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내전에 사실상 '빗장'…설 명절 향수병 깊어지는 '재한 외국인'
"지치지만 포기 안 해…대한민국의 관심 필요"
[편집자주] 거리두기 전면 해제로 이번 설 명절은 그 어느 때보다 즐거운 분위기입니다. 많은 시민들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귀성길에 오르고 있지만 전쟁, 내전, 독재, 코로나19 재확산 등의 이유로 고향이 더욱 멀어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재한 외국인들입니다. 뉴스1은 그 누구보다 고향을 그리워할 그들의 목소리를 두 편에 나눠서 전합니다.
(서울=뉴스1) 박재하 기자 = "이번 설에도 집에 못 가요"
설 연휴를 앞둔 지난 19일 만난 우크라이나 국적의 A씨(35)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가족의 안전이 걱정돼 익명을 요구한 A씨는 "(전쟁) 전날까지도 실제로 전쟁이 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한국살이 12년째인데 하루아침에 난민이 됐다"고 했다. A씨 모국은 러시아의 침공을 받고 있다.
거리두기 해제 후 첫 설 명절을 맞아 들뜬 마음으로 고향을 찾는 시민들과 달리, 좀처럼 귀성길에 오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쟁, 내전, 반정부 시위 등의 이유로 국내 정세가 불안한 외국인들이다. 저마다 고향에 못 가는 이유는 달랐지만 가족과 조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모두 같았다.
◇"도착하면 체포될 수도"…불안에 못 밟는 고향땅
8년차 직장인 A씨는 2011년에 정부초청 장학생으로 한국생활을 시작했다. 공부와 직장생활에 바쁜 와중에도 A씨는 시간을 내서 2년마다 우크라이나를 방문했다. 그러다 코로나19 찾아왔고 지난해 2월에는 전쟁까지 터져 수백만 우크라이나인들이 고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
A씨는 "우크라이나에 입국하면 바로 징집돼서 한국으로 아예 못 돌아올 수도 있고 참전하러 가서 전사한 청년도 있다"며 "부모님과 통화할 때마다 포격 소리가 계속 들릴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2021년 10월 한국 유학길에 오른 미얀마인 김소연씨(24)도 이번 설 연휴에 한국에 남는다. 군부 쿠데타에 반대하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해 안전이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민정부가 무너진 2년의 시간동안 군부의 폭압으로 수천명의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고 내전도 발발했다.
가족의 안전을 위해 한국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한 김씨는 "뉴스에는 군부가 얼마나 죽였다거나 경찰이 시위대를 몇 명 체포했다는 암울한 소식밖에 안 올라온다"며 "시위에 참여한 적이 많아 미얀마에 입국하는 순간 체포될 수 있 어서 가족이 한국에 남으라고 한다"고 푸념했다.
경영전문가의 꿈을 안고 이란에서 온 아이사씨(24) 역시 귀성을 포기했다. 지난해 9월 히잡 미착용 혐의로 체포된 여성이 숨지자 히잡 착용 반대 시위가 시작됐고 이후 반정부 시위로 확산됐다. 이란 당국은 이를 '폭동'으로 규정하고 유혈 진압에 나섰다. 지난해 11월부터는 사형도 집행한다. 지금까지 5명의 시위 참가자가 처형됐다.
아이사씨는 "시위에 참여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경찰에 체포되거나 폭행당하는 경우도 있고 가족이 협박 받기도 한다"며 "친구들이랑 카페를 가거나 부모님이랑 시장을 가는 등의 일상생활이 가능하지 않을 정도다"고 설명했다.
◇"혼밥할 때 가장 보고파"…명절에 더 커지는 그리움
설 명절을 앞두고 가족을 향한 그리움은 더욱 커진다. 아이사씨는 "주변 친구들은 다 집 가는데 저만 못 가고 있을 때 제일 힘들다"며 "'영원히 서로를 만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아이사씨는 "정부가 여론을 통제하려고 인터넷도 건드리고 있어서 2주에 한번씩 밖에 통화하지 못한다"며 "안 그래도 못 봐서 답답한데 소식을 잘 듣지 못해서 더 보고 싶다"고 말했다.
고향에서 들려오는 일상적인 이야기도 이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A씨는 "우크라이나 뉴스를 보면 전쟁 외에도 연예인, 주식시장, 물가 같은 일상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며 "그런 것을 볼 때마다 한국에 오기 전 우크라이나 생활이 많이 그리워진다"고 전했다.
김씨는 "식당에서 다른 가족들을 볼 때마다 우리 가족이 많이 생각난다"며 "마라탕 가게에서 혼자 밥을 먹는데 옆 식탁에서 엄마랑 딸이 같이 먹고 있는 걸 보고 슬퍼졌다"고 회상했다.
김씨는 아버지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 김씨는 "아버지가 11월에 돌아가셨는데도 가지 못했다"며 "그때 엄마가 '네 잘못은 없다'면서 자책하지 않게 위로를 많이 해줘서 버틸 수 있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지치지만 절대 포기 안해"…시위·모금활동 나서기도
이같은 불안한 국내 상황에도 이들은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한국에 같이 남아있는 자국민들과 교류하며 모금활동과 시위에 나서기도 한다.
아이사씨는 주한이란이슬람대사관 앞에서 매주 진행되는 집회에 빠지지 않고 참여한다. 그는 "시위를 하면서 얼굴이랑 이름이 나와서 이란에 가면 체포될 수도 있다"면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이란 상황에 대해서 알수록 정부가 곤란해지기 때문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2년 가까이 바뀌지 않은 상황에 지쳤다면서도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군부에 맞서는 미얀마 시민군에 기부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과연 우리(시민군)가 이길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한번 시작했으니까 끝까지 싸우려고 한다"며 "나중에 무엇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배우는 것들로 미얀마가 더 발전할 수 있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A씨를 비롯한 우크라이나인들도 전쟁 초기부터 러시아를 규탄하는 시위를 조직하고 모금활동에 나섰다. A씨는 "전쟁은 정말 비극적인 일이지만 우크라이나인들끼리 모여서 더 단단해지는 계기가 됐다"며 "서로 몰랐던 사람들끼리 모여 슬픔을 나누고 국내 상황을 공유하면서 버티는 긍정적인 일도 있었다"고 전했다.
◇"대한민국의 관심이 큰 힘이 돼"
이들은 무엇보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관심이 큰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인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질수록 각국 정부가 이를 무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김씨는 "한국도 군부 독재라는 비슷한 역사가 있었던 만큼 미얀마에 관심을 많이 가져주고 우리가 이기는 걸 지켜보길 바란다"며 "각자의 역할을 하면서 다들 열심히 싸우고 있으니 지켜봐주면 감사하겠다"고 당부했다.
아이사씨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란에 대해서 이야기할수록 이란 정부는 더욱 외부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며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더욱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A씨 역시 "시위를 할 때마다 마지막 구호로 '대한민국 감사합니다'라고 외친다"며 "한국 뉴스에 우크라이나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한국인 대부분이 우크라이나 편이라는 걸 보며 많은 힘을 얻는다"고 고개를 숙였다.
jaeha6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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