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교사가 본 역사갈등…"日, 식민지인식 미흡…사실 인정하자"
신간 '마주보는 역사수업'…20여년 이어진 역사교사 교류 소개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한일 역사 논쟁이 첨예한 가운데 공통의 인식을 확대하려고 힘써 온 양국 역사 교사들의 노력을 소개한 단행본이 출간됐다.
전국역사교사모임(한국)과 역사교육자협의회(일본)가 20여 년간 교류하며 시도한 26가지 수업 사례를 모아서 '마주 보는 역사 수업'(휴머니스트)을 펴냈다. 양국 단체에서 활동한 전·현직 교사 38명이 함께 썼다.
일제 강점기 경성 사람들의 삶, 오키나와의 언어, 임진왜란, 동학 농민 전쟁, 재일조선인, 3·1 운동, 혐오범죄 및 간토(關東)학살 등을 주제로 한국 또는 일본에서 했던 수업의 생생한 모습을 담았다. 자국이 아니라 상대국 학생에게 수업한 사례도 눈길을 끈다.
두 단체의 교류는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내놓은 우익 사관 교과서가 일본 정부 검정을 통과한 2001년 정식으로 시작됐다.
역사 왜곡에 맞설 방안을 모색하며 한일 공동 역사교재인 '마주 보는 한일사' 전근대사편(Ⅰ·Ⅱ, 2007년)과 근현대사편(Ⅲ, 2014)을 펴내기도 했다.
연합뉴스는 '마주 보는 역사 수업' 출간을 계기로 역사 교사 교류에 앞장선 필자 2명을 전화로 접촉해 한일 역사 문제에 관한 생각을 들었다.
중학교 교사로 일하다 퇴직하고 현재는 슈쿠토쿠(淑德)대 비상근 강사로 활동 중인 미쓰하시 히로오(三橋広夫·72) 씨는 역사 갈등이 첨예한 이유로 식민지 지배에 관한 인식의 차이를 꼽았다.
그는 "한국의 경우 민주화 운동 등 여러 움직임과 더불어 식민지에 관한 한국인의 인식을 표출하는 대응이 줄곧 있었지만, 일본은 그것이 매우 약하다. 식민지 지배에 대해서 확실한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은 일제 강점기에 관한 시각 차이에 주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사건은 한국 근현대사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한국의 학교 교육에서 일제 강점기는 중요하게' 다뤄진다.
일본의 경우 한반도 식민지 지배를 19세기 후반부터 패전 때까지 추진한 제국주의 정책의 '일부'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즉,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등 일제가 일으킨 전쟁이나 서구와의 대립을 주요 흐름으로 삼고 조선인 노무 동원이나 일본군 위안부 동원 등 한반도 민중에 대한 가해 행위는 파생적이고 부수적인 사건으로 치부한다.
한국은 일제의 강압적 지배와 이에 맞선 저항이라는 틀로 20세기 전반을 바라보지만, 일본은 전쟁이라는 주제를 중심에 놓고 같은 시기를 들여다보는 셈이다.
이런 차이 때문에 한국 측으로서는 일본 측에 피해자의 관점에서 역사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박성기(57) 한일역사교사교류모임 회장은 "일본의 역사 교육에 애매한 부분이 있다"면서 일부에서는 아직도 '침략'이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진출'이라고 표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직 고교 역사 교사이며 필자 중 1명이다.
박 회장은 "8월 15일에 야스쿠니(靖國)신사에 가면 러일전쟁·청일전쟁·2차 대전의 군복을 입고 행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침략전쟁이 아니라 성스러운 전쟁이었다는 시각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가해의 역사를 직시하지 않으려는 일본 측의 움직임은 근래에 더 강해졌다.
일본 정부는 '종군 위안부'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오해를 부를 우려가 있으므로 '위안부'라는 용어가 적절하며 국민징용령에 따라 동원된 한반도 출신 노무자에 대해서는 '강제연행' 또는 '연행'이 아닌 '징용'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적당하다는 답변서를 2021년 4월 각의(閣議·내각회의) 결정했다.
문부과학성은 이후 교과서 출판사 임원을 모아 각의 결정 내용을 설명하고서 이에 맞게 교과서를 수정하지 않으면 정정 신청 권고를 할 수 있다는 견해를 표명하기도 했다.
그러자 여러 출판사가 '종군위안부'나 '강제연행' 등의 표현을 삭제하거나·변경하겠다고 신청했고 작년에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에서는 '강제연행', '종군 위안부', '일본군 위안부'라는 표현이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내용을 싣더라도 동원 방식이 강제적이었다거나 당사자의 인격권이 침해됐다는 점을 명확하게 기술한 교과서는 점차 줄고 있다.
간략해진 내용만으로 일본 학생들이 일제의 가해 행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이에 관해 미쓰하시씨는 교과서를 그대로 읽는다면 "알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교과서에 어떤 내용이 기술돼 있는지 못지않게 교사가 수업을 어떻게 하는지도 중요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미쓰하시씨는 "여러 가지를 구체적으로 쓴 교과서가 좋다고 생각하지만 '여러분, 교과서대로 생각합시다'는 식의 수업을 하면 달라지는 것이 없다"면서 학생이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는 수업, 스스로 생각하는 수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03년 대구의 중학생을 상대로 임진왜란 때 침입했다가 조선에 귀순한 김충선(일본명 사야카)에 관해 수업한 적이 있다.
당시 수업 내용을 이번 책에 실으면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조선 침략'이라고 임진왜란의 성격을 규정했다.
하지만 일본의 일부 교과서는 임진왜란을 여전히 조선 출병(出兵)으로 적고 있다. 또 일본 정치권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20세기 전반의 침략(전쟁)을 별개로 취급하고 있다.
미쓰하시씨는 이런 구분에 이견을 표명했다.
그는 한쪽(임진왜란)은 전쟁이고 나머지 한쪽(일제의 한반도 강점)은 식민지 지배라서 차이가 있다면서도 "침략이 틀림없다는 것은 공통적"이라고 말했다.
한일 역사 인식의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기 위해 무엇이 중요하냐고 물었더니 "일한 사이에 역사 인식의 차이가 있다는 식으로 문제 삼지 않는 것"이라고 답했다.
미쓰하시씨는 "학생들 간의 여러 대화를 통해서 일한의 인식 차이보다는 학생 사이의 인식 차이가 크다고 느꼈다"면서 "일본과 한국이라는 틀을 정해서 문제를 논하지 않는 게 좋다. 차이는 있지만, 너무 내세워도 의미는 없다"고 말했다.
박 회장도 국가라는 구분에서 더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여전히 국가적 시각에서 바라보려고 하는 게 많다"면서 '일본인은 침략 전쟁에 찬성했고 이로 인해 이익을 봤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일본에도 전쟁에 반대한 이들이 많았다는 것 교류로 알게 됐다고 회고했다.
박 회장은 한일 역사 문제에 관해 "있었던 사실을 부인하지 말고 인정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가면 좋겠다"면서 "너희(일본)는 잘못했다고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이 있었으니 인정하고 또 다른 미래를 만들자는 것이 대부분 역사 교사들의 입장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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