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월급 딸의 ‘검진 선물’… 술 끊고 달리기로 ‘청천벽력’ 극복[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암 의심한 홍교수 권유로 수술… 자신과 싸우며 장기간 투병생활
당뇨 악화 이겨내고 재발없이 완치… “조기발견 어려워 정기검진이 최선
당뇨 심해지거나 황달땐 검사를… 최근 항암제 좋아져 치료효과 개선”
췌장암의 5년 생존율은 10% 남짓이다. 암 중에서 생존율이 가장 낮다. 췌장은 우리 몸의 중심부, 아주 깊은 곳에 위치해 있어 조기 진단이 어렵다. 췌장에 암 덩어리가 생겨도 초기에는 아무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다. 증세가 나타나면 일단 3기나 4기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이런 최악의 암을 극복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항공정비업을 하다 은퇴한 이재운 씨(64)가 그런 사례다. 이 씨는 췌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은 뒤 만 5년이 지나 완치 판정을 받았다. 이 씨와 의료진을 만났다.
●생애 첫 종합검진에서 췌장암 발견
이 씨는 서울성모병원에서 생애 첫 종합건강검진을 받던 2017년 3월의 상황을 떠올렸다. 초음파 검진을 하는 의사가 시간을 너무 끄는 것 같았다. 순간 뭔가 심상찮다고 생각했다. 의사는 췌장 몸통 부위에 물혹 같은 것이 있다고 했다. 정밀 검사를 위해 추가 진료를 예약했다.
이후 의료진은 복부 CT(컴퓨터단층촬영) 검사와 조직 검사를 시행했다. 암으로 보이는 혹의 크기는 2㎝에 조금 못 미쳤다. 하지만 조직 검사에서는 ‘양성(암이 아니라는 뜻)’으로 나왔다. 소화 불량, 체중 감소, 황달 등 암 동반 증세는 없었다. 암이 아닌 걸까? 안심할 수는 없었다. 초기 췌장암의 경우 종종 조직 검사 결과가 암이 아닌 것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의료진은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내시경초음파 등 추가 검사를 했다. 결과를 놓고 간담췌외과, 종양내과, 내분비내과, 영상의학과 등 7개 진료과 교수들이 회의를 가졌다. 홍태호 간담췌외과 교수는 “의료진은 암일 확률이 70∼80% 이상이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의료진은 수술이 최선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암이 아닐 수도 있지만 방치할 수는 없었다. 자칫 시기를 놓쳐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진은 이 씨에게 검사 결과를 상세하게 설명하며 수술을 권했다.
이 씨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암 선고’였다. 그는 “믿기 싫었고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며 “다른 병원에서 재검사를 받을까 말까, 참으로 생각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 씨는 고민 끝에 의료진을 믿기로 하고 수술 권유를 받아들였다. 췌장암과의 싸움은 이렇게 시작됐다.
●수술로 췌장 50% 절개, 이후 항암 치료
수술은 홍 교수가 집도했다. 복강경 수술로 췌장의 50%를 절제했다. 절제한 조직을 검사해 보니 2기 췌장암이었다. 의료진의 판단이 옳았던 것이다. 홍 교수는 “만약 더 끌었더라면 3기로 악화됐을 것이고, 그랬다면 수술 자체가 불가능했다”며 “그야말로 천운인 셈이다”고 말했다.
예상치 않았던 어려움도 있었다. 원래 당뇨 전 단계였던 이 씨가 수술과 항암 치료를 이어 하다 보니 췌장 기능이 떨어지면서 당뇨병이 악화된 것이다. 실제로 췌장암 환자가 당뇨병이 생기거나 만성 당뇨병 환자가 췌장암으로 악화되는 사례는 종종 있다. 이에 내분비내과 의료진이 인슐린 치료를 시행했다.
항암 치료를 끝낸 후에는 3개월 혹은 6개월마다 CT로 추적 검사를 했다. 그때마다 이 씨는 마음을 졸였지만 다행히 암은 재발하지 않았다.
췌장암이 발견되고 만으로 5년이 흐른 지난해 4월 이 씨는 미세한 암 세포도 발견하는 장비인 PET CT(양전자컴퓨터단층촬영) 검사를 받았다. 깨끗했다. 이 교수는 비로소 완치 판정을 내렸다. 이 씨는 매년 1회 정기적으로 CT 검사를 받으며 추적 관찰하기만 하면 된다. 홍 교수 또한 “당뇨병만 잘 관리하면 췌장암 재발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딸의 ‘효심’이 부모 생명 살려”
이 씨의 검진은 딸의 권유에 의한 것이었다. 바로 그해 초 생애 첫 월급을 받은 딸은 부모님의 종합건강검진을 예약했다. 이 검진에서 이 씨는 췌장암, 이 씨의 아내는 뇌동맥류가 발견됐다. 이 씨 아내가 먼저 수술대에 올랐고, 일주일 뒤 이 씨도 수술을 받았다. 그 결과 두 사람 모두 생명을 건졌다. 딸의 효심이 부모를 살린 셈이다.
요즘 이 씨의 삶은 6년 전과 완전 딴판이다. 그토록 좋아하던 술을 완전히 끊었다. 평생 하지 않던 운동도 열심히 한다. 병과 싸우려면 강인한 체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항암 치료를 받을 때에는 하루에 3회, 매회 1시간씩 달렸다. 요즘에도 매일 1시간씩은 잊지 않고 달린다. 덕분에 수술 전에는 76㎏이었던 체중이 65㎏으로 줄었다.
물론 혈당과의 싸움은 진행 중이다. 여전히 인슐린 주사를 놓아야 하지만 병원에 있을 때에 비하면 용량이 크게 줄었다. 혈당 자체도 떨어졌다. 요즘에는 3개월마다 병원에 가서 당뇨병 상황을 체크한다.
몸이 좋아지니 식욕이 당긴다. 하지만 과식을 하면 혈당이 급격하게 오를 수 있다. 이 때문에 아침과 점심은 양껏 먹지만 저녁에는 소식을 한다. 추가로 단백질 함량이 높은 식품과 우유를 많이 먹는다.
얼마 전 이 씨는 아내와 반려견들을 데리고 속리산 자락의 한 마을로 이사갔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요양도 하고 새로 얻은 삶도 즐기기 위해서다. 이 씨는 많은 췌장암 환자들이 자신처럼 완치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투병에는 끈기가 필요합니다. 낙담하지 마세요.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병을 이기겠다는 긍정 마인드를 잃지 않는다면 병을 이길 수 있습니다.”
●“췌장암 조기 발견하려면 정기 검진이 최선”
홍 교수는 “임상에서 볼 때 췌장암으로 진단받은 환자 중에서 수술이 가능한 사례는 30% 정도이며 이 중 30%가 완치된다”고 말했다. 완치율이 이처럼 낮은 이유는 무엇보다 조기 발견이 어렵기 때문이다.
위나 대장암은 내시경 검사로 조기 진단이 가능하지만 췌장암은 이런 검사로는 찾아낼 수 없다. 췌장암은 복부 초음파나 복부 CT를 통해 진단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가장 초기인 1기에 암을 발견하는 경우는 드물다.
2기에 발견되면 수술이 가능하다. 췌장은 대동맥 등 중요한 혈관과 닿아 있다. 3기부터는 암이 이 혈관에 침투한다. 따라서 3기 이후로는 수술이 어렵다. 수술이 가능한 2기에 발견해야 완치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다는 뜻이다. 정기 검진이 중요한 이유다. 홍 교수는 “당뇨병이 새로 생겼거나 더 심해질 경우, 갑자기 체중이 빠지는 경우, 황달이나 복통과 같은 증세가 갑자기 생겼을 경우에는 검사를 받는 게 좋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배를 완전히 여는 수술을 했지만 요즘에는 복강경이나 로봇 수술도 많이 시행되고 있다. 덕분에 환자 회복이 빨라져 항암 치료 시기를 앞당겼다. 이 교수는 “요즘 항암 치료제는 과거보다 효능은 좋아지고 부작용도 줄었기 때문에 치료 효과가 크게 개선됐다”고 말했다.
두 교수가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점이 있다. 바로 희망이다. 췌장암이라고 해서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적극 투병한다면 완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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