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변화구도 던져야 직구가 위력적이다

정우상 정치부장 2023. 1. 21.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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內治도 외교도 尹 대통령 직구 승부
‘UAE 적 이란’ 연설 때 대통령 손엔 원고 없어
직구 실투 땐 대량 실점… 변화구도 던져야

대통령에겐 메모지와 연필 세 자루뿐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본지 신년 인터뷰에서 눈길을 끈 장면이다. 고위 인사들은 인터뷰 석상에 보통 두꺼운 답변 자료 아니면 메모한 수첩을 들고 나온다. 참고용이지만 민감한 질문이 나오면 자료를 본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기자 브리핑 때 산더미 같은 자료를 들고 나온다. 미 국무부가 다루는 분야는 한 나라의 외교라기보다 전 세계이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3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본지와 신년 인터뷰를 가지고 있다. 2022.12.30 / 이태경기자

윤 대통령은 인터뷰 2시간 동안 막힘 없이 답했다. 국정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 자료가 없는 이유를 물었더니 윤 대통령은 “다른 정치인들은 인터뷰 때 자료를 들고 나오나. 난 몰랐다”고 했다. 이어 “대선 후보 때부터 인터뷰 때는 자료를 보지 않았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에도 국회에서나 언론 질문에 막힘이 없었다. 예민한 질문에도 ‘정치적 발언’을 통해 우회하기보다 직진했다. 야구로 치면 변화구보다 직구 스타일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 때도, 추미애 사태 때도 그랬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검사가 수사권으로 보복하면 깡패지 검사냐” “검수완박은 부패완판” “검찰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 지금의 윤 대통령을 만든 말이다.

취임 후 내치(內治)와 외교에서도 직구다. 민주노총이 총파업같이 강경 일변도로 나오더라도 기세가 꺾이면 적당한 타협점을 찾는 것이 정치권이 생각하는 ‘정답’이다. 불법은 눈감아주고 악수하고 손뼉 치고 묻어 버린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타협을 거부했고, 민주노총은 안전운임제 문제에서 본전도 못 차렸다. 불법과 거대 노총에 대한 대통령의 직구 대처는 지지율 반전의 계기가 됐다. “북핵 문제가 더 심각해지면”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체 핵 보유 발언은 예전에 볼 수 없던 모습이다. 실효적 확장 억제(핵우산) 강화를 위한 계산된 발언이었지만, 미국도 놀란 분위기가 역력하다.

나경원 전 의원 전격 해임도 유인구나 변화구 없는 돌직구다. 참모들은 대통령 순방 기간 중 나 전 의원을 설득해보겠다고 했지만, 대통령은 나 전 의원이 공식 사표를 내자 수리도 아닌 해임을 선택했다. 정치적 해법은 윤 대통령과 애초에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정치적 해결을 조언했던 참모들은 “바보가 됐다”고 한다. 대야(對野) 관계도 유사하다. 용산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을 내쫓겠다는 사람들과 대화가 가능한 일이냐”고 했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은 국민의힘만큼 내부가 복잡하다. 대화할 수 있는 사람도 많고 할 이야기도 많다.

직구 투수는 팬이 많다. 강타자와 9구, 10구까지 직구로만 겨루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손에 땀이 난다. 그러나 열광하던 팬도 실투 한 번에 역전 홈런이라도 맞으면 왜 정면 대결을 고집했느냐며 돌아선다. 팬들의 속성이 그렇다. 직구가 위험한 건 한번 실투가 대량 실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소통을 기대했던 대통령의 출근길 즉석 회견은 의도와는 반대로 흘러갔다. 원고 없는 즉석 발언 속 메시지보다 실수가 연일 부각됐다. 윤 대통령이 아크 부대 장병들을 만나 “UAE의 적은,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라고 말할 때, 대통령 손에서는 발언 자료가 보이지 않았다. “형제국의 안보는 바로 우리의 안보”라는 정답에서 한발 더 나가려다 삐끗했다. ‘외교 참사’라는 비난은 과도하지만 안 해도 될 실점을 한 셈이다. 야당 관계, 대일(對日) 관계, 연금·노동·교육 개혁 등 대통령 앞에 놓인 승부처는 직구만으론 풀기 어려운 난제다. 승부를 아예 회피하던 대통령도 있었다. 그렇다고 윤 대통령이 변화구를 못 던지는 것도 아니다. 반도체특별법이 기재부 반대로 무력화되자 원상 복구를 지시했다. 대선 때 윤 대통령은 이준석 전 대표,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맺은 불편했던 관계도 직구와 변화구를 섞어가며 위기를 넘겼다.

강속구만 던지면 경기 도중 체력이 떨어지고 상대에게 수를 읽힌다. 강속구 투수가 좋은 투수는 맞지만, 직구를 받쳐줄 다양한 구종을 갖추지 못하면 위대한 투수가 될 수 없다. 일류 투수는 삼진만 고집하지 않고 때론 맞춰 잡는다. 윤 대통령에겐 이제 막 2회가 시작됐을 뿐이다. 대통령은 9회 말까지 완투하는 자리다. 변화구와 느린 볼을 섞어 던질 때 직구는 더 위력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작년 5월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정운영실 직원으로부터 국정운영 홈런을 기원하는 메시지가 적힌 야구 방망이를 선물받은 뒤 휘두르고 있다./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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