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조 압수수색 이유 삼은 건설현장 '월례비' 관행 뭐길래

곽주현 2023. 1. 21.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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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체 A사는 타워크레인이 필요한 공사가 진행되는 기간엔 매달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을 '월례비' 명목으로 잡아놓는다.

민주노총 산하 건설노조 관계자는 "물론 노조가 잘못한 부분도 많지만 최근 10년여 동안 자정노력을 계속하고 있는데, 워낙 뿌리 깊은 관행이라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며 "월례비가 문제가 돼 기사 교체 요구가 들어오면 노조 자체에서 징계하거나 제명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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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19일 오전 압수수색이 진행되고 있는 서울 영등포구 민주노총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지부 사무실 앞에 손팻말을 붙이고 있다. 연합뉴스

건설업체 A사는 타워크레인이 필요한 공사가 진행되는 기간엔 매달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을 '월례비' 명목으로 잡아놓는다. 보통 타워크레인 기사나 노조에서 한 번에 500만~600만 원의 액수를 요구해오고, 들어주지 않으면 공사기일이 지연되는 등 서로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전국 20여 곳에서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이 회사가 최근 4년간 월례비 명목으로 내놓아야 했던 금액은 약 38억 원. 돈을 받아간 타워크레인 기사는 44명에 달했다.

건설현장 불법행위를 수사 중인 경찰이 19일 크고 작은 건설노조 14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전격 단행하면서 '월례비'라는 건설업계의 오래된 관행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부가 약 보름간 진행한 건설현장 불법행위 실태조사에서 접수된 부당·불법행위 중 월례비 요구 사례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면서, 현장에선 관행을 빙자한 '웃돈 문화'가 만연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20일 노동계에 따르면 월례비는 공사현장에서 하도급 건설사, 즉 시공사가 타워 크레인 기사 등에게 의례적으로 제공하는 돈이나 금품 등을 의미한다. 공사일정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공사 입장에서는 타워크레인 기사들을 독촉해 시간에 맞춰 공사를 진행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담배나 현금 등을 조금씩 쥐어주던 1960~1970년대의 관행이 굳어진 게 월례비다. 편의를 봐달라는, 일종의 '뇌물'인 셈이다.

월례비가 음성적 관행으로 굳어진 데에는 타워크레인 기사 측과 시공사 양측의 이해관계가 모두 걸려 있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현장에 와 있는 타워크레인 기사들에게 명시된 작업 외에 콘크리트 펌프카나 대형 카고크레인이 해야 할 작업까지 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다른 건설기기를 부르지 않아도 되는 데다 노동자를 덜 고용해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월례비가 생기게 된 배경에 노조가 강압적으로 한 것도 있지만, 건설사가 이익을 불리기 위해 노동자를 이용한 측면도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2018년 건설협회에 보낸 공문. '월례비' 등 관행을 없애는 데 협조해달라는 내용이다. 전국건설노조 제공

물론 합법적인 행태는 아니다. 민주노총 산하 건설노조 관계자는 "물론 노조가 잘못한 부분도 많지만 최근 10년여 동안 자정노력을 계속하고 있는데, 워낙 뿌리 깊은 관행이라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며 "월례비가 문제가 돼 기사 교체 요구가 들어오면 노조 자체에서 징계하거나 제명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노조에서 먼저 쇄신 노력을 해야겠지만, 건설사도 같이 노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근 몇 년 사이 급속도로 불어난 건설 관련 군소 노조도 현장에선 골칫거리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한 건설현장에 10여 곳에 달하는 노조들이 전임비를 요구해 월 1,500만 원 이상 지급한 사례가 보고됐는데, 이 중 대부분은 양대노총에 소속되지 않은 군소 노조였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노조원이 몇 명인지도 모를, 이름만 '노조'인 무리가 몰려다니면서 불량배처럼 돈을 뜯고 다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이런 불법 단체들이 제대로 정리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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