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민주당이 진보라는 오래되고 끈질긴 오해
지난 대통령 선거 기간 중, ‘윤석열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팬이었다’는 일화가 알려진 적 있다. 윤 대통령은 노무현을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며 노무현 영화를 보고 한참 울기도 했다는 얘기였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더불어민주당을 물리치고 정권 교체를 이루겠다는 국민의힘당 대선 후보가 상대당의 정신적 지주를 추앙한다고? 이러면 족보가 꼬이잖아, 라는 반응이었다. ‘적진의 장수를 존경한다는 후보를 믿어도 되나?’라며 지지자들은 수군거렸다. 윤석열을 반대하는 사람들, 즉 노무현이 상징하는 가치인 인권과 민주주의 확립을 위한 노력과 윤석열은 거리가 멀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의아해했다.
작년에 개봉한 영화 ‘헌트’에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 안기부가 간첩 용의자들을 고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오는 길에 나는 동행한 친구에게 “저런 무지막지한 시절이 지나가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했다. 친구는 “네가 아직 그런 말을 해서 그 또한 다행이다”라고 했다. 아마도 친구는 윤석열에게 투표한 사람인 나는, “고문 좀 하면 어때. 빨갱이들은 무조건 때려잡아야 해”라고 말할 줄 알았던 모양이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이들은 모두 과거 군사독재마저 정당화하는 멸공지상주의자들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더불어민주당은 민주화 운동의 적통이고 인권과 복지를 표방하며,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그 대척점에서 권위주의적이고 인권에 무관심하며 부자와 기득권을 보호한다(그러니 노무현을 좋아할 리 없어!)는 통념은 한국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진 오해다. 적극적인 민주당 지지자들이야 당연히 그렇게 믿고 있으며, 이쪽도 싫고 저쪽도 싫지만 선거 때는 투표권을 행사하는 이른바 ‘무당층’ 가운데에도 ‘돈만 아는 국민의힘보다는 약자를 보듬고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당이 더 낫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민주당은 서민과 약자를 위하는 진보 세력이고 국민의힘은 부자와 특권층을 챙기는 집단이라는 고정관념은 왜 이리 요지부동 끈질긴가. 민주당은 특권을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해 불법을 서슴지 않았던 전 법무부 장관을 옹호하는 정당이다. 원주민과 성남시민에게 돌아가야 할 토지 개발 이익을 민간업자 7명에게 몰아주었고, 축구단 거액 후원금의 대가로 대기업에 특혜를 줬다는 비리 혐의를 받으면서 말로만 달콤한 ‘기본소득’을 읊조린 지자체장을 대표로 선출한 정당이다. 부자와 특권층만 챙긴 집단이 누구인데 왜 여전히 진보와 정의라는 후광을 머리에 얹고 으스대는가. 이들은 언제까지 ‘우리가 올바른 진영이니 우리의 작은 흠집에 태클을 걸지 마라’는 억지를 부릴 것인가. 이 명백한 모순을 외면하는 지지자들의 확증 편향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소셜미디어 시대에 날로 강화되기만 한다.
이제 유권자들은 민주당이 더 이상 진보도 좌파도 서민과 약자의 정당도 아니라는 현실을 정확히 봐야 한다. 정확한 인식이 있어야 올바른 처방이 나온다. 구시대의 유물인 이념에 집착한 정책 실패로 서민의 삶에 고통만 줬던 정당이 진보라는 휘장을 두르고 묻지 마 지지를 계속 누린다면 한국 진보의 앞날은 캄캄하다.
한국 사회는 ‘좌파와 우파의 대립’이라는 80년대식 세계관에서 그만 벗어나야 한다. 운동권 경력을 내세우는 정치인들의 진보 행세도 끝나야 한다. 상식과 공정을 기준 삼아 사회 곳곳의 갈등을 해결할 방책을 협의하고 고민하는 정치가 와야 한다. 어제의 세상에 속한 이념 대립이 아니라 내일을 변화시킬 실사구시 정책을 놓고 경쟁하는 정치를 희망한다. 그 안에서 소수자·약자를 보호하는 진정한 진보와 리버럴이 자본주의 경제 그늘에서 고통받는 이들이 의지할 세력으로 다시 일어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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