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와인] 리디아고 결혼식서 화제 된 ‘테 마타’... 운명적 만남이 빚어낸 에스테이트 샤도네이

유진우 기자 2023. 1. 2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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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運命)’이라는 단어는 함축적이다.

이미 벌어진 상황을 필연(必然)이나 숙명(宿命) 같은 말로 설명하긴 쉽다. ‘어떻게 하더라도 그저 벌어졌을 일’이라고 넘기면 된다. 그러나 이 설명에는 그 운명에 맞선 인간의 투쟁(鬪爭) 과정이나 승리(勝利)를 일구기 위해 기울인 노력이 빠져있다. 그저 운명이라는 한 단어로 이 지난한 이야기를 대체하기에는 아쉽다.

때로는 와인 한 병이 그 설명을 대신해 준다. 상대방이 건네 준 와인 속에 얽힌 이야기를 뜯어 보면 설득력 있는 답변이 나오기도 한다.

지난달 30일 여자 골프 세계 랭킹 1위인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25·한국 이름 고보경)와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아들 정준(27)씨가 30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들 부부는 결혼 답례품으로 뉴질랜드산(産) 레드와인을 선물했다.

이전까지 우리나라에서 뉴질랜드 와인은 화젯거리가 된 사례가 없었다. 하지만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이들이 제공한 뉴질랜드 테 마타(Te mata) 와이너리의 레드 와인 ‘콜레인(Coleraine)’에 관심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뉴질랜드는 널리 알려진 와인 생산국이다. 다만 실제 생산량으로 치면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입지가 그리 넓지 않다. 조사 기준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2021년을 기준으로 12~15위 수준에 그친다. 루마니아, 러시아, 브라질 같은 나라보다도 생산량이 적다.

뉴질랜드는 환태평양조산대에 속하는 섬나라라 지형이 험준하고, 화산이 많다. 지진도 자주 일어난다. 19세기 말부터 와인 양조용 포도 농사를 지었던 북섬은 면적 3분의 2가 산지와 구릉이다. 노동력만 충분하다면 험준한 지형은 포도농사에 치명적인 단점은 아니다. 하지만 뉴질랜드는 우리나라보다 3배 넓은 면적에 10분의 1 수준 인구가 살고 있다. 이 때문에 항상 고질적인 노동력 부족 문제를 겪는다.

이 와중에도 소비뇽 블랑이라는 화이트 와인 품종만큼은 뉴질랜드에 제대로 뿌리를 내렸다. 뉴질랜드산 소비뇽 블랑 가운데 가장 유명한 클라우디 베이 같은 브랜드는 2003년 LVMH(루이비통모에헤네시)가 인수했을 정도로 국제 시장에서 품질과 가치를 인정 받았다. 지금도 뉴질랜드에서 생산하는 와인 열병 가운데 여섯병이 소비뇽 블랑이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재배하는 레드 와인 품종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화이트 와인 품종 샤르도네는 뉴질랜드에서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했다. 당연히 세계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뉴질랜드에서 와인 생산은 1800년대 중반에 시작했는데, 이들 대표 품종들은 150여년이 지난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무명에 가까웠다.

그래픽=손민균

리디아 고와 정준 부부가 고른 테 마타는 이렇게 지지부진했던 뉴질랜드 카베르네 소비뇽과 샤르도네 재배 역사를 뒤바꿔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상징적인 와이너리다.

테 마타라고 처음부터 이런 품종을 잘 다루진 못했다. 1854년 테 마타를 처음 세운 영국 이민자 존 챔버스는 와인에 별 관심이 없었다. 당시 테 마타는 포도를 키울 수 있을만큼 널찍한 목장 단지에 불과했다. 마오리 언어로 ‘거인’이라는 뜻인 테 마타 이름도 이렇게 넓은 땅에서 비롯했다.

포도 농사는 1892년 프랑스에 유학 간 셋째 아들 버나드가 고향으로 돌아온 후에야 시작했다. 프랑스 와인 문화를 맛본 버나드는 목장 주변 언덕을 세 구획으로 나누고 포도나무를 심었다. 소와 말을 키우던 마구간은 와인 양조시설로 개조했다. 버나드는 품질보다 생산 설비를 늘리는 데 관심이 많았던 탓에 이 때 만든 테 마타 와인들은 썩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테 마타의 운명은 1974년 현재 주인 존 벅이 와이너리를 사들이면서 뒤바뀌었다. 영국에서 공부한 벅 가문은 와인 양조를 산업 측면에서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적 유산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했다. 벅 가문은 막대한 자본을 투자해 와인 품질을 높이려는 노력 뿐 아니라 프랑스 보르도 지역 귀족들처럼 와이너리 품격을 높이기 위한 도전에 나섰다. 건축가를 불러 아르데코 양식으로 건물을 짓고, 뉴질랜드에서 재배한 적 없는 가메(Gamay) 같은 새 포도 품종을 가져와 키웠다.

2013년 존의 아들 닉 벅이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르면서 테 마타는 한 차례 더 도약했다. 존은 영국에서 와인 공부를 하고, 프랑스 보르도 특급 와이너리 샤토 마고(Chateau Margaux)에서 인턴 생활을 하며 배운 선진 기술을 테 마타에 도입했다.

2002년산 테 마타 콜레인에 92점을 줬던 뉴질랜드 와인 전문 평론가 밥 캠벨은 닉이 CEO가 된 후 처음 내놓은 테 마타 콜레인 2013년산에 98점을 줬다. 답례품으로 주어진 가장 최근 2020년산 역시 와인 전문 매체 와인프론트로부터 98점을 받았다.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는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와이너리 다섯 곳을 꼽으면서 테 마타를 첫 손에 꼽았다.

그야말로 승승장구였다. 와이너리로서 테 마타는 벅 가문을 운명적으로 만난 후부터 양 뿐 아니라 질적으로 거인에 걸맞는 성장을 하기 시작했다.

운명같은 만남이 빚어낸 성공 신화라는 면에서 이 와인은 성공적인 결혼을 소원하는 답례품에 꼭 맞는다. 뉴질랜드 와인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프랑스 보르도 지방 고급와인에 필적할만한 품질을 뽐내는 점도 뉴질랜드 출신 여성 골퍼로서 세계랭킹 1위를 지키는 리디아 고와 잘 맞는다.

테 마타 에스테이트 샤도네이는 테 마타가 만드는 화이트 와인으로, 답례품으로 나온 콜레인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다. 750밀리리터(mL) 한 병에 100달러(약 13만원)을 넘나드는 콜레인과 달리 테 마타 에스테이트 샤도네이는 세금을 제외한 해외 평균가를 기준으로 20달러(약 2만5000원) 정도다.

그래도 뉴질랜드에서는 소비뇽 블랑에 밀려 제대로 입지를 확보하지 못했던 유명 품종 샤르도네(샤도네이)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려놨다는 점에 있어서는 답례품이었던 콜레인과 다를 바 없다. 저렴한 가격으로 테 마타가 쓴 성공신화를 느끼고 싶다면 이 와인이 제격이다.

테 마타 에스테이트 샤도네이는 2022 대한민국주류대상 신대륙 화이트 와인 3만~6만원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우리나라에는 젠니혼주류가 들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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