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와 형제의 연 맺은 무함마드, 대통령 돼 윤과 우의 결실

최익재 2023. 1. 21.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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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UAE 어떻게 형제국 됐나
UAE를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현지시간) 바라카 원자력발전소에서 열린 바라카 3호기 가동식에서 무함마드 UAE 대통령 등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형제 국가인 아랍에미리트(UAE)의 안보는 바로 우리의 안보다. 아크부대는 형제 관계의 핵심이다.”

지난 14일부터 나흘간 UAE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현지에 파병된 아크부대를 찾아 격려하면서 한 말이다. 무함마드 빈 자예드 알 나흐얀 UAE 대통령도 정상회담에서 한국을 “어떤 상황에서도 약속을 지키는 나라”로 평가하며 찬사와 애정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은 제2의 고향”이란 말도 했다. 두 정상은 이번 회동에서 ‘형제’ ‘신뢰’ ‘핵심 파트너’ 등 미사여구를 총동원하면서 협력 관계를 더욱 공고히 했다. 중동의 산유국인 UAE는 사실 우리에게 친숙한 나라는 아니다. 걸프만의 UAE와 동북아의 한국은 7000㎞가 넘는 공간적 거리와 이질적 문화의 장벽을 극복하고 어떻게 형제국이 된 것일까.

지난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이 무함마드 아부다비 왕세제와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형제결의의 시원은 이명박(MB) 정부 시절인 2009년 바라카 원전 수주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UAE가 발주하는 바라카 원전은 건설에 약 200억 달러, 사후 관리에 200억 달러 등 총 400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한국은 프랑스, 일본, 미국 등과 함께 수주 경쟁에 뛰어들었으나 프랑스 업체인 아레바(Areva) 선정이 유력했고, 언론들도 프랑스의 수주가 사실상 결정됐다고 보도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MB는 포기하지 않고 막판 뒤집기를 위해 나섰다. 당시 상황은 이 전 대통령이 퇴임 후 펴낸 『대통령의 시간 2008-2013』에 기술돼 있다. MB는 원전 발주의 권한을 갖고 있는 무함마드 아부다비 왕세제에게 “사절단을 파견해 직접 양국 간 협력에 대해 설명 드릴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설득하면서 “한국은 매우 강한 방위력을 갖고 있어 좋은 안보협력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라는 솔깃한 제안을 던졌다. 결국 2009년 11월 한승수 전 국무총리를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파견했고, 12월에는 이 전 대통령이 직접 UAE로 날아갔다. 결국 끈질긴 설득 끝에 한국은 프랑스를 제치고 그해 12월 수주를 따내는 데 성공했다. 양국의 본격적인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MB와 무함마드 왕세제의 친분은 2011년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납됐던 삼호주얼리호(선장 석해균) 사건 때도 확인됐다. 우리 정부가 아덴만에서 생포한 해적 5명의 한국 이송 문제로 고심하고 있을 때 해적 문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UAE의 무함마드 왕세제가 선뜻 왕실 비행기를 내준 것이다. MB와 형제의 연을 맺었던 무함마드 왕세제가 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바로 그 UAE 대통령이다.

이런 인연을 갖고 있는 MB는 자신이 뿌린 씨앗이 이번 윤 대통령의 방문으로 결실을 거둔 것에 대해 크게 반겼다는 게 측근인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의 전언이다. 이 상임고문은 “이 전 대통령이 300억 달러 투자 유치를 듣고 기뻐했다”며 “MB가 ‘당시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크부대를 창설하길 참 잘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아크부대는 UAE에 파견된 한국군 부대다. ‘아크’는 아랍어로 형제란 뜻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양국 관계가 줄곧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 초기 양국 관계가 삐걱거리는 일도 있었다. 탈원전 정책과 바라카 원전 수주 당시 체결된 양국 간 비밀군사협약 때문이었다. 당시 상황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비밀협약에는 “UAE에 유사 상황이 발생하면 한국군이 자동 개입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뒤늦게 비밀협약의 존재를 인지한 문재인 정부가 2017년 송영무 국방장관을 파견해 협약과 관련한 새로운 협의를 시도하다 실패했다. 그 때문에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급파돼 가까스로 상황이 수습됐다고 한다. 당시 국내에선 임 실장의 UAE 출장 목적이 공개되지 않아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정부는 현재까지 이와 관련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MB 정부에서 비밀협약을 주도했던 김태영 국방부 장관이 2018년 1월 그 존재를 인정했을 뿐이다.

현재 양국 간 협력은 기대 이상의 윈-윈(win-win) 효과를 거두고 있다. 한국은 바라카 원전 등을 통해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고, UAE는 경제 분야 외에도 한국군 부대가 자국에 주둔함으로써 안보상의 이익도 챙기고 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양국 관계는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구조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의 경험이 사막의 기적을 만들어가는 UAE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서부터 윤 대통령까지 역대 대통령들은 빠짐없이 UAE를 방문하고 있다. 미·중·일·러 등 주요 4대 강국이 아닌 특정 국가를 한국의 역대 대통령이 빠짐없이 방문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양국 관계도 ‘미래지향적 동반자 관계(2006년)’에서 ‘전략적 동반자 관계(2009년)’,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2018년)’로 지속적으로 격상됐다.

일각에선 UAE가 멀리 떨어져 있는 한국을 통해 얻는 이익이 얼마나 될까 하는 시각도 있다. 비밀군사협약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양국 관계의 급속한 진전은 당시 급변하는 중동 정세와 맞물려 필연적으로 진행된 측면이 있다. 당시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미·중 경쟁과 갈등이 심화되면서 중동보다 아시아를 중시하는 ‘피벗 투 아시아(Pivot to Asia:아시아로의 회귀)’ 정책을 펼쳤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에 안보를 의존했던 UAE의 입장에선 군사력 강화와 함께 동맹의 다변화가 절실했다. 이때 한국이 원전 건설을 계기로 새로운 안보협력 파트너로 등장한 것이다.

특히 2011년 민주화 시위인 ‘아랍의 봄’으로 인해 중동 일대가 혼란에 빠졌을 무렵, UAE는 주변국 위주의 외교에서 탈피하는 새로운 외교전략을 필요로 했다. 국제적인 ‘중추 국가’로 성장하지 못하고 중동 지역 내 협력만을 추구할 경우 안정적인 국가 경영이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그 파트너로서 가장 적합한 나라 중 하나가 바로 한국이었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는 “당시 UAE 입장에서는 원전 건설 못지않게 국외 위협으로부터 안전을 지키는 것도 중요한 문제였다. 한국과 군사적 협력 관계를 맺은 것은 일거양득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긴밀한 관계를 구축한 양국 간 협력은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는 “UAE는 한국이 중동에서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은 처음이자 유일한 나라다. 그동안 원전과 아크부대에 한정됐던 협력관계를 우주, 수소, 방위산업, 해양 분야 등 다방면으로 확대해 탈석유 시대의 미래 동반자로 성장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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