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큐비트 양자컴퓨터 나온다” 불붙은 양자암호 경쟁
삼성은 ‘포스트 양자암호’…27兆 시장
“글로벌 빅테크와 맞붙을 수 있는 분야”
“10년 후, 누군가 당신의 파일을 열어볼 것이 걱정된다면 지금 당장 양자암호 기술을 사용하라.”
아르빈드 크리슈나 IBM 회장이 지난 17일(현지 시각)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한 말이다. 크리슈나 회장은 “얼마 전 중국에서 372큐비트 수준의 양자컴퓨터면 현재 표준인 ‘RSA-2048′ 암호화 알고리즘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내용의 논문이 나왔는데,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어렵다”면서도 “400~1000큐비트 정도면 오늘날의 암호화 시스템을 깰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양자컴퓨터의 발전으로 현대 암호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양자암호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국내에선 KT와 SK텔레콤, LG유플러스 3사가 잰걸음을 하고 있다. 삼성은 양자컴퓨터로도 풀 수 없도록 복잡도를 대폭 높인 ‘포스트 양자암호’ 관련 특허출원을 2020년 기준 14건이나 냈다.
‘꿈의 컴퓨터’로 불리는 양자컴퓨터는 기존 정보단위인 비트보다 더 작은 큐비트로 작동된다. 미시세계에 통하는 양자역학에서는 물질이 여러 가지 중첩된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0과 1, 즉 온(on)과 오프(off)의 값만 존재하던 세계에서 벗어나 다양한 값을 동시에 표현하고 처리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자연히 슈퍼컴퓨터보다 폭발적인 연산력을 갖는다. 실제로 구글은 이미 2019년 단 53큐비트 양자컴퓨터로 슈퍼컴퓨터가 해결하는 데 이론상 1만년 걸릴 문제를 3분 만에 해치웠다.
1000큐비트 양자컴퓨터도 멀지 않은 이야기다. IBM은 지난해 5월 양자컴퓨터 기술 로드맵을 발표하고 올해 1000큐비트, 2025년에는 4000큐비트 시스템을 선보이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말에는 433큐비트 양자 프로세서를 발표했다. 2016년 5큐비트 양자 프로세서를 대중에게 최초로 공개한 뒤, 5년 만인 2021년 127큐비트 양자 프로세서를 발표했는데 이후 1년 만에 이보다 세 배 고도화된 프로세서를 내놓은 것이다. 2021년 66큐비트 양자컴퓨터를 공개한 중국과학기술대(USTC)도 2030년 500~1000큐비트급 범용 양자컴퓨터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양자컴퓨터의 발전 속도에 발맞춰 국내 통신사들은 양자암호통신 기술을 먹거리로 낙점했다. 양자암호통신은 빛의 가장 작은 단위인 광자에 데이터를 담아 암호화해 전송하는 기술이다. 송수신자 사이에서만 암호를 해독할 수 있어 보안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크게 ▲제삼자가 암호키 탈취를 시도할 경우 이를 감지하고 데이터를 변형해 해킹할 수 없도록 만드는 양자암호키분배(QKD) 방식과 ▲해독이 사실상 불가능한 수학적 알고리즘을 활용하는 양자내성암호(PQC) 방식, 두 갈래로 나뉜다.
KT는 지난 18일 제주국제대 학생회관과 제7공학관 사이 340m 구간에 양자암호통신을 활용한 무선 공유 플랫폼을 구축했다. 각 건물에 QKD 장비의 단일광자 송·수신부를 두고 문서 공유 플랫폼을 마련한 것이다. 이 플랫폼에서는 문서를 암·복호화해 주고 받을 수 있다. 앞서 국내 최장거리인 1km 무선 양자암호통신 시연에 성공한 KT는 이번 사례를 바탕으로 올해 무선 전송 거리를 10km까지 늘릴 계획이다.
SK텔레콤은 지난해 9월 SK브로드밴드와 함께 글로벌 가상사설망(VPN)에서 PQC 기술을 상용화했다.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PQC VPN 설치를 마친 뒤, 미국과 일본, 싱가포르 등지에서 네트워크 테스트를 진행했다. SK텔레콤은 2020년 세계 최초로 양자난수생성기(QRNG)를 장착한 단말기도 출시했는데, QRNG는 일회용비밀번호(OTP)와 달리 특정 패턴이 없어 해킹 위험을 봉쇄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유플러스는 지난 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막을 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박람회 CES 2023에서 PQC 기술을 적용한 커넥티드카 보안 기술을 선보였다. 지난해 10월에는 PQC 기술을 결합한 폐쇄회로화면(CCTV) 개발에 성공했다. 이어 11월에는 한국전력공사의 연구용 전력 통신망에 PQC 장비를 부착해 보안 능력을 실증하는 협약을 맺었다.
삼성은 여기서 더 나아가 포스트 양자암호 기술에 눈독 들이고 있다. 삼성SDS는 지난해 아시아 역내 기업 최초로 미국 표준기술연구소(NIST) 산하 사이버보안센터가 이끄는 PQC 전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아마존웹서비스(AWS), 시스코, 마이크로소프트(MS), 탈레스 등 극소수 기업만이 활동 중이다. 시장조사업체 스타티스타와 NIST의 자료를 종합하면 포스트 양자암호 기술의 경제적 가치는 2026년 27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는 전체 보안 시장 규모인 247조원의 11% 수준이다.
기업들의 열성에 정부도 팔을 걷어붙였다. 국가정보원은 이달부터 ‘양자암호통신 국가용 보안요구사항’을 시행 중이다. 양자암호통신 분야에서 나온 세계 최초의 정부 검증이다. 통신업계는 이 검증을 발판삼아 해외 시장 진출을 꾀하고 있다. SK텔레콤 등은 각국 정부 및 통신사와 협의 중이며, 조만간 가시적 성과가 나올 것으로 전해졌다.
박재일 특허청 인공지능빅데이터심사과장은 “암호 기술은 뛰어난 아이디어로 글로벌 대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분야다”라며 “양자컴퓨터로 차세대 암호 기술 시장이 열리는 만큼, 핵심기술을 확보해 사이버 안보 위협에 대비하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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