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윤정희와 작별하며
특파원으로 파리에 부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윤정희씨가 만나자고 했다. 길모퉁이 카페였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한국서 온 주간지 한 부를 내밀었다. 선정적 기사로 가득 찬 잡지에는 특종(?) 기사가 실려 있었다. 1960년대부터 톱스타였던 윤정희가 사실은 권력자 사이에 딸을 낳았으며, 도미니코 수녀회에 있다고 했다. 윤정희는 한숨을 쉬며 “어떡해야 좋겠냐”고 했다. 마치 ‘가짜 뉴스 대응팀장’을 대하듯 물었다. 대답했다. “어설프게 맞서면 후속 기사만 커집니다.”
▶그 뒤로 친해져 자주 교유했다. 개선문 근처 살르 플레옐에서 남편 백건우의 독주회가 열리던 밤이 떠오른다. 이미 ‘대한민국 레전드’인 윤정희가 연주홀 입구에서 가랑비에 젖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젊은 유학생 관객들을 맞으며 허리 굽혀 절을 했다. 백 번도 더 했을 것이다. 객석에 앉은 윤정희는 박수가 끊이려 하면 더 크게 박수를 선도하면서 남편을 응원했다. 백건우가 지금 세계적 명성을 누리는 데는 분명히 그의 덕도 있다.
▶파리 남동부 뱅센에 부부가 살았다. 연주 여행이 없을 때 백건우는 집에서 피아노 연습만 했는데, 동네 사람들이 ‘귀 호사’를 한 값으로 현관에 꽃을 갖다놓곤 했다. 그 집 저녁밥은 참 따뜻했다. 어제 윤정희씨의 별세 소식에 한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제 ‘국민 여배우’로서 별이 된 사람이지만 피아니스트의 아내이자 매니저였던 모습이 더 생각난다. 윤정희는 헌신적인 사람이었다.
▶1977년 부부는 유고에서 북한에 납치될 뻔한 적이 있다. 끌려가기 직전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미국 영사관에 도움을 청하면서 위험을 모면했다. 윤정희는 재불 화가였던 다른 부부를 의심했다. 그들이 북한의 끄나풀 역할을 했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 때 삼청동에 있는 한 스파게티 집에서 와인 한 잔을 곁들이자 윤정희는 유고에서 겪은 긴박했던 순간들을 영화처럼 회상했다. 피아니스트와 여배우 아내, 화가 부부, 북한 간첩 등 영화로 만들어도 될 얘기였다.
▶파리 특파원들은 윤정희·백건우를 가장 모범적인 예술인 부부로 꼽았다. 둘 다 정상에 올랐고, “영화를 떠난 적이 없다”는 윤정희 말처럼 끝까지 현역이었다. 따뜻하고 겸손했다. 지난 몇 년 치매를 앓았고, 남편과 친정 식구들이 불화를 겪었지만 프랑스 법정은 남편 손을 들어줬다. 윤정희의 마지막 영화 ‘시(詩)’의 끝부분에 이런 시가 흘러 나온다. ‘이젠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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