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은 기업만 하는 게 아니다 [동아광장/최인아]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2023. 1. 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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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부단히 움직이고 반응해야 하는 존재
고여 있지 말고 새로운 일 하고 사람 만나야
개인이 인생 사는 데도 혁신이 절대 필요하다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곱슬머리들은 샴푸 후 머리를 잘 말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머리가 삐친다. 어떤 날은 차분하게 모양이 잘 잡히는데 어떤 날은 영 아니다. 같은 사람이 같은 샴푸로, 같은 드라이기로 하는데도 그렇다. 왜 그럴까 오랫동안 의아했는데 어느 날 이런 생각에 닿았다. ‘생명이라서, 살아 있어서 그런 거구나!’ 생명이 있는 존재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외려 정지하면 큰일이고 많은 경우 죽음으로 이어진다. 생명력으로 충만한 어린아이들을 보라. 잠시도 가만 있질 않는다. 생명은 부단히 움직이고 환경에 시시각각 반응한다.

내 몸도 그랬나 보다. 컨디션이 좋은 날, 비가 내려 습도가 높은 날, 피곤한 날, 머리카락의 상태가 다 달랐을 것 같다. 비 오는 날 수분을 많이 머금은 머리는 더 곱슬거렸고 피곤한 날은 머리카락도 축 처지는 식으로 머리도 환경에 따라 몸 상태에 따라 바뀌었다. 나도 생명임을 자각하자 고여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따라왔다. 나의 아이디(ID) ‘inotstay’와 메신저의 상태 메시지 ‘나는 걷는다’는 이런 생각을 담아 만든 것이다. 그저 머물지 않고 고여 있지 않겠다는 굳은 뜻을 담아 정한 것들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 세상 모든 존재는 시간의 지배를 받는다. ‘시간의 이빨’을 피해 갈 도리가 없다. 물건은 낡고 생명은 늙어 어느 날엔가는 사라진다. 시간의 영향을 슬기롭게 받는 방법이 없지 않은데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새로운 시도를 하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라고. 매년 새로운 일을 얼마나 벌였는지, 새로운 사람을 얼마나 만나고 관계 맺었는지 살펴보고 시도하라고 강조한다. 고여 있지 말라는 말일 것이다.

새해를 맞고 며칠 후 우리 책방은 한데 모여 새해 계획을 이야기했다. 각자 책방에서 올해 해보고 싶은 걸 말했는데 당장 시도할 만한 좋은 아이디어들이 꽤 오갔다. 곧 실천할 것이다. 반면, 나는 ‘혁신’을 말했다. 구체적인 새해 계획에 앞서 책방에 혁신이 필요한 것 같다고, 올여름이면 책방도 만 7년이 되는데 요 몇 해를 돌아보니 해오던 일을 좀 더 잘하려 했을 뿐, 새로운 시도엔 소극적이었다고, 7년 전에 비해 세상은 또 달라지고 독자들의 요구와 필요도 많이 변했으니 맨 처음 책방을 열 때의 마음으로 다시 혁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혁신을 주문한 것은 물론 책방의 미래를 위해서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책방에서 일하며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직원들과 나를 위한 마음도 컸다.

돌이켜 보니 일하는 시간이야말로 인생의 정수였다. 많은 이들이 ‘혁신’ 하면 기업이나 국가를 떠올린다. 개인이 아닌 조직이 하는 걸로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혁신은 개인들이 자기 인생을 잘 살아나가는 데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나는 종종 멘토를 찾는 이들에게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멘토를 사람에게서만 구하지 말라, 기업이야말로 훌륭한 멘토가 될 수 있다, 기업이 생존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시도하는 것, 기업이 취하는 전략과 부단한 혁신이야말로 개인들에게 좋은 본보기요 길잡이가 될 수 있다고.

개인들은 무얼 어떻게 혁신하나? 이런 질문은 답하기가 어려운데 그렇다면 질문을 이렇게 바꿔도 좋겠다.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거다. ‘지금처럼 사는 거 괜찮아?’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래?’ 이 질문에 그렇다는 답이 금방 나오지 않으면 바꾸고 혁신해야 할 때라 생각해도 무방하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마흔을 넘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때가 왔다. 체력도, 퍼포먼스도, 의욕도 ‘내려가는 길’에 들어서자 이 질문이 차 올랐다. ‘너, 앞으로도 지금처럼 계속 살래?’ 내가 나에게 물었는데 답이 자명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구나, 달라져야겠구나.’ 물론 뭔가를 바꾼다는 것은 크든 작든 리스크가 따르고 지금 쥐고 있는 것을 놔야 하므로 불안하기 마련이다. 바꿨다가 지금보다 못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가만 있는다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다. 그 순간에도 세상은 계속 바뀌므로 혁신하지 않는 사람과 세상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진다. 회사 밖은 춥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회사도 온실은 아니다. 바깥의 추위를 당장 느끼지 못할 뿐. 계속 혁신해 자신의 가치를 만들지 않으면 어디에도 온실 같은 건 없다.

오늘부터 설 연휴다. 새해 다짐을 하고도 변화의 시동을 아직 걸지 못한 사람들에게 설은 새로 시작해볼 또 한 번의 좋은 기회다. 기업이 그러하듯 개인들에게도 혁신하는 한 해가 되기를 빈다.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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