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내미 보고 싶어서 울어" 소외계층 설명절 더 외롭다
기사내용 요약
25년째 홀로 보내는 명절, 홀몸 노인의 눈물
가족과 단절…월세방서 4개월 딸 양육 20대
8년째 타향살이 태국 노동자·남북단절 실향민
"소외계층 욕구 반영, 촘촘한 정신·물질 지원"
[광주=뉴시스]김혜인 기자 = "나 사는 것이 형편 없은께…새끼들한테 연락하면 짐만 되니 연락할 수 없제. 명절 땐 딸내미 어렸을 적 사진 보면서 울어, 보고 싶어서."
민족 대명절인 설 가족·이웃과 따뜻한 밥 한 끼 나누지 못한 채 고독한 연휴를 보내는 이들이 있다.
25년째 쓸쓸한 명절을 보내는 노인부터 홀로 자녀를 키우는 20대 한부모 가정, 외국인 노동자와 60년째 북한 고향 땅을 밟아보지 못한 실향민까지.
이들은 지역 사회의 온정과 지원을 통해 건강한 명절 나기를 바랐다. 전문가는 소외계층 형태가 세분화하고 있는 만큼 각 계층의 요구를 반영한 촘촘한 정신적·물질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26년째 나 홀로 명절...당뇨 합병증에다 치매까지
홀몸 노인 유상봉(66)씨는 설 연휴인 21일 "가족과 연락도 끊기고 거동도 불편해 하루 종일 누워 텔레비전만 보고 있다"고 했다.
명절이지만 요양복지사와 노인복지관 봉사자가 설맞이 간편식을 배달한 것을 제외하고 유씨의 단칸방을 찾은 사람은 없었다.
유씨는 25년 전 이혼 직후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국제 통화 기금)를 겪어 운영하던 철골 공장이 파산 났다. 하루 아침 사장에서 신용불량자 신세가 됐다.
그는 택시 운전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다 4년 전 다리를 다친 뒤 거동이 불편해 집에만 머물렀다.
건강은 급격히 나빠졌다. 2년 전 당뇨 합병증이 찾아와 발가락을 잘랐고, 외부와 소통이 단절되면서 치매까지 찾아왔다.
유씨는 명절만 되면 가족이 사무치게 그립다고 했다. 색 바랜 막내딸 사진을 꺼내 보면서 그리움을 달랬다.
유씨는 "몸도 아프고 처지가 궁색해 자식들에게 연락할 수 없다"며 "그래도 죽기 전 딸들 얼굴 한 번 보는 게 소원"이라고 토로했다.
◇ "명절에도 딸과 나 둘 뿐" 외로운 사투
한부모가정 최모(23·여)씨도 4개월 된 딸과 단둘이서 두 번째 명절을 맞았다.
최씨는 지난해 9월 출산 직후 자녀의 아버지와 사별했다. 친정·시댁과도 연락이 끊겨 기댈 버팀목이 없었다.
혼자 하는 첫 육아는 녹록지 않았다.
최씨는 모아둔 돈으로 딸과 살 월셋집을 마련했다. 이후 외출도 하지 않은 채 잠을 줄여가며 24시간 육아에만 전념했다. 애견미용사의 꿈, 여행하고 싶은 20대의 삶도 포기했다.
생계도 막막했다. 정부 지원을 받고 있지만 수입 없이 식비·월세·육아 용품 등 매달 140만 원의 고정 지출을 감당하기엔 빠듯했다.
최씨는 정신·신체·경제적 압박 속 스스로를 '환영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급기야 산후 우울증까지 찾아왔다.
그는 명절날 가족의 따뜻한 위로가 그립다. 최씨는 "남들은 출산하고 친정·시댁 가서 귀염도 받고 '고생했다'는 말도 듣는데 나와 딸은 환영받지 못한다"며 "혼자서 딸을 잘 키울 수 있을까 생각하면 눈물만 나고 앞이 캄캄하다"고 울먹였다.
또 "일주일에 2~3시간 만이라도 누군가 자녀를 돌봐줬으면 한다.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 남편과 이별, 일감 찾아 한국행…"아들과 통화가 유일한 낙"
태국인 노동자 님(34·여)씨는 설 명절 집에서 아들들과 영상 통화를 하거나 가족사진을 보면서 그리움을 달래고 있다.
8년 전 한 살 된 쌍둥이 아들들을 뒤로하고 일감을 찾아 광주를 찾았다.
남편과 헤어지고 아들 둘의 부양·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님씨는 이른 아침부터 14시간 동안 자동차 부품 사출 공장에서 일한다.
그는 한국을 오고 난 뒤 고향 땅을 밟아보지도, 어린 자녀들을 안아보지도 못했다. 명절만 되면 갓 초등학생이 된 아들들이 사무치게 그립다.
코로나19 이후론 명절 때 울적함을 달래줄 태국 친구들마저 자주 만나지 못했다.
님씨는 "한국 생활이 힘들지만 가족들이 웃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다"며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명절 행사를 열면 덜 외로울 것 같다"고 말했다.
◇ 사무치는 그리움, 북녘 생각하며 눈물의 망향가
함경도 출신 박영숙(86·여)씨도 "일년 중 명절 때 고향이 가장 그립다"고 말했다.
박씨가 16살이던 해 '중공군이 젊은 여자와 남자만 잡아간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는 1·4후퇴 며칠 전인 지난 1950년 12월 아버지와 피난길에 올랐다.
그렇게 고향을 떠나온 세월이 70년이 훌쩍 지났다. 금강산 관광도 두 번이나 다녀왔다.
박씨는 명절 때마다 먼저 떠난 어머니의 빈 영정 앞에 절을 올렸다.
그는 명절이 다가오면 한복을 손수 만들어 입히던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나 고향 노래를 부르면서 그리움을 달랜다.
박씨는 "여전히 고향과 부모에 대한 그리움은 지울 수 없다"며 "꼭 평화 통일이 돼 고향 땅을 밟아보고 싶다"고 전했다.
◇ 취약 계층 여러 갈래로…"맞춤형 지원 필요"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기준 광주시 61만 5693가구 중 1인 가구 수는 34.5%인 21만 2385가구다. 이 중 65세 이상 홀몸 노인 가구는 4만 6895명이다.
광주 한부모 가정(미혼모)은 838가구, 외국인 노동자는 5498명으로 추산된다. 이산가족은 421명이다.
복지 전문가는 여러 취약 계층의 요구를 반영한 촘촘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은경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부교수는 "갈수록 취약 계층이 여러 갈래로 나뉘고 그들의 요구도 다양해진다"며 "그러나 지원책 대부분은 홀몸 노인에만 국한됐거나 변화한 시대 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지자체·동 단위에서 공동체 역할을 확장해가야 한다. 1인 가구와 소외계층이 신체·정신적으로 고립되지 않도록 맞춤형 지원이 필요한 때"라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hyein0342@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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