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하고 우아하게…갈등과 혼돈의 시대를 헤쳐가는 마음을 찾아서
토끼해 설 연휴, 소설가 장강명이 추천하는 책
1 『원청』(위화 지음, 푸른숲)
『허삼관 매혈기』, 『인생』을 썼고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되는 중국 소설가 위화의 신작 『원청』은 이렇게 시작한다. 배경은 20세기 초, 청나라가 망하는 극심한 혼란기다. “농사를 지으면 토비한테 약탈당하거나 죽고, 토비가 되면 약탈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다.
선량한 사람들에게 끔찍한 일들이 일어난다. 그런 시대가 있다.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부서지지 않고, 선량함도 잃지 않는다. 가슴 미어지는 사연들을 읽다가 저절로 어떤 자세를 다짐하게 된다. 불행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어려움에 빠진 이웃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그리고 위화는 역시 위화라서, 이 거대하고 슬픈 비극을 읽으면서도 몇 번은 틀림없이 웃게 된다.
2 『안티프래질』(나심 탈레브 지음, 와이즈베리)
나심 탈레브는 영어에 ‘쉽게 부서지는’의 반대 개념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냈다. ‘안티프래질(antifragile)’. 이 단어는 단단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이상이다. 안티프래질한 사람이나 사회는 충격을 받을수록 더 번창한다. 머리 하나가 잘리면 그 자리에서 새 머리 두 개가 솟아나는 그리스 신화의 괴물 히드라처럼. 안티프래질한 조직은 그래서 불확실성과 스트레스, 시행착오를 오히려 반긴다.
탈레브는 안티프래질이 모든 유기체의 특성이며, 안티프래질하지 않은 시스템은 그만큼 죽음 가까이 있다고 역설한다. 사람의 근육을 예로 들면, 정기적으로 무거운 물건을 들어 근육을 ‘망가뜨릴수록’ 더 튼튼해진다. 근육을 위한답시고 가만히 두면 점점 더 못쓰게 된다. 위험을 회피하는 기업이나 인생도 마찬가지다. 책의 주장에 동의하든 끝내 설득되지 못하든, 우리 앞에 놓인 혼돈의 시기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3 『밀레니얼의 마음』(강덕구 지음, 민음사)
큰 이야기를 할 때는 시원하고 도발적이다. 저자에 따르면 2010년대는 ‘모두가 불행한 시대’였으며, 시간이 흐르지 않는 ‘대침체 사회’였고, 미래와 과거가 뒤죽박죽 섞인 ‘엉망진창의 난장판’이었다. 이 시기에 젠더 갈등이 시작되고, 한국 정치에 ‘망상공장’들이 들어섰다.
보다 작은 이야기를 할 때는 날카롭다. K팝의 특징을 최대주의와 과밀성에서 찾는다든가, 스스로를 쓸모없는 존재로 인식하던 ‘일베’ 회원들이 정치권의 비판을 받으면서부터 자신들이 정치적 주체임을 깨달았다든가 하는 대목들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이 책에서 소비자가 아니라 한 시대의 첨단에 있는 정신이기에 세대론에 관심 없는 이에게도 권한다. 이 순간 ‘망망대해 같은 우주에서 길을 잃고 미아가 된 우주 탐사선’의 막막함이 젊은 세대만의 것일까.
4 『우연은 얼마나 내 삶을 지배하는가』(플로리안 아이그너 지음, 동양북스)
질문 형태인 제목에 대한 저자의 답변은 ‘아주 많이’다. 인생 자체가 우연 게임이나 다름없다는 거다. 하긴, 지금 우리가 이렇게 신문 서평을 읽는 것도 거슬러 올라가 보면 6600만 년 전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해서 공룡이 사라졌기 때문 아닌가. 소행성이 지구 궤도에 도착한 시각이 30분만 뒤였더라면 대멸종은 없었을 것이다. 공룡이 뭘 잘못한 것도 아니다.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한 기업의 성공에 이르기까지 우연이 개입하지 않은 사건이 없는 것 같다. 그런 관점을 살피다 보면 마음이 묘하게 편안해진다. 세상에는 ‘더 이상 캐묻고 싶지 않거나 설명하기 힘든 것들’이 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우연이라 부르며 어떤 지점에서 질문을 멈춘다. 그런 우연의 힘을 인식할 때 덜 좌절하고, 또 덜 우쭐댈 수 있을 것 같다.
5 『극한 갈등』(아만다 리플리 지음, 세종서적)
『극한 갈등』은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수렁에 빠지는지, 그리고 그 수렁에서 빠져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탐구한 르포다. 소도시의 정치, 우주비행 시뮬레이션, 대립 중인 갱단, 콜롬비아 내전 현장에서 갈등이 재생산되는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해 보인다. 물론 한국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얘기다.
책은 그런 갈등을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전하고 그 과정을 분석하는데, 읽다 보면 희미하게나마 희망이 생긴다. 이런 시국에도 우리가 노력하면 돌파구가 나올 수 있다, 하고 말이다. 보다 작고 사적인 갈등 상황, 이를테면 가족 사이의 다툼을 조정하는 데에도 책의 조언이 도움이 될 것 같다.
6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하재영 지음, 라이프앤페이지)
하재영 작가가 자신이 평생 살아온 집들에 대해 쓴 이 유려한 에세이를, 나는 궁핍에 맞서 품위를 지키려는 이야기로 읽었다. 그것은 매우 어려운 투쟁인데, 일단 품위 자체가 저렴하지 않은 재화다. 그리고 궁핍한 상태에서 품위를 지키려는 사람은 같은 위치에서 품위를 중시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보다 불리한 처지에 놓인다. 때로 조롱거리나 화풀이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 책에도 그런 장면이 나온다.
하 작가는 자신만의 공간과 서사를 만들며 품위를 지키려 한다. 설 연휴에 이 책과 함께 자신의 방, 집, 이야기를 어떻게 꾸밀지 한번 고민해보면 어떨지.
7 『셜록 홈즈의 머릿속』(시릴 리에롱·브누아 다앙 지음, 신북스)
셜록 홈즈 시리즈 원작의 설정을 꼼꼼히 고증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낸다. 홈즈와 왓슨 콤비가 수사를 진행할수록 흥미로운 수수께끼가 이어지는데, 마지막에는 깔끔한 해답과 액션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짜 묘미는 그 이야기보다, 그것을 보여주는 색다른 방식에 있다. 독자는 이 책을 읽다가 책장을 둘둘 말아야 하고, 불빛에 비춰야 하고, 사방팔방으로 눈을 돌려야 하고, 때로는 거꾸로 돌려봐야 한다. 매 페이지 감탄스럽고, 다음 장이 궁금하고, 또 예쁜 책이다. 프랑스에서는 20만 부 넘게 팔렸다고 한다.
장강명 소설가. 지난해 나온 『재수사』를 비롯해 『댓글부대』 『한국이 싫어서』 『우리의 소원은 전쟁』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등을 펴냈고 여러 문학상을 받았다. 폭넓은 독서가이기도 하다. 지식공동체를 지향하는 온라인 독서모임 플랫폼 그믐(www.gmeum.com)을 운영하고 있다. 앞서 신문기자로 11년 일했다.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