉악단>, <청봉악단>, <삼지연관현악단>, <국무위원회연주단> 등을 들 수 있다.
북한 김정은 시대의 새로운 음악공연의 서막을 연 건 모란봉악단이었다. 지난 2012년 7월 세계는 '모란봉악단 시범공연'에 주목했다. 폐쇄국가, 통제와 억압으로 상징되는 북한에서 자본주의의 상징인 디즈니 캐릭터 인형이 공연 무대에 등장한 것이다. '원수의 나라'로 선전하는 미국 영화 <록키>의 한 장면을 무대배경으로 구성하고 주제곡도 연주했다. 지금까지 '제국주의 사상문화적 침투를 단속하고 퇴폐적이고 색정적인 자본주의 날라리풍을 엄격히 통제'했던 북한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변화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화려한 조명, 현대식 전자악기, 여성 단원들이 입은 짧은 치마와 어깨라인이 드러난 옷 등은 북한의 공연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형식과 내용에서 파격적이었다. 북한은 모란봉악단의 등장을 "혜성처럼 나타나 첫 막을 올린 공연"으로 표현했다. 김정은의 부인인 리설주가 처음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모란봉악단 시범공연 때였다.
모란봉악단에 이어 2015년 7월에는 또 하나의 국보급 예술단체로 불리는 청봉악단이 결성되었다. 모란봉악단과 마찬가지로 김정은이 직접 명명했고, 음악 장르와 편성, 연주형식과 소리형상 등을 직접 지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청봉악단 결성은 러시아 해외공연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이후 모란봉악단 공연이 점차 줄어들고 청봉악단 소속 가수들이 삼지연관현악단으로 소속을 바꾼 건 2018년 동계올림픽 축하공연을 위해 북한공연단으로 삼지연관현악단을 결성했다. 당시 이선희와 함께 'J에게'를 불렀던 김옥주는 북한 가수로는 처음으로 뮤직비디오까지 촬영하며 인민배우 칭호까지 받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모란봉악단과 청봉악단, 삼지연관현악단을 중심으로 한 북한의 음악공연은 지난 10여 년간 김정은의 음악정치를 구현하는 수단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전자악기와 세계적 추세를 강조하며 해외명곡 연주까지 선보였다. 공연에서 보여준 가수들의 자유분방한 행동이나 무대 의상, 조명, 방송장비, 3D 무대 등은 자본주의 양식의 상업적 콘서트나 쇼와 같은 형식이다. 외부정보를 철저히 봉쇄하면서도 이른바 '세계적 추세'를 강조하며 세계명곡 연주나 무용 등을 선보이는 북한 음악공연의 변화를 볼 수 있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 노래 등이 북한에 유입되면서 북한주민들의 문화 소비 행태도 달라지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북한당국의 감시와 통제를 벗어나 북중국경 지역을 통해 유입되는 이른바 북한에서의 한류는 북한당국의 문화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존에는 '모기장론'을 주장하며 외부정보를 무조건 막는 데에 급급했다면, 김정은 시대 들어 외부 콘텐츠와 경쟁할 수 있는 주체적 변화를 꾀하고 있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 속에 비쳐진 패션이나 상품 등이 밀수를 통해 북한 장마당에서 유통되고, 한국식 말투나 머리모양을 따라 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새세대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문화적 취향의 변화가 고스란히 북한 음악공연에도 반영되고 있다.
북한 음악공연은 '제국주의자들의 비렬(열)한 책동에 맞서 사회주의 사상을 지킨다'는 사상전 역할을 강조한다. 음악예술을 사람들의 건전한 사상의식을 마비시키는 도구로 전락시켜 "이색적이며 부르조아적인 사상문화를 우리 내부에 퍼뜨리려는 제국주의자들의 비렬한 책동에 맞서 혁명적인 예술단체들의 장엄한 음악 포성이 천지를 진감시키고 있다"라고 말할 정도다. 남한 문화에 빠져든 새세대들을 타깃으로 새로운 사상선전을 위해 음악공연이 바뀌고 있다.
김정은의 음악정치는 최근 김옥주의 뒤를 이어 신인가수로 등장한 정홍란과 김류경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홍란의 무대매너와 헤어스타일, 의상 등은 평양판 이선희라고 불릴 정도다. 장엄하고 무거운 분위기의 노래를 R&B형태의 발라드 풍으로 편곡과 리메이크 바람이 불고 있다. 김정은 시대 새로운 10년의 시작을 알리는 음악공연의 새로운 변화로 보인다.
음악정치로 대변될 만큼 북한 음악공연은 주요 행사의 성격을 극대화하기 위해 공연의 선곡, 내용, 구성, 형식 등에서 변화를 거듭한다. 북한의 음악공연이 해당 행사의 성격을 가장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진화하며 이는 곧 음악정치의 전형이다. 따라서 북한당국의 정책 의도를 분석, 예측하기 위해 북한 음악공연에 담긴 선곡과 무대배경, 그리고 출연진들의 면면을 지속적으로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한마디로 북한 음악공연을 보면 김정은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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