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택시 대란 해방일지를 기대하며

택시 대란으로 국민 고통
정부 대책은 결국 요금 인상
서민 지갑은 더욱 얇아져
택시 잡기 힘든데 감차 보상
24만 기사 표심만 보는 국회
국민 위한 택시 대책 절실
임도원 경제부 차장

단체 카톡방에 “나 오늘 늦을 것 같다”는 막내의 메시지가 뜬다. 곧이어 “나도 늦는다”는 언니와 오빠의 답신이 잇따른다. 이들은 밤 12시 강남역에서 함께 택시를 탄다. 지친 표정에 침묵이 흐른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간다. 교외에 있는 집 앞에 이르자 각자 만원씩 꺼내 들어 택시비를 치른다. 3남매는 경기도 산포시라는 가상의 도시에서 매일 서울 직장으로 출퇴근한다. 회식으로 늦는 날엔 함께 모여 집에 간다. 택시비를 아끼기 위해서다. 지난해 화제를 모은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한 장면이다.

경기도민 3남매의 애환은 대통령실에까지 전해졌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해 7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수도권 교통 문제를 언급하며 ‘나의 해방일지’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미 있는 집의 (직장) 접근성, 출퇴근 시간에 쓰는 그 시간을 삶의 시간으로 돌려줘야 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드라마를 보지는 못했지만 거기에 담겨 있는 메시지는 받았다”고 화답했다.

이후 정부는 지난해 10월 심야 택시난 완화 대책을 발표했다. 그렇다면 3남매의 퇴근길은 더 나아졌을까. 대책은 요금 인상을 통한 택시기사 유입에 방점을 찍었다. 카카오T 등 중개택시와 마카롱택시 등 가맹택시에 대한 심야 호출료를 3000원에서 4000~5000원으로 인상했다. 심야 할증 시간은 지난달부터 서울 기준 밤 12시~오전 4시에서 오후 10시~오전 4시로 두 시간 늘렸다. 승객이 많은 오후 11시~오전 2시에는 기본 할증률(20%)의 두 배인 40% 할증을 적용했다. 3남매가 밤 12시 강남역에서 호출 택시를 타고 가면 예전보다 6000~7000원을, 밤 11시에 타고 가면 1만1000~1만2000원을 각각 더 내야 한다.

게다가 다음달에는 기본요금까지 오른다. 서울은 중형택시 기준으로 현행 3800원에서 4800원으로 1000원 인상되고, 기본 거리는 2㎞에서 1.6㎞로 줄어든다. 거리당 요금은 132m당 100원에서 131m당 100원으로, 시간당 요금은 31초당 100원에서 30초당 100원으로 바뀐다. 3남매가 합승 승객을 한 명 더 구해도 택시비 추가 지출분을 충당하기 어려울 판이다.

정부 대책은 택시 운행대수를 일부 늘리는 효과는 있었다. 할증요금이 오른 지난달 서울시 심야(오후 11시~오전 2시) 운행 택시는 하루 평균 2만여 대로 전달 대비 약 1600대(9%) 증가했다. 그러나 기대 이하다. 당초 서울시는 7000대 증차를 예상했다. 여전히 밤거리에는 택시를 잡지 못해 발을 구르는 시민이 많다. 가까스로 택시에 올라탄 승객들은 미터기 올라가는 속도에 신경이 곤두선다.

거꾸로 가는 정책도 있다. ‘택시 감차 보상’이다. 법인택시나 개인택시가 면허를 반납하면 대당 1300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해준다. 택시 과잉공급을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2009년 도입됐다. 지난해 ‘택시 대란’ 와중에도 올해 정부 예산안에 46억8300만원이 편성됐다. 국회 상임위원회 전문위원들은 예비심사에서 “2020년 코로나19 이후 나타난 택시기사 급감과는 배치되는 정책”이라며 예산 삭감을 권고했다. 여야는 단 한 푼도 깎지 않고 원안 그대로 통과시켰다. 2020년에도 합심해 ‘타다금지법’(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만큼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기사 24만 명이 종사하는 택시업계의 정치적 영향력은 늘 강력했다.

택시업계는 한국 요금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다고 항변한다. 단순히 요금 액수만 비교할 일이 아니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해외 주요 국가의 택시 교통 분담률은 2~3%에 불과하지만 한국은 7~15%에 달한다. 주로 관광이나 업무에 택시가 활용되고 있는 외국과 달리 한국은 출퇴근 및 통학의 용도가 많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사실상 시민들의 일상생활에서 보편적인 생활교통수단으로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업계보다는 국민을 바라보는 택시 대책이 나와야 한다. 우선적으로 기사들의 급속한 고령화와 배달라이더 등 전직으로 줄어든 택시 운행 공급을 늘릴 필요가 있다. 법인택시 리스제 도입이 필요한 이유다. 운수종사자 이탈로 운행되지 않고 남아도는 택시를 기사에게 빌려줘 개인택시처럼 운행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이다. 불과 420대로 묶어둔 파파모빌리티 등 비택시 운행도 과감히 확대해야 한다. 더 나아가 타다금지법 폐지까지 검토해야 한다. 비싼 돈을 주고도 고급 모빌리티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수요는 기존 타다 회원 200만 명 돌파로 증명됐다. 심야 버스·지하철 운행시간 연장도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드라마 속 막내는 사내에서 이른바 ‘해방클럽’ 동호회를 결성하며 “갑갑하고, 답답하고, 뚫고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어쩌면 국민들이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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