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에 납치된 한국인 석방 다룬 영화 '교섭', 어디까지 사실일까
[파이낸셜뉴스] 임순례 감독이 ‘리틀 포레스트’이후 5년만에 신작 ‘교섭’을 내놓았다.
지난 18일 개봉한 황정민 현빈 주연의 '교섭'은 2006년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에 납치된 한국인 23명을 구하기 위해 외교관과 국정원 요원이 벌이는 사투를 그렸다.
휴먼 드라마 위주의 장르를 찍어왔던 임 감독은 이번에 처음으로 블록버스터급 휴먼 액션영화에 도전했다. 임감독은 개봉을 앞두고 만나 “전작 ‘리틀 포레스트’ 대비 제작비가 10배 더 많다”며 “영화는 예술이자 산업이니까 예산에 맞는 형식과 내용이 필요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제작비는 168억원, 손익분기점은 300만 명으로 추산된다.
2006년 피랍사건은 국내에선 초유의 사태였다. 당시 피랍자들은 정부가 여행 제한국으로 설정한 아프간을 선교 목적으로 방문했다는 이유로 많은 지탄도 받았다.
임 감독 역시 민감한 소재라는 지적에 “어떻게 만들어도 논쟁적일 것 같아서 처음에는 거절했다”며 “하지만 기존에 한국영화가 보여주지 못한 새로운 것을 보여줄 여지가 있어 연출을 결심했다“고 마음을 바꾼 이유를 설명했다.
“탈레반이라는 집단은 그동안 한국영화에서 그려본 적이 없다. 무엇보다 사건 자체는 논쟁적일 수 있으나 심층적으로 들어가면, 이 영화는 신념에 관한 이야기다. 한 집단은 선교하러 간 것이고 탈레반은 자기들 신념에 따라 억류한 것이라는 점에서 신념과 신념이 부딪히는 지점이 있다. 또 국가와 국민의 관계다. 국민의 어디까지를 국가가 책임지는 게 맞는가. 큰 테두리 안에서 던질 수 있는 주제가 묵직하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임 감독은 “교섭 상대가 우리에겐 미지의 나라이자 생면부지의 테러집단이라는 것과 아무런 정보가 없는 집단과 교섭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막중한 임무를 맡은 공무원들의 자세와 태도에 관심이 갔다"며 "시나리오 쓸 때부터 교섭하러 가는 두 남자, 성격 다른 두 남자의 이야기에 집중했다”고 부연했다.
영화는 피랍인들보다 그들을 구하러 간 외교관과 국정원의 사명감에 초점을 맞추면서 특정 사건을 뛰어넘는 보편성을 획득한다.
특히 우리는 피랍사건 이후 4·16 세월호 참사부터 최근에는 이태원 참사까지 무고한 국민의 생명이 스러진 국가적 재난을 여러 차례 겪었다. 누가 위기의 순간 책임자와 실무자로 있는지에 따라 재난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목도했다. 공무원을 비롯한 모든 직업군이 사명감을 갖고 본업에 충실하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일깨운다.
영화에 투영된 감독의 바람을 언급하자 임 감독은 “초반 협상의 기조가 어떤 희생자도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극중 황정민의 대사에도 있듯, 자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게 외교부의 최우선 사명이다. 그것이야말로 국가와 공무원의 기본책무라고 생각하고, 영화 역시 그런 이야기”라고 답했다.
피랍사건 발생부터 인질들 구출까지 ‘교섭’의 타임라인은 한국인 인질을 납치한 직후 탈레반이 최초 통보한 살해시한 24시간을 기점으로 긴박하게 흘러간다.
영화에서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한 한국군의 철군 및 인질들과 같은 수의 탈레반 수감자를 석방하라는 조건을 내건다. 전례 없는 사태 앞에서 외교부 ‘정재호’ 실장(황정민 분)을 포함한 대응팀은 오직 살해시한 전에 인질을 구출해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과제만 가진 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도착한다.
가장 먼저 공식 채널인 아프가니스탄 외무부를 통해 탈레반 수감자 석방을 시도해 보지만 한국인 인질 문제보다는 정권 안정이 더 중요한 그들의 협조를 얻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외교적으로 가능한 패는 어느 것도 통하지 않고 교섭 작전은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난항의 연속이다.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탈레반의 속내와 테러리스트와의 직접 협상은 있을 수 없다는 외교부의 공고한 원칙 등 진퇴양난의 위기 속에서 외교관 정재호와 국정원 요원 ‘박대식’(현빈 분)을 주축으로 한 교섭팀은 현지에서 찾을 수 있는 온갖 방법과 루트로 협상을 시도해 나간다.
영화를 보다보면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까지 영화적 상상이 덧대졌는지 궁금하다. 임감독은 어디까지 진짜냐는 물음에 “피랍 발생 후 현지 파견될 때까지 디테일한 일정은 거의 극비라서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답했다.
“큰 줄기, 그러니까 한국인이 탈레반에 납치돼 한국 교섭단이 파견됐고, 극비 과정을 거쳐 그들을 구해서 돌아왔다 그것만 팩트다”라며 “인물의 캐릭터나 과정은 다 창작된 것이다. 팩트와 픽션이 적절하게 섞여있다”고 부연했다.
실제 작전에 투입된 공무원을 만났을까? 그는 “모든 게 극비라 실제 교섭에 참여한 분을 만날 수 없었다”며 “극중 황정민과 현빈이 연기한 인물 또한 전형적인 외교관과 국정원 요원 캐릭터에서 벗어나 있다”고 답했다.
이 영화는 아프가니스탄과 지형이 유사한 요르단에서 촬영했다. 덕분에 현지에선 한국어, 영어, 파슈토어, 다리어, 아랍어까지 5개 국어가 공존했다. 요르단 현지 배우들을 캐스팅해 그들이 아프가니스탄 언어를 배워 연기했는데 딱 한명은 아프가니스탄 인을 캐스팅했다. 바로 후반부 황정민과 독대하는 탈레반 지도부다.
임 감독은 “제한적 공간에서 두 배우의 연기 대결이 중요한 장면이었다”라며 “대사량이 많아서 아프가니스탄 출신 배우 캐스팅이 필요했다. 할리우드에서 조단역하던 배우 중 (코로나 기간이라) 화상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했다. 실제로는 카리스마가 없고 다정한 캐릭터라 걱정했는데, 아무래도 황정민씨 연기가 좋다보니 기대 이상으로 잘나왔다”라고 촬영 비화를 전했다.
극중 현지 사정에 밝은 국정원 요원 박대식은 지르가를 찾아 해결 방법을 모색한다. 지르가는 여러 부족의 원로들이 참여하는 아프가니스탄의 부족 원로회의다.
임 감독은 “실제로 해당 문제로 지르가가 열렸다”며 “지르가는 문제해결을 하는 중추적인 기관이 맞고 때론 사법적인 기능도 한다. 이슬람의 보편적 문제해결 조직”이라고 말했다.
서양인 브로커의 등장은 극에 또 다른 긴장을 불어넣고, 극중 현빈의 액션신을 볼 수 있는 장치로 활용된다. 그는 “당시 브로커 이야기를 비롯해 뜬소문과 여러 추측이 많았다”며 “현빈이 거의 모든 액션신을 직접 소화했다”고 말했다.
극중 황정민과 현빈은 본분에 충실한 공무원이나 제 역할을 못하는 공무원도 나온다. 언론도 교섭의 방해꾼으로 다뤄진다. 인질의 신분이 외신을 타고 공개되면서 다된 밥에 재가 뿌려진다.
임 감독은 “현실에서도 본분에 충실한 공무원이 있는가 하면 자기 자리나 다른 것에 가치를 두는 인물이 있다”며 “언론도 인질의 안위보다 시청률에 더 집중하는 경우가 있지 않냐”고 반문했다.
‘교섭’은 선악의 이분법보다 사람을 구하러 간 사람들의 이야기에 방점을 찍는다. 그는 “평소 인간이 중심이 되는 소재에 끌린다”며 “특히 아웃사이더들에게 관심이 간다. ‘교섭’의 정재호는 아웃사이더는 아닌데, 대신에 상황이 그렇다. 탈레반과 대적해야하는 상황 자체가 아웃사이더적인 상황”이라며 웃었다.
“난관을 돌파하며 생명을 구하는 이야기다. 우리는 어둡고 외롭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에게 눈길을 주고 손길을 내밀어줘야 하지 않나. 연대와 믿음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게 아닌가. 내 작품 전반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주제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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