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풍선’ 정유민, “‘17.5禁 키스’ 대본에 깜짝… 아슬아슬함 기막히게 표현해주셨죠”
“딱 한 달만 살아요, 우리. 아무도 모르게 딴 욕심 없어요….” 스물여덟의 수수하고 예쁘장한 회사 경리가 아빠뻘, 아니 삼촌 뻘 되는 마흔아홉 직장 상사에게 매달린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남자는 이미 아내와 자식이 있는 몸. 누가 봐도 손가락질당할 사이다.
“대본을 받고 당황하지 않았다면, 그건 이상하겠죠.” TV조선에서 매주 토일 밤 9시 10분에 방송되는 주말 미니시리즈 ‘빨간풍선’에서 당차고 할 말 하는 Z세대 조은산 역을 맡은 정유민(32)이 아침 햇살처럼 웃었다. 정유민은 그의 언니이자 주인공인 조은강(서지혜)이 상대적 박탈감 등으로 점차 흑화(黑化·악인으로 변하는 것)하기 전까지 초반부 극을 끌고가는 주역. 최근 ‘빨간풍선’ 출연진 중 가장 주목받는 연기자이기도 하다. 그녀는 평생 바람피우는 아버지 조대봉(정보석)에게 질려 ‘인생에 남자 따윈 없다’며 연애 한번 않고 살다가 짠내 나는 바지사장 지남철(이성재)에게 연민을 느끼는 역할. 지남철은 없는 집 장남으로 장인(고물상)의 경제적 지원 덕에 서울대 법대를 나왔지만 처가의 기대에 차지 못해 매일 ‘죄송합니다’를 달고 사는 눈칫밥 30년 신세의 중년 남성이다.
정유민은 “문영남 작가님 대본은 지하 2층, 3층 그 밑 단계에 있는 인간의 밑바닥 심리까지 파고들어 등장인물 전체적인 캐릭터를 이해하지 않으면 연기하기 쉽지 않은 심리극”이라면서 “이전까지 은산이라는 캐릭터에서 깔끔하고 확고한 자신만의 세계관에 매력을 느꼈는데 남철과의 만남으로 변화하는 심리 상태를 그리는 게 나 자신에게도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은 ‘주말극의 여왕’ 문영남 작가와 ‘수상한 삼형제’ ‘왕가네 식구들’ ‘왜그래 풍상씨’ 등으로 시청자를 안방으로 모은 진형욱 감독이 의기투합했다. 지난 15일(일)에 방송된 10회는 닐슨코리아 기준 전국 시청률 7.7%, 분당 최고 시청률은 8.5%까지 치솟았다.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함과 동시에 동시간대 드라마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감독님과 상의도 많이 하고 연구한 덕분에 분위기를 잘 표현할 수 있었어요. 상대 역인 이성재 선배님도 짠내 나는 연기를 더할 나위 없이 잘 해주셔서 시청자들도 은산과 남철의 심리 변화를 조금은 더 납득하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정유민은 문영남 작가의 대본에 대해 마치 자신의 한계를 테스트하는 것처럼 극한의 상황과 심리적으로 깊숙이 파고드는 어려운 대사들이 주어진다고 했다. “스스로 고민해 해답을 찾고 확신을 가져야 촬영장에 임할 수 있다”는 것. 그중에서도 인상적인 대사와 지문은 ‘모가지’와 ‘17.5금(禁)’.
“지남철 아버지 임플란트 비용을 회사 비용으로 처리하는 장면에서 ‘사장님(지남철) 모가지 안 잘려요! 제 모가지 잘릴게요’라는 대사를 봤을 때 그 ‘모가지’라는 단어가 인상적이었거든요. 작가님께서 은산이라는 캐릭터가 비겁하게 남에게 떠넘기거나 어디 숨거나 도망가지 않고, 조금 무모할지라도 책임을 오롯이 자신이 짊어지고 가는 아이라고 그 한 문장에 응축해주신 거라 생각해요.”
특히 놀란 단어는 6회 차의 “딱 한 달만 살아요” 대사에 붙어 있는 지문. “지남철에게 키스를 하는데 ‘17.5금’이라고 적혀 있는 거에요. 뭔가 아슬아슬한데 그 맛을 기가 막히게 뽑아서 묘사한 것 같지 않은가요? 이게 19금보다 더 야한 표현인 것 같아요.(웃음)”
2012년 OCN 드라마 ‘홀리랜드’로 데뷔한 그녀도 이미 11년 차 배우. 하지만 윤주상·윤미라·정보석·이보희·김혜선·최대철·이상숙 등을 비롯해 극 중 이야기의 중심인 서지혜·이성재·홍수현·이상우 등 배우 군단 앞에서는 ‘막내 라인’. “모든 것이 제겐 배움의 장이에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드라마와 함께 성장했다고 해도 될 정도라 제 인생의 그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문영남 작가님 작품에 출연한다는 것만으로도 울컥하거든요.”
문영남 작가는 매번 대본 리딩에 참여하며 캐릭터에 대한 이미지를 완성하기 위해 말끝과 시작, 어미의 호흡 그 몇 초간 휴지기까지 다 챙긴다고 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말할 때 관성처럼 쌓인 습관을 정확하게 짚어내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쌓이면서 은산의 캐릭터 완성도가 더해진 것 같아요. 그런 과정이 없었다면 은산이의 밀도는 분명 지금과 달랐을 거예요. 다른 캐릭터들도 마찬가지고요.”
선배들의 연기와 태도를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엄청 공부가 된다. 특히 그의 부모 역인 정보석·이보희 부부가 서로 투닥대는 장면에선 ‘저래서 배우구나’ 하고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이보희 선배님은 항상 온화하신데 딱 슛이 들어가면 갑자기 깨발딱한 느낌으로 변하시거든요. 집중하는 에너지가 엄청나요. 가족 신(scene) 자체가 대본 몇 페이지 넘어갈 정도로 굉장히 길고, 앵글이 바뀌면서 촬영하는데 정말 모두들 NG 한번 안 내시고 힘을 몰아붙이듯이 집중력으로 이어가요. 저는 그게 되게 짜릿하더라고요. 엔도르핀이 막 나오는 느낌 있잖아요.”
정유민은 얼마 전 문영남 작가와 문자를 나누다가 “캐스팅하던 날 너에게서 은산이의 눈빛을 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인터뷰 뒤 촬영장으로 가야 된다며 서두르는 정유민은 정말 그 짧은 사이에 은산으로 몰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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