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는 과거를 먹고 산다. 시대는 특정 시대에 대한 기억으로 살아간다는 얘기다. 지금의 미국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JFK(존 피츠제럴드 케네디)에서 그의 동생 RFK(로버트 피츠제럴드 케네디)로 이어지던 1960년대가 황금기였다. 가장 격렬했고(뉴 레프트 학생운동), 가장 비극적이면서 잔인했지만(이어졌던 대통령 형제와 흑인 지도자들에 대한 암살), 역설적으로 ‘아이 해브 어 드림(I have a dream)’을 꿈꿨으며(마틴 루터 킹), 진실로 뉴 프론티어의 시대(존 F. 케네디의 국정 슬로건)를 향해 나아갔던 때였기 때문이다. 이때 미국은 어찌 됐든 진보하려고 노력했고, 진화해 가려고 애썼다.
독일 출신으로 할리우드로 건너와 명성을 얻은 감독 볼프강 페터슨(볼프강 페테르젠)의 영화 ‘사선에서(1993년)’ 역시 이 같은 ‘JFK 향수’와 관련 있는 작품이다.
대통령 죽인 거대한 음모·배후 추론
‘사선에서(In the Line of Fire)’는 한때 뛰어난 대통령 경호원이었다가 지금은 FBI의 ‘늙다리’ 요원으로 살아가지만 현직 대통령이 암살 위협을 받자 뒤늦게 경호실에 들어가 자신의 임무를 다하는 프랭크(클린트 이스트우드)란 남자의 이야기다. 프랭크는 1963년 존 F. 케네디가 덜레스에서 총에 맞을 때 바로 그 뒤에서 차를 경호하며 뛰고 있었던 인물로 묘사된다. 그는 그 트라우마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하며 산다. 프랭크는 곧 연인관계로 발전하게 될 동료 경호원 릴리(르네 루소)에게 말한다. “사람들은 이런 저런 인간들이 케네디를 죽였다고 하지. 쿠바가 죽였다고도 하고 마피아가 그랬다고도 하지. 하지만 난 그런 거 몰라. 중요한 건 내가 그를 살리지 못했다는 거야. 내가 몸으로 막았었어야 했어.” 이 말을 하면서 프랭크의 눈가는 촉촉이 젖는다.
영화의 분위기는 신파의 최고봉이지만 개봉 당시엔 아마도, 미국 사람들의 마음을 프랭크의 대사 “내가 그를 살리지 못했어(우리가 그를 죽게 놔두지 말았어야 했어)”가 대변하는 것이어서, 30년이 지난 얘기임에도 이 장면이 그다지 어색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안 그렇겠는가. 우리에게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남긴 상처가 크다. 모든 정치적 찬반을 떠나서.
영화 주인공 프랭크처럼 1960년대 미국의 역사를 자신의 필모그래피로 가득 채운 감독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올리버 스톤이다. 그의 영화 베트남 3부작(‘플래툰’ ‘7월4일생’ ‘하늘과 땅’) 그리고 실로 위대한 걸작인 ‘JFK’와 ‘닉슨’ 다섯 편을 작품제작 순서가 아니라 사건 연대기 순으로 보면 미국의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20년 가까운 현대사가 깔끔하게 정리된다. 사건이 발생한 순서로 영화를 재배치하면 ‘JFK’가 가장 앞서고 ‘7월 4일생’ 그리고 ‘플래툰’과 ‘하늘과 땅’은 겹쳐져 있으며 마지막은 ‘닉슨’이 된다. 이 다섯 편의 작품은 영화야 말로 훌륭한 역사 교과서이자 뛰어난 교사임을 입증하는데 하등 손색이 없다.
영화 ‘JFK’는 케네디 암살의 배후를 캐는 지방검사 짐 개리슨의 수사 과정과 재판을 그린 내용의 작품이다. 케네디는 리 하비 오스왈드가 죽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오스왈드조차 마피아 단원인 잭 루비에게 죽고, 이 잭 루비조차 감옥에서 폐암으로 급사하자 대통령 암살과 관련된 의혹은 일파만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다. 올리버 스톤 감독은 케네디가 암살된 1963년의 상황, 곧 미-쿠바간 미사일 갈등과 봉합, 미·소 냉전과 데탕트 분위기, 미국 내 극우주의자들이 갖고 있었던 불만 등을 종합하며 대통령을 죽인 것은 거대한 음모와 정치군사적 배후 조직이 움직였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파키스탄 계의 급진 좌파적 세계 석학인 타리크 알리와 대담집 『역사는 현재다』를 출간할 만큼 그 스스로가 석학 수준인 올리버 스톤은 영화 ‘JFK’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를 한 지도자의 죽음에 대해 통한의 묘비명을 쓴 셈이 됐다. 영화 ‘JFK’는 정치스릴러 영화의 전형을 구축해 냈다는 점(특히 편집 분야에서)에서도 현대 영화사에서 중요한 족적으로 기록된다.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반의 미국사를 3시간의 러닝 타임에 꼼꼼히 수록해 놓기도 했다.
존 F. 케네디 암살 수사에 난항을 겪던 짐 개리슨(케빈 코스트너)이 TV에서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의 피격 뉴스를 본 후 충격에 빠져 침대에 누워 있는 아내 리즈(시시 스파이섹)를 등 뒤에서 안으며 속삭이는 장면은 미국인들이 이들 형제 대통령과 더 나아가 이때의 시대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개리슨은 울먹이며 속삭인다. “그들이 또, 결국, 동생까지 죽였어.”
영화 ‘플래툰’ ‘7월4일생’ ‘하늘과 땅’의 영화 속 내용은 모두 시기가 겹치거나 해체돼 있다. ‘7월4일생’의 주인공 론 코빅(톰 크루즈)이 신병 훈련 후 투입된 곳은 베트남 중부 전선이다. 그는 1965년쯤 격전지였던 후에와 다낭 중 한 곳에서 교전 중 총을 맞고 하반신 불구가 된다.
위기의 시대 지식인의 역할 보여줘
반면 영화 ‘플래툰’의 사건 배경은 명백히 1968년의 ‘미라이 학살’ 사건이고 영화 속 반즈 중사(톰 베린저)는 양민 학살의 주동자이자 장본인이었던 윌리엄 켈리 소위를 캐릭터화한 것이다. 미라이 학살로 유아 50여 명을 포함해 500명 가까운 양민이 죽음을 당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강간, 고문의 흔적도 있었고 사지가 절단된 사체도 나왔다. 이 학살 사건은 결국 미국 내 반전 운동에 기름을 부었고 여기에는 장애인이 된 참전 퇴역 군인들 다수가 참가했는데 그 시위 모습이 나오는 것이 바로 영화 ‘7월4일생’의 후반부다. 론 코빅과 그의 동료들(영화 속에서는 톰 크루즈와 윌렘 대포)은 1972년 닉슨이 이긴 공화당 전당대회에 ‘난입’해 반전 구호를 외친다. 그 생생한 장면들이 영화 속에 담겼는바 ‘플래툰’과 ‘7월4일생’을 순서 상관없이 이어서 보면 1965년부터 1972년까지의 미국이 베트남전 문제로 얼마나 큰 홍역을 겪었는가를 목격할 수 있다.
베트남전에 참여한 군인들의 정신적 후유증에 대한 얘기는 ‘하늘과 땅’에서 그려지는데 이것은 명백히 참전용사였던 올리버 스톤이 너무나 잘 아는, 경험했음직한 얘기들과 섞여서 전개된다. 베트남 3부작의 모든 에피소드는 어찌 보면 씨줄·날줄로 연결돼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이들 3부작의 정치적 배경은 케네디 형제의 잇단 암살과 연결돼 있는데(로버트 케네디의 암살 전후의 얘기는 서스턴 클라크 저, 박상현 번역의 『라스트 캠페인』을 참조하면 좋다), 케네디 가는 베트남에서 병력을 뺄 궁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확대된 것, 미국 내 많은 젊은이들(‘플래툰’의 반즈 중사 같은 빌런까지 포함해서)이 희생되기 시작한 것은 형 케네디가 사망한 후, 후임 대통령인 린든 B. 존슨 때부터이며 동생 케네디도 철군을 주장하던 중 암살당한 후인 닉슨 때 역시 병력은 계속 추가 파병됐다. 베트남전의 비극은 케네디 형제의 죽음과 연관돼 있다.
로버트 케네디의 사후 미국은 어부지리로 대통령이 된 공화당 닉슨의 치하로 들어갔다. 어영부영 대통령이 됐다가 본격적으로 재선에 야욕을 부리던 리처드 닉슨은 무리수를 두다가 ‘워터게이트’ 사건을 일으켰고 결국 스스로 하야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베트남 전쟁은 엎치락뒤치락 휴전과 종전을 향해 치닫는다. 닉슨이 사임한 것은 1974년 8월이고 북베트남 정규군에 의해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지금의 호치민시)이 함락된 것은 1975년 4월이다. 닉슨이 정신적으로 극히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며 나라를 나락으로 끌고 가는 모습은 올리버 스톤의 역작 ‘닉슨’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안소니 홉킨스가 보여 준 신경쇠약증 직전의 대통령 닉슨의 연기는 1995년 상영 당시 절찬을 받았다.
올리버 스톤의 베트남 3부작과 대통령 영화 두 편은 미국의 1960년대 역사를 뒤섞어 각각의 작품으로 분해해 놓은 것이다. 이들 다섯 편으로 미국 현대사를 들여다보거나 재정리할 수 있으면 역사적 혜안을 얻게 된다.
보충의 영화들도 많다. 1976년 알란 파큘라가 만든 ‘대통령의 음모’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뒤쫓는 두 명의 기자 밥 우즈워드와 칼 번스타인의 활약을 그린다. 두 기자의 제보자였던 ‘딥 쓰로트’의 대사를 잊을 수가 없다. 그는 둘에게 “돈을 좆으라(Follow the money)” 말하고 기자들은 이때부터 영수증을 뒤져 단서를 찾는다. 2020년 아론 소킨이 만든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7’은 명불허전이다. 1968년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반전시위를 한 학생과 사회운동가의 얘기를 그렸는데, 시대가 위기를 맞을 때 지식인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 지를 보여준다.
역사책에는 고뇌의 디테일이 나올 수가 없다. 영화는 그 고심이 지니고 있는 풍부한 무늬를 그려낸다. 교과서보다 영화가 더 가슴에 와닿는 역사 이야기를 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11@naver.com 연합뉴스·YTN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이후 영화주간지 ‘FILM2.0’ 창간, ‘씨네버스’ 편집장을 역임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컨텐츠필름마켓 위원장을 지냈다.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등 평론서와 에세이 『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