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낮고 느리게… 건축과 사람, 그리고 환경 미묘한 ‘관계’ 맺기

김신성 2023. 1. 21.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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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탑이 아니라 다리다." 하이데거의 말이다.

탑은 고독하게 존재하지만 다리는 두 장소를 연결해 준다.

저자가 설계한 집들은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계, 이편과 저편을 연결하는 다리이자 터널이며, 구멍과 같다.

건축도 사람처럼 태어나고, 나이 들고, 죽어서 썩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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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 겐고, 나의 모든 일/구마 겐고/이정환 옮김/나무생각/3만2000원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 한정된 도면과 모형으로 승부를 겨루는 공모전이라는 게임 안에서 ‘관계’의 미묘함을 전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실제로 건축물이 그 장소에 완성되고 사람들이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에 부각되는 것은 ‘관계’다. ‘관계’가 멋지게 디자인되면 건축물과 강하게 연결될 수 있고, 건축과 그 장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나가 될 수 있다.”(294쪽)

“건축은 탑이 아니라 다리다.” 하이데거의 말이다. 탑은 고독하게 존재하지만 다리는 두 장소를 연결해 준다. 저자가 설계한 집들은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계, 이편과 저편을 연결하는 다리이자 터널이며, 구멍과 같다. 처마 같은 외부 공간을 주역으로 삼고, 건물 한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바람 길을 내는가 하면, 외부와 내부를 연결하는 터널을 만든다. 중앙광장을 마련해 사방에서 오가며 교류하게 한다. 콘크리트 상자 안에 틀어박히는 행위는 구마 겐고 자신이 숨 막혀 견딜 수 없단다.
구마 겐고/이정환 옮김/나무생각/3만2000원
상품으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하는 폐쇄된 상자에 종속된 인류는 얼마나 불행한가. 저자는 20세기 고도성장기엔 ‘물체’의 생산이 사회를 움직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21세기 물체의 생산은 환경을 파괴하고 또 다른 착취와 불공정을 낳을 뿐이라며, 닫힌 상자로부터의 해방을 거듭 피력한다. 그는 콘크리트나 철 같은 공업적 소재가 아니라 나무, 유리 등 약한 재료들을 거침없이 사용한다. 깨지거나 썩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나 두려움이 없다. 건축도 사람처럼 태어나고, 나이 들고, 죽어서 썩기 마련이니까.

저자는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다. 작고, 낮고, 느린 삼저주의로 안도 다다오 이후 일본 건축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20여개 국가에 다양한 건축물을 설계했다. ‘산토리미술관’, ‘대나무집’, ‘아오레나가오카’, ‘브장송예술문화센터’, ‘일본국립경기장’, ‘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 등을 지었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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