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레 단골 이발소서 어릴 적 차고 놀던 ‘양말공’ 득템했죠

정영재 2023. 1. 2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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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오디세이] 축구자료수집가 이재형의 ‘펠레 사랑’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라. 영원히.(Amor, amor e amor, para sempre.)’

지난해 12월 29일, 하늘나라로 떠난 축구황제 펠레(브라질·1940~2022)의 마지막 메시지다. ‘그는 축구의 천재성으로 세상을 매료시켰고, 전쟁을 멈췄고, 사회적 일들을 해냈다. 세상 모든 문제의 치료제라 굳게 믿었던 사랑을 전파했다’고 펠레의 인스타그램에는 적혀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지난해 디지털 플랫폼 FIFA+에서 ‘세계적인 축구자료수집가’로 소개한 이재형(축구 월간지 ‘베스트일레븐’ 이사)씨도 ‘펠레 키즈’다. 그는 펠레를 보면서 축구의 아름다움에 눈떴고, 축구 자료와 스토리를 수집하는 외길을 걸어왔다. 이씨는 본인의 소장품만으로 ‘펠레 전시회’를 열 정도로 지구촌 곳곳을 다니며 펠레의 체취가 어린 물품과 자료를 모았다. 펠레의 커다란 사진이 걸려 있는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72년 펠레 방한경기 때 쓴 흰색 공 소장

커다랗게 확대한 펠레 사진 앞에 선 축구자료수집가 이재형씨. 그가 들고 있는 공은 1998년 4월 서울에서 만났을 때 받은 사인공이다. 최영재 기자
1972년 6월 2일, 펠레가 이끄는 브라질 산투스 팀과 한국 국가대표가 동대문운동장에서 친선경기를 벌였다. TV가 없는 가정이 많았던 당시에는 동네 만화가게에서 20원을 내면 흑백 TV를 보여줬다. 펠레가 뛰는 모습을 처음 본 소년 이재형은 펠레와 축구의 매력에 동시에 빠져버렸다. “내 안에 꿈틀거리고 있던 축구 열정에 펠레가 불을 지폈다”고 그는 말했다.

경기에 쓰인 흰색 공을 그는 소장하고 있다. 제 2회 아시안컵(1960년) 우승 멤버이자 산투스전에 뛰었던 박경화 선생으로부터 기증받았다. 당시에는 ‘점박이 공’을 사용했는데 펠레 경기를 맞아 처음으로 수제 흰색 공을 만들었다고 한다.

서울 성북동에서 나고 자란 이재형은 집 인근에 있는 축구 명문 경신중에 진학해 선수가 되고 싶었으나 추첨 결과 다른 중학교에 배정됐다. 축구 선수의 길과는 멀어졌지만 축구 자료를 수집하며 축구 사랑을 이어갔다.

이재형과 펠레가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한 건 1998년 4월 8일이었다. 마스터카드 홍보대사였던 펠레가 98 프랑스 월드컵 기념 이벤트를 위해 서울에 왔다. 그 동안 이씨는 월간 축구잡지 ‘베스트일레븐’의 기획부장으로 일하면서 축구자료수집가로 이름을 얻고 있었다. 45개국을 돌아다니며 4만여 점을 모았다. 월급의 절반 이상을 자료 구입비와 여행비에 썼다.

펠레가 어린 시절 차고 놀던 양말공. [사진 이재형]
그는 행사 관계자에게 “72년 산투스 초청 경기 장면이 담긴 ‘월간축구’ 표지를 확대해서 액자를 만들었다. 펠레에게 직접 전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어렵사리 만남이 성사됐고 16년 전 사진을 받은 펠레는 활짝 웃으며 이씨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브라질에서 가져온 자서전에 사인을 해서 선물했다.

그는 “이 자서전이 특별한 건 펠레의 통산 골 기록이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책을 열어 보니 펠레가 골을 넣은 경기의 날짜와 스코어 등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여기에는 72년 방한경기(산투스 3-2 승) 골도 포함돼 있다. 펠레는 1363경기에서 1283골(경기당 0.94골)을 넣었는데 여기에는 공식경기가 아닌 친선경기도 포함됐음을 알 수 있다.

펠레를 직접 만나서 특별한 선물까지 받은 이재형은 본격적으로 펠레 자료 수집에 나섰다. 그 동안 브라질에만 8번을 다녀왔다. 산투스 시내에 있는 펠레 박물관, 펠레가 19년간 뛰었던 FC 산투스 홈 경기장과 그 구장 바로 앞에 있는 펠레 단골 이발소까지 다녀왔다. 특히 펠레의 친구인 ‘디디’가 운영하는 이발소에서 이재형은 귀중한 자료를 여러 점 획득하게 된다. 이씨는 “산투스 시내 고급 주택가에 살던 펠레는 한 달에 한 번 이 이발소를 찾았다고 한다. 브라질은 치안이 불안한데 이발소는 면도칼을 쓰기 때문에 믿고 얼굴을 맡길 사람을 찾았던 것 같다. 펠레는 매번 산투스 경기 티켓과 함께 집에 있던 잡동사니 물건을 갖고 왔다고 한다”고 말했다.

98년 4월 방한 당시 펠레에게 월간축구 표지 사진을 확대한 액자를 선물하는 이재형씨(오른쪽). [사진 이재형]
이재형씨가 디디의 이발소에서 ‘득템’한 건 펠레가 어린 시절 차고 놀던 ‘양말공’이다. “디디가 ‘이것만은 안 된다’고 한 걸 거의 뺏다시피 구입했다. 함께 갔던 축구계 인사가 주머니가 두둑했는데 ‘나중에 갚겠다’며 달러를 빌려서 샀다”고 그는 구입 스토리를 들려줬다.

펠레가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입었던 브라질 대표팀 유니폼은 이탈리아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수집가한테서 산 것이다. 이 유니폼에는 등번호 10번만 있지 이름이 적혀 있지 않다. 이씨는 “당시에는 등번호만 바느질로 붙였다. 나이키·아디다스 같은 브랜드 유니폼이 없던 시절이었는데, 브라질 대표팀에서 10번을 달고 뛴 선수는 펠레가 유일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2006년 독일 월드컵 현장에서 펠레와 재회했다. 이것도 ‘펠레 전시회’가 연결고리였다. 스포츠 브랜드 푸마코리아가 전국의 지점장들을 초대해 신년회를 했는데, 이씨의 펠레 소장품 100여 점을 빌려와 행사장 로비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당시 푸마 동아시아 총괄이 “도대체 이 많은 펠레 소장품을 누가 갖고 있었냐”고 물었다. 이씨와 인사를 한 그는 “독일 월드컵 브라질-호주 경기(뮌헨 알리안츠 아레나) 때 스카이박스에 딱 10명만 초대해 펠레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경기를 보는 이벤트를 푸마가 마련했다. 거기에 초대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18년만에 다시 만난 펠레는 특유의 함박웃음을 지으며 이씨의 손을 덥석 잡았다고 한다.

‘펠레의 저주’는 그만큼 솔직했다는 반증

이씨는 “펠레는 지난 100년 동안 가장 위대한 축구선수(2000년 FIFA 선정)였을 뿐만 아니라 지구촌 모든 스포츠 종목을 통틀어 가장 위대한 선수(1999년 IOC 선정)였다. 월드컵 트로피를 세 번 들어 올린 유일한 사람임과 동시에, 축구의 아름다움과 창의성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황제였다”고 펠레를 추모했다.

펠레는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 마라도나와 자주 비교된다. 마라도나는 2020년 11월, 60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이씨는 “펠레와 마라도나는 20살 차이다. 아무래도 마라도나의 화려한 플레이를 TV로 본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삶의 족적을 비교해 볼 때 둘은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마라도나는 마약·성폭행·탈세 등 범죄와 자주 연루됐고, 보통 사람이 이해하기 힘든 기행도 저질렀다. 반면 사생활이 깨끗했던 펠레는 은퇴 후 브라질 체육부장관을 지냈고, 전 세계를 다니며 축구의 가치를 알린 전도사였다”고 말했다. 그는 “펠레의 저주(펠레가 우승할 거라고 언급한 팀마다 탈락하는 징크스)를 말하며 웃음거리로 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펠레가 그만큼 소탈하고 솔직한 사람이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말을 돌려서 하거나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은 펠레의 장례식에서 “우리는 전 세계 모든 나라에 축구장 한 곳은 펠레의 이름을 붙여달라고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도 ‘펠레 도서관’을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 “전 세계 대도시의 대형 서점에 가면 펠레 관련 책들이 몇 권씩은 있다. 표지는 대부분 펠레의 얼굴을 클로즈업 한 사진이다. 이 책들을 쌓아 출입구를 만들어 포토 존으로 활용하고, 내가 갖고 있는 5000여권의 축구 서적·잡지와 펠레 소장품으로 내부를 꾸밀 생각이다”라고 구상을 밝힌 이씨는 “펠레가 하늘나라로 떠나면서 나한테 영감을 준 것 같다”며 웃었다.

■ 펠레 피땀 새겨진 맨발 사진이 ‘못생긴 발 사진’ 원조

왼쪽부터 펠레 발, 손흥민 발, 강수진 발레리나 발. [중앙포토]
2006년 1월 국내에 처음 공개된 펠레의 맨발 사진도 이재형씨가 제공한 것이다. 1981년 애니 레이보비츠라는 여성 사진작가가 찍은 것으로, 이씨가 브라질에서 구입했다. “펠레는 자신의 발을 공개하거나 사진을 찍는 것을 극히 꺼렸다. 여성 작가가 여러 차례 간청하는 바람에 촬영을 허락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원본 사진과 필름까지 구입해서 갖고 있다”고 이씨는 설명했다. 펠레가 어릴 적부터 숱하게 맨발로 슈팅과 드리블 연습을 한 결과 양발 모두 두꺼운 굳은살이 박여 있고 오른발은 더 심하다.

펠레의 발 사진이 공개된 이후 국내에서도 ‘못생긴 발 사진 찍기’ 바람이 불었다. 발을 혹사할 수밖에 없는 종목의 스타들이 ‘아름다운 맨발’을 드러냈다. 축구 박지성, 발레리나 강수진, 피겨 김연아의 맨발이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줬다. ‘월드 클래스’ 손흥민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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