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훈 “월북몰이 동의 못해” 박지원 “동기 전혀 없어”…‘공무원 피격’ 은폐 의혹 부인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라인 최고위급 인사들이 줄줄이 연루된 '서해 공무원 피격' 의혹을 둘러싼 첫 재판 절차에서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사진)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등 주요 피고인 모두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20일 뉴시스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부장판사 박정제·박사랑·박정길)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된 서 전 실장과 박 전 원장 등 5명의 첫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공판준비기일은 정식 공판기일과 달리 피고인의 직접 출석 의무가 없다. 이에 따라 이날 법정에 피고인들 모두 불출석했으며, 변호인들만 자리를 지켰다.
검찰의 공소사실을 진술한 뒤 이어진 혐의 인부 과정에서 피고인 모두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서 전 실장 측은 "사건 발생 후 공식 발표까지 보안유지 조치가 이뤄진 사실이 있지만 은폐를 위한 어떤 생각도 한 적 없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며, "월북 관련해서도 SI 첩보에 포함된 내용이었고 의심할 정황이 발견돼 확인하는 과정이었지 조작하거나 없는 사실을 만들어 '월북몰이'를 했다는 주장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 역시 "SI 자료 접촉 권한 자체가 없어 조작에 공모한 부분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월북 조작도 당시 상황에서 실제 자료를 토대로 말했고 단정한 것이 아닌 가능성만을 얘기했다"고 주장했다.
서욱 전 국방부 장관 측도 공소사실을 부인하며 "공소사실상 직권남용, 공전자 기록 손상에 대해 공모를 어떻게 했다는 것인지 입증된 바가 없다"며 "피고인 입장에선 피격과 소각사실 은폐에 동조할 아무런 동기가 없다"고 강조했다.
피고인들은 검찰이 제출하겠다는 증거의 양이 방대하고 중복되는 만큼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어려움이 있다며, 사건 관련 자료가 기밀에 해당할 가능성이 큰 만큼 재판 과정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전 원장 변호인은 "검찰이 일괄해 모든 피고인에 대해 증거를 하나로 해놓으니 6만 페이지 가까이 된다"며 "개별 피고인의 공소사실과 관계없는 증거가 훨씬 많다. 피고인별 제출 증거를 특정해달라"고 했다.
또 "검찰은 수사부가 전부 동원되고 파견 검사도 있지만 피고인 측은 변호인 1명으로 인원이 제한되니 재판 진행을 위해서라도 증거 분류를 고민해달라"고 검찰에 요구했다.
재판부 역시 "이 사건 관련 조직도, 자료, 진술조서 등에 군사기밀이 많을 것으로 생각되는 만큼 유죄 증거로 제출된다면 변호인 측도 내용을 파악하고 반대신문을 해야 하는데, 이에 대해 검찰에서 전향적인 방법을 강구해달라"고 주문했다.
재판부는 오는 27일 한 차례 더 공판준비기일을 이어가기로 하고, 양측 의견을 검토하고 증거 인부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 사건 기본 골조는 서 전 실장 주도로 사건 은폐를 시도했다가 언론 보도를 통해 관련 내용이 새어나가자' 월북몰이'로 방향을 바꿨다는 것이다.
서 전 실장은 2020년 9월22일 서해상에서 숨진 고(故) 이대준씨가 북한군에 의해 피격됐다는 첩보가 확인된 후 합참 관계자들 및 해경청장에게 보안유지 조치를 지시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혐의를 받는다.
같은날 피격 사망 사실을 숨긴 상태에서 해경으로 하여금 실종 상태에서 수색 중인 것처럼 허위 보도자료를 배포하게 한 혐의도 있다.
검찰은 서 전 실장이 사건 직후 열린 2020년 9월23일 새벽 1시 안보실장 주재 관계장관회의(1차 회의)에서 ▲구조하지 못한 책임 회피 ▲같은 시기 있었던 대통령 유엔 화상연설에 대한 비판 방지 ▲대북화해정책에 대한 비판 대응 등을 위해 사건 은폐를 지시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원장은 사건 1차 회의가 끝난 뒤 이 사건 관련 첩보 보고서 등 자료를 무단 삭제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서 전 장관도 해당 회의 직후 국방부 실무자에게 밈스(MIMS·군사정보체계)에 탑재된 첩보 문건의 삭제를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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