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누비는 ‘고양이’, 이순재의 ‘웃음’, 핏빛 ‘스릴러’
설 연휴에 공연장은 밤낮으로 바삐 돌아간다. 나흘 동안 서울에서 가족 또는 친구와 함께 볼 만한 연극·뮤지컬 3편을 뽑았다. 연휴에는 할인이 적용된다.
◇뮤지컬 ‘캣츠’
1981년 세계 초연한 ‘캣츠’는 40년이 넘은 흥행작. 고양이들의 사연, 춤과 무대 효과로 속을 채운다. 1년에 한 번뿐인 젤리클 무도회의 밤. 바람둥이 럼 텀 터거, 볼품없이 늙어버린 그리자벨라, 기차역 차장 스킴블샹스, 전직 배우 거스 등 다양한 고양이들이 모인다. 인간 세상에 대한 우화(寓話)다. 섬세한 분장과 의상, ‘젤리클 볼’과 ‘메모리’ 등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음악이 관람 포인트다.
이번 내한 공연은 고양이로 변신한 배우들이 객석 통로로 등장하며 시작된다. 무대는 뒷골목을 닮아 있다. 폐타이어, 세탁기, 버려진 구두 등 생활 쓰레기를 최고 10배까지 확대해 고양이 눈에 비친 세계를 그려낸다. 객석에 고양이들이 출몰해 관객과 장난을 주고받는 스킨십이 5년 만에 부활했다.
마법사 고양이의 고난도 춤, 극장 고양이의 연극이 있는 2막에서 박수와 환호성이 터진다. 그리자벨라가 “새로운 날이 시작됐어요~”로 흐르는 ‘메모리’를 부를 때 분위기가 절정을 찍는다. ‘새로운 삶을 살 고양이’를 선택하는 마지막 장면을 기대하시길. 고양이들이 “업 업 업(up up up)”을 합창할 때 폐타이어가 공중으로 떠오른다. 연휴 내내 공연한다. 3월 1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연극 ‘갈매기’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가 쓴 ‘갈매기’는 상대방의 등만 보며 살아가는 인물들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다. 사실주의의 교과서라 불리는 작품. 웃음과 한숨, 인생에 담긴 희비극적 요소를 부드럽게 풀어낸다. 구순이 코앞인 배우 이순재가 연출했다. 국내에서 많이 공연했지만 재해석을 하거나 원작을 훼손하는 형태라 못마땅했다고 한다.
‘벚꽃동산’ ‘세자매’ 등 체호프의 작품은 대사에 중요한 게 다 들어 있다. ‘갈매기’는 작가를 꿈꾸는 트레플레프, 배우 지망생 니나 등 주어진 삶에 만족하지 않고 뭔가를 갈망하는 인물들로 가득 차 있다. 갈매기는 도망치고 싶어도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체호프는 삶 자체를 비극으로 봤다. ‘갈매기’도 희극이 아니라 비극이고 그래서 웃음이 필요하다. 웃음은 마치 샴페인 거품처럼 올라왔다 금방 사라진다. 영상을 적절히 활용한 무대에서 이항나, 소유진, 오만석, 주호성, 김수로, 강성진, 고수희 등 화려한 출연진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순재는 소린 역을 맡아 무대에 오른다. 22일엔 공연이 없다. 2월 5일까지 유니버설아트센터.
◇뮤지컬 ‘스위니 토드’
부정부패가 만연한 19세기 영국 런던. 면도칼을 든 이발사 스위니 토드의 복수를 따라가는 스릴러다. 토드는 아내를 탐한 터핀 판사에 의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추방당했다가 15년 만에 돌아온다. 아내는 행방불명이고 딸은 터핀 판사의 양녀로 붙잡혀 있다. 파이 가게를 운영하는 러빗 부인은 토드가 다시 이발소를 열고 복수를 준비하도록 돕는다. 모든 것을 잃은 남자와 새 출발을 꿈꾸는 여자의 동업이다. ‘새로운 고기’를 넣은 러빗 부인의 파이는 무섭게 팔려나간다.
세상을 향한 풍자, 씹는 맛이 일품이다. 토드와 러빗 부인이 ‘어 리틀 프리스트’를 부를 때 객석은 웃음바다가 된다. “양심으로 속을 채운 ‘목사 파이’/ 내용물도 부실하고 감동이 없는 ‘소설가 파이’/ 주둥이만 살아서 씹는 맛이 최고인 ‘변호사 파이’/ 도둑놈과 사기꾼을 섞은 맛 ‘정치인 파이’~”로 흘러가는 노랫말을 음미하게 된다.
스티븐 손드하임이 작사·작곡한 음악은 낯선 불협화음이지만 이 비극에 공포감을 증폭한다. 그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인투 더 우즈’로도 유명하지만 ‘스위니 토드’야말로 음악성과 언어 유희가 두드러진다. 강필석·이규형·신성록이 토드를, 전미도·김지현·린아가 러빗 부인을 나눠 맡는다. 24일엔 공연이 없다. 3월 5일까지 서울 샤롯데씨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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