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랑루즈' 오디션마저 즐겼다…“한국의 이완 맥그리거는 바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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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현의 비욘드 스테이지] 뮤지컬 ‘물랑루즈!’ 주연 이충주
뮤지컬 ‘물랑루즈!’는 놀랍도록 화려한 무대다. 사전 제작비 2800만 달러를 쏟아부은 브로드웨이의 ‘삐까뻔쩍’한 세트에서 세계적으로 히트한 70여곡의 팝송을 ‘매시업’해 만든 빈틈없이 꽉찬 음악으로 ‘플렉스’의 참뜻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런 자본의 힘으로 들려주는 게 보헤미안의 순수한 사랑과 예술 이야기다. 거부할 수 없는 돈의 횡포에 맞서 자유를 외치는 예술가들의 러브스토리는 허무한 신기루 같지만, 잠시나마 파리 여행을 떠난 듯 일상의 고단함을 잊게 하는 미덕이 있다.
바이올린·성악 거쳐 뮤지컬 무대로
“고등학생 때 너무 재밌어서 몇 번 더 봤어요. 제가 본 최초의 뮤지컬 영화였는데, 이런 영화가 다 있구나 싶더군요. 나중에 진짜 뮤지컬이 만들어져서 미국에서 공연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직도 꿈만 같습니다.”
‘물랑루즈!’는 브로드웨이 최신작의 아시아 초연인 만큼 수개월에 걸쳐 7~8차례에 이르는 험난한 오디션을 치른 것으로 알려졌다. 크리스티안 역에는 거의 모든 남자 배우들이 도전했고, 단 두 명에게만 주어지는 귀한 기회를 그가 잡았다. “오디션이란 건 정신적으로 힘든 과정이죠. 심지어 영어로 부르는 오디션은 처음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해 보니 오디션이 아니라 공연하는 느낌이 들고, 신기하게 오디션 자체가 재밌더군요. 작품과 역할을 너무 하고 싶어서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준비해서 그런 것 같아요. 다행히 외국 제작진들도 제가 오디션장 들어올 때부터 크리스티안으로 보였다네요. 연습 기간에도 ‘You’re so Christian’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고, 그게 큰 격려와 힘이 됐습니다.”
이충주는 경희대 성악과에 재학중이던 2009년 ‘스프링 어웨이크닝’으로 데뷔한 14년차 뮤지컬 배우지만, 이런 대작의 주연을 맡은 건 처음이다. ‘킹 아더’ ‘썸띵 로튼’ 등 최근작들도 메이저 제작사의 대표 레퍼토리는 아니었다. 대학로 작품부터 차곡차곡 계단을 밟아 마침내 정상에 도달한 셈인데, 공연 초 대상포진이 걸릴 정도로 중압감이 있었단다.
“매 작품이 쉽지 않은 산이지만, 이번엔 워낙 큰 작품이고 아시아 초연이라 부담이 컸죠. 하지만 더 열심히 하도록 동기부여가 됐고, 팬들도 너무 좋아해줘서 그 시간들에 대한 보상을 받고 있어요. 오랜 팬들은 작품이 처음 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부터 잘 어울릴 거라며 응원해 주셨거든요. 요즘 매일 극장에 가는 발걸음부터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되는 커튼콜까지, 매 순간이 짜릿합니다.”
그가 대중적 인지도를 얻은 건 JTBC ‘팬텀싱어’를 통해서다. 시즌2의 3위팀 ‘에델 라인클랑’ 멤버로, 성악가 못지 않은 탄탄한 가창력과 독보적인 카리스마의 음색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스스로도 ‘팬텀싱어’가 인생의 터닝포인트 중 하나라고 했다. “대중매체의 힘을 알게 됐죠. 내가 무대에서 아무리 열심히 하고 있어도 모르면 보러 오시지 않잖아요. 나를 먼저 알리는 게 일을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는 걸 깨달았죠. 실제로 ‘팬텀싱어’를 보고 제 무대를 찾아와 주시는 팬들도 많이 생겼고요. 그 모든 과정이 있었기에 이 작품을 하고 있는 거라 생각해요.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신다면 그 과정이 녹아있는 것이고, ‘물랑루즈!’도 새로운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도록 지금 이 순간에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모든 세대 어루만지는 이야기”
개인적으로 그에게 강한 인상을 받은 건 2년 전 ‘그레이트 코멧’에서다. 현란한 바이올린 연주 실력을 뽐내며 열정적으로 무대를 휘젓는 모습이 경이로웠다. 알고 보니 고2까지 바이올린을 전공했고, 독학으로 습득한 피아노 실력도 상당할 정도로 음악적 재능은 타고났다. 1년 준비해 성악과에 무난히 합격했으니 말 다했다. 그런데 얘기를 나눠 보니 음악보다 연기에 진심인 사람이었다.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배우의 기본은 연기니까요. 데뷔작부터 너무나 많은 레이어의 연기가 필요한 작품을 해서 그런가 봐요. 지금 봐도 센세이셔널할 만큼 센 작품이거든요. 그 당시 같이 했던 조정석·주원·김무열 같은 선배들은 지금 엄청난 스타가 됐는데, 그들을 보면서 이런 작품을 하려면 정말 연기를 잘해야 한다는 걸 여실히 배웠어요. ‘내가 연기를 좋아하는구나, 잘하고 싶구나’ 라는 소망이 그때부터 생겼죠.”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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