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례는 인간만의 것? 코끼리도 장례식에 간다

윤상진 기자 2023. 1. 2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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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이상 야생동물 연구한 저자 “동물도 의례를 통해 공동체 유지… 코끼리, 죽은 동료에 흙 덮어주고 늑대는 한 달 동안 뛰놀기 멈춰”

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

케이틀린 오코넬 지음|이선주 옮김|현대지성|360쪽|1만8000원

동물도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때로는 사람보다 더욱 풍부한 감수성을 보여준다. 상실(喪失)을 대하는 늑대의 태도가 그렇다. 서열이 가장 낮고, 따돌림을 당하는 늑대가 죽는 경우에도 늑대는 무리 전체가 깊은 상실감에 허우적댄다. 한 달 이상 뛰어노는 행위를 중단하고, 영역 표시를 위해 울부짖는 ‘하울링’을 멈추기도 한다. 동료를 잃은 늑대를 관찰한 연구자들은 이들의 행동이 마치 ‘죽은 늑대에 대한 추모 행위’ 같다고 설명한다.

의례(儀禮)가 인간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몇 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동물원에서 암컷 우두머리 코끼리를 안락사시켰다. 그러자, 죽은 코끼리와 가장 친했던 두 마리 코끼리가 다가와 냄새를 맡고 코로 친구를 만졌다. 마치 상주 옆에서 빈소를 지키듯, 이들은 밤새 교대로 친구 코끼리를 찾아와 몸에 흙을 뿌려 덮어주었다. 코끼리들은 가까운 코끼리가 죽으면 사체를 보러 오는 습성이 있다. 그리고 죽은 친구의 모습을 볼 때 마치 스트레스 반응처럼 피부에서 액체가 분비됐다. 연구자들은 이를 근거로 코끼리가 동료를 애도하기 위해 일부러 현장을 방문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저자는 30년 이상 코끼리에 천착한 야생 동물 연구자. ‘The Elephant’s Secret Sense’(코끼리의 은밀한 감각), ‘Elephant Don’(코끼리 두목) 등의 책을 펴내고, 지식 공유 플랫폼 테드(TED)에서 코끼리 관련 강연을 해 왔다. 그는 약 3000마리의 코끼리가 사는 나미비아의 에토샤 국립공원에서 야생동물의 행동을 관찰해왔다. 그는 연구를 바탕으로 “야생동물과 인간의 의례는 다르지 않으며, 동물들 또한 의례를 통해 공동체를 형성∙유지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애도∙구애∙집단행동∙놀이 등 야생의 동물이 행하는 의식(儀式)을 열 가지로 분류해 행위의 의미를 분석하고, 우리가 잊고 있던 의례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위기 속에서 의례는 우리의 생명줄이 되어주었다.”

코끼리들은 놀이를 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는데, 친구의 머리 위로 코를 뻗어 ‘같이 놀자’는 의사를 표시한다. 개들이 놀자는 뜻을 전달할 때 절하는 것처럼 몸을 낮추는 의례와 비슷하다. /현대지성

야생동물들이 벌이는 은밀한 의례는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해변쥐는 ‘봄맞이 대청소’를 한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오래된 씨앗 껍질과 겨울 동안 먹었던 곤충의 껍질을 굴 밖으로 내놓는다. 찌르레기는 기생충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신선한 잎으로 집을 새로 꾸민다. 어린아이처럼 ‘놀이’를 즐기는 동물도 많다. 얼룩말은 둘씩 짝을 지어 서로 깨물고, 울음소리를 주고받으며 겨룬다. 일부러 느긋하게 움직여 상대를 봐주기도 한다. 이들은 ‘놀이 의례’를 통해 자신의 힘과 운동 능력을 시험한다. 다른 동물들과 싸워야 할 때를 대비한 일종의 연습. 야생동물들에게 의례란 생존과도 연결되어 있다.

소셜 미디어, 온라인게임, OTT(동영상 스트리밍)와 같은 인터넷 기반의 활동 때문에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 소통하는 장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시대, 저자는 점점 잊혀가는 의례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의례를 통해 서로를 향한 존경심을 드러내고 갈등을 해소한다.” 생각해보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를 버티게 해준 것도 의례의 힘이었다. “우리는 발코니에서 함께 노래를 불렀고, 뜰을 가꾸고 천연 발효 빵을 만들었다.” 한국에서도 ‘달고나 커피’를 만들기 위해 스푼을 휘적거린 경험을 공유하며 외로움을 잊지 않았던가. 분명 집단적 의례에는 고통스러운 일상을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이 깃들어 있다.

집단 행동에 참여하는 것은 때로 번거롭게 느껴지지만, 이를 통해 얻는 심리적인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의례에 참여할 때 우리 뇌는 긍정적인 자극을 받는다고 한다. 저자는 이 자극이 달리기를 했을 때 밀려오는 황홀감인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조정 선수들의 수행 능력을 연구한 결과, 혼자가 아닌 팀으로 노를 저을 때 사람은 육체적 고통을 두 배 더 잘 견뎌냈다. 신병 훈련소 입소나, 신입 환영회 같은 불편한 의례 또한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의례에 참여한 구성원들은 심리학자들이 이른바 ‘정체성 융합’이라고 부르는 경험을 한다는 것. 불쾌감을 공유하며 일체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 같은 경험은 너무 강렬해서 집단을 위해 싸우다가 죽겠다는 자기희생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야생동물이 생존과 공동체 유지를 위해 행하는 각종 의례들 사례를 통해, 저자는 인간 역시 ‘의례의 동물’이라고 결론짓는다. 설을 맞아 고향에 내려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하는 명절 의례가 부담스러운 사람도 적지 않겠지만, 이런 모임과 행사가 사실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시대에 뒤처진 관습으로 보일지 몰라도, 의례는 더 원활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서로를 잘 보살핌으로써 공동체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열쇠다. 의례는 사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든다.” 원제 Wild Ritu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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