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으면 미래 없다…‘저출산 해결’ 직접 나선 민간 기업들

2023. 1. 2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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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글로벌·코나아이·블루포인트 등…한국의 인구 문제, 연구·지원 활동 속도 낸다

[비즈니스 포커스]

2021년 대한민국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된 데다 저출산까지 맞물리며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를 추월했다. 2021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총인구는 5173만8000명으로, 전년 대비 약 9만 명 정도 감소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사망자 증가 등을 감안해도 인구수가 감소한 것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처음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부분은 ‘합계 출산율’이다. 가임기 여성이 평생 아이를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말한다. 대한민국의 합계 출산율은 2017년 1.05%, 2019년 0.92%, 2021년 0.81%로 해마다 줄어들어 왔다. 2022년 기준 0.79%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합계 출산율 1%를 밑도는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암울한 미래 예측이 쏟아져 나온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층이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 인구 중 17.5%다. 이는 세계 기준 9.8%를 훌쩍 넘어서는 수치다. 고령화가 현실이 된 일본(29.9%)에 비해 낮지만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른’ 한국의 고령화 속도를 감안하면 훨씬 심각한 상황이다. 2070년 기준 한국의 65세 인구 비율은 약 46.4%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일본(38.7%)과 중국(36.9%)보다 ‘늙은 나라’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미래의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인구 감소’ 문제의 심각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기업들 또한 당장 ‘일할 사람’이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인구 문제’ 해결에 민간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민간 기업이 ‘인구 문제’ 해결에 이처럼 발벗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한미글로벌-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출범
“인구 문제는 정부와 기업이 함께 머리 맞대야 해결 가능”


건설 사업 관리 전문 기업인 한미글로벌은 지난해 10월 저출산·고령화 문제 대책 민간 연구 기관인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을 출범시켰다. 인구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해결에 기업이 나서야 한다는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됐다. 한미글로벌에서 출범한 민간 연구 기관이지만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은 별도의 법인으로 운영된다. 그만큼 한미글로벌과는 별개로 독립적인 연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022년 10월25일 저출산 고령화 문제 대책 민간 연구기관인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이 출범했다. 사진은 출범식에 참석한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원장(앞줄 우측 두번째)과 앞줄 우측 두번째부터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원장과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앞줄 우측 네번째), 정운찬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이사장(앞줄 우측 일곱째). 사진=한미글로벌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은 정운찬 전 국무총리를 이사장으로 영입했고 이인실 전 통계청장이 초대 원장을 맡았다. 무게감 있는 전문가들로 꾸려진 민간 연구 기관인 만큼 향후 ‘인구 문제’라는 난제를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이 향후 맡아서 이끌어 갈 프로젝트의 중추 역할을 맡고 있는 유혜정 박사는 “현재 한국이 마주하고 있는 인구 감소 문제는 도시와 기업 등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동안 부딪치는 여러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물론 정부 정책을 통해 해결 방법을 찾아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별 기업들 역시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바꿔 나갈 필요가 있다는 차원에서 연구원이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연구원은 2021년 10월 출범 후 본격적으로 어떤 연구들이 필요할지에 대해 우선순위를 검토하는 단계다. 인구 문제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 그에 대한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에 정책 건의도 할 계획이다. 하지만 그보다 민간 기업들의 차원에서 ‘가족 친화적인 기업 문화’ 혹은 ‘기업 내 직원들의 출산 관련 인식 점검’ 등의 연구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유 박사는 “인구 문제가 어려운 것은 여러 복합적인 요인들이 얽혀 있기 때문인데 이와 관련해 필요한 구체적인 내용들을 하나하나 파악해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정부 차원에서 ‘가족 친화 기업 인증 제도’가 시행된 지 이미 오래다. 다만 이 제도가 더욱 탄탄하게 자리 잡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효과를 따져보는 과정이 필수다. “‘가족 친화 기업’으로 인증받은 기업과 받지 못한 기업 사이에 유의미한 출산율의 차이가 있을까”와 같은 질문들이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은 앞으로 이와 같은 ‘실질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가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유 박사는 “인구 문제라고 하면 모두들 막연하게 ‘심각하다’는 정도만 인지하고 있지만 기업 차원에서는 당장 노동력 부족과 직면할 수 있는 매우 시급한 문제”라며 “앞으로 연구원에서 진행하는 연구 결과들은 오픈 아카이브를 통해 외부에서도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할 예정인 만큼 인구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많은 기관에서 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네트워크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코나아이-‘대한민국의 붕괴’ 전문 서적 발간
“인구 문제 해결 열쇠는 여성, 일 vs 육아 선택 안 해도 되는 사회 만들어야”


지역 화폐 플랫폼 코나아이는 향후 인구 문제가 미칠 영향력과 관련해 ‘대한민국의 붕괴’라는 전문 서적을 출간하며 화제를 모았다. 풍부한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급속한 경제 성장의 기적을 이룬 대한민국이 ‘인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붕괴될 수도 있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이 책이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현재의 인구 문제가 향후 우리 사회에 얼마나 거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매우 자세하고 광범위하게 진단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과 같은 저출산 기조가 지속된다면 학교는 사라질 것이고 공장은 멈출 것이다. 내수 시장이 붕괴되면 사회 갈등이 더욱 폭발하게 될 것이다. 부동산부터 금융·제조업까지 인구 문제는 거의 모든 산업과 맞닿아 있고 따라서 지방 소멸은 물론 대한민국의 국가 경쟁력 또한 약화될 수밖에 없다.


지역 화폐 플랫폼 코나아이는 인구 문제를 다룬 '대한민국의 붕괴' 책을 펴냈다.


관련 연구를 직접 집행하고 책을 집필한 곽미애 박사는 코나아이의 시스템다이내믹스팀에 소속돼 있다. 곽 박사는 “시스템다이내믹스는 IT 시뮬레이션 방법을 활용한 미래 예측 프로그램의 하나로 처음부터 인구 문제에 관심을 둔 것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미래 예측과 관련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향후 대한민국 미래의 가장 큰 변수인 인구 문제를 빼놓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곽 박사는 “‘인구 문제’를 중심에 놓고 연구를 진행하면 할수록 이 문제가 대한민국의 미래에 얼마나 심각하고 중대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문제인지를 체감하게 됐다”고 부연 설명했다.

지역 화폐 플랫폼과 인구 문제는 언뜻 보기에는 별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곽 박사는 “인구 문제는 향후 한국 산업 전반에 영향력을 미칠 문제이고 그중 가장 먼저 타격을 받게 되는 곳은 기업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당장 노동 시장뿐만 아니라 소비 시장 측면에서도 변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향력이 크고 시급한 문제임에도 ‘인구 문제’와 관련한 논의가 오랫동안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인구 문제는 ‘시차’가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의 저출산은 향후 20년이 지나 이들이 ‘생산 인력’에 들어갈 즈음에야 그 문제의 심각성이 제대로 드러난다. 곽 박사가 인구 문제 해결을 위한 ‘골든 타임’을 강조하는 이유다. 현재 인구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에게 남은 골든 타임은 ‘5년’이다.

곽 박사는 “5년 이내에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인구 문제는 상황이 악화될수록 해결이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특히 인구 문제의 핵심 열쇠는 ‘가임기 여성’이 쥐고 있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가임기 여성이 더 많은 아이를 출생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현재와 같은 저출산 기조라면 가임기 여성의 숫자 자체도 줄어들겠지만 여성이 마음 놓고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맞벌이가 일반화되면서 이미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 또한 달라지고 있다. 곽 박사는 “여성이 일과 가족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요원하다”며 “남성의 육아 참여를 높이는 등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블루포인트-어린이 공간 ‘아워스팟’ 론칭
“수십년간 똑같은 ‘저출산 문제’, 일상의 불편함 있는 곳에 새로운 시장이 있다”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블루포인트파트너스는 지난해 12월 ‘아워스팟’이라는 어린이 전용 공간을 열고 저출산·고령화 문제의 해결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블루포인트파트너스는 최근 창업혁신팀을 통해 스타트업 발굴 투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스타트업 아이템 선정과 사업 기획, 창업까지 아우르는 ‘컴퍼니 빌딩’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아워스팟은 블루포인트 창업혁신팀의 첫째 컴퍼니 빌딩 프로젝트였다.

블루포인트는 지난해부터 사업 아이템을 구체화한 뒤 김보경 신임 대표를 선임했다. 지난해 12월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 첫 아워스팟의 문을 열었다. 아워스팟은 맞벌이 부부들이 아이를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공간이다. 기존의 서비스들이 주로 아이들을 돌봐주는 튜터를 매칭해 주는 서비스 형태를 띠고 있는 것에 비해 ‘공간형 돌봄 센터’로 지역 기반의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맞벌이 엄마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부분인 ‘돌봄 공백’을 해소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블루포인트는 지난해 12월 마포구 염리동에 어린이 돌봄 공간인 '아워스팟'의 문을 열었다. 사진=블루포인트


블루포인트가 새로운 스타트업의 사업 아이템으로 ‘인구 문제’ 해결에 방점을 맞추고 나선 배경은 무엇일까. 이미영 창업혁신팀장에 따르면 처음부터 인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목표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이 팀장은 “인구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모두 다 막연하게 알고 있는 문제인데 왜 이렇게 오랜 시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지에 집중했다”고 설명한다. 20년 전에도 심각했던 저출산 문제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심각한 것은 아이를 키우는 맞벌이 부모들이 느끼는 ‘불편함’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블루포인트의 창업혁신팀은 바로 그 지점을 해결하는 데 초점을 뒀다.

이 팀장은 “스타트업으로서 소비자들의 불편한 지점을 해결하고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영향력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익적인 관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오랜 시간 불편한 지점을 해결할 수 있다면 바로 그곳에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고 말한다.

블루포인트 창업혁신팀은 현재 ‘인구 문제 해결’과 관련해 고령화·지방 소멸 등을 염두에 둔 사업 아이템도 구상 중이다.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은퇴 후에도 지속적인 수익 창출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이를 위해 시니어를 위한 커리어 매칭 플랫폼을 현재 고려 중이다. 지방 소멸과 관련해서는 지방 제조업들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방안에 대해 고민을 시작한 단계다.

인구 문제라는 게 당장은 매우 거대하고 복잡해 어디에서부터 풀어야 할지 실마리를 찾기 어려워 보이는 게 사실이다. 블루포인트가 찾은 이에 대한 대답은 ‘아주 사소해 보이지만 일상에서 해결할 수 있는 불편함’부터 하나씩 풀어 나가는 것이었던 셈이다. 이 팀장은 “스타트업으로서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며 동시에 새로운 시장에 대한 확신까지 가질 수 있다면 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향후에도 다양한 스타트업들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저출산 등 인구 문제 해결을 위해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협력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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