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하기보다 음미한다” 전통주·와인 즐기는 MZ세대

원동욱 2023. 1. 2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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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 바뀐 음주 문화
지난 6월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고객이 전통주를 고르고 있다. MZ세대의 주류 소비 문화가 변하며 전통주를 향한 인기도 증가하고 있다. [뉴시스]
#회사원 김도형(31)씨는 최근 다양한 지역의 전통주를 맛 보는 것에 푹 빠졌다. 김씨는 “지역 특색이 있는 막걸리부터 전통 소주들까지 하나하나 마셔보면서 맛을 비교하는게 재밌다”며 “과거에는 취하려고, 기분을 올리려고 술을 먹었다면 요즘은 다양한 전통주와 안주를 페어링해서 즐기는 셈”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서 매년 우수 제품을 선정하여 시상하는 ‘우리술품평회’에 나온 술을 모두 마셔 보는 것이 올해 목표라고 한다. 그는 “맛있는 전통주를 찾아 부모님께 선물하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덧붙였다.

#대학생 박준현(27)씨는 최근 와인·위스키 동호회에 가입했다. 주 1회씩 다양한 종류의 와인과 위스키를 서로 가져온 뒤, 준비한 안주와 함께 페어링해서 음미한다. 위스키나 와인의 경우 가격도 비싸고 용량도 크다보니 혼자 먹기엔 부담이 크다. 하지만 동호회를 통하면 큰 부담없이 다양한 종류를 접할 수 있어 주머니가 가벼운 젊은 세대에게 인기다. 박씨는 “또래들과 함께 모여 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즐기다보면 삶이 좀더 풍부해지는 기분”이라며 “역사 깊고 유명한 와이너리나 제조장의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술을 만든 나라의 문화, 지역 특색, 전통 등을 알게 되고, 단순히 술을 마시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느낄 때가 있다”고 전했다.

전통주 시장 6년 새 2배 넘게 성장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부어라 마셔라’를 넘어 술을 음미하는 시대가 왔다. 최근 몇 년 사이 소주와 맥주가 단단하게 지키고 있던 자리를 전통주 등의 다양한 주류가 대신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2017년 월평균 주종별 음주 비중은 소주 31%, 전통주 16.2%였지만 2021년에는 소주 비중은 25.4%로 감소한 반면 전통주는 20%로 늘었다. 소주의 절반 수준이던 전통주 비중이 4년만에 80% 수준까지 격차 좁힌 것이다. 가장 선호하는 주종의 경우에도 2017년 26.2%였던 소주는 2021년 20.8%로 하락했고, 그사이 전통주는 11.6%에서 16.2%까지 상승했다.

각 업계가 주목하고 있는 소비자층인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사이에서는 나에게 맞는 술, 즐길 수 있는 술 등 자신의 취향을 확연하게 보여 주는 술을 찾아 마시는 것이 당연하다는 문화가 자리잡았다. 온라인 몰 11번가에 따르면 2021년 20·30대의 전통주 구매량은 팬데믹 이전과 비교해 각각 63%, 78% 증가했다.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만든 ‘폭탄주’를 단번에 들이키는 회식 문화도 갈수록 찾아보기 어려워진다. 직장인 이민정(35)씨는 “콜키지 프리(개인이 가져온 주류를 별도의 비용 없이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서비스) 식당을 찾아 각자 마시고 싶은 전통주나 와인을 가져와 안주와 함께 즐기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회사 회식에서도 소맥을 취할때까지 먹기보다는 각자의 취향을 존중해 술을 즐기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취하기보다 즐기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것이 요즘 MZ세대의 주류 문화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2021 주류 시장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선호하는 음주 트렌드(복수응답) 상위 5가지는 편의점 구입(67.4%), 홈(Home) 술(48.0%), 즐기는 술(33.7%), 혼술(30.8%) 이다. 회사원 김서형(29)씨는 “술은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이어주는 효과적인 매개체이자 새로운 취미의 영역”이라고 말했다. 좋아하는 술이 무엇인지 서로 의견을 나누다보면 자연스레 취향을 알 수 있고,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네트워크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이런 문화는 전통주 시장의 확대로 이어졌다. 2015년 408억8200만원이었던 전통주 시장의 규모는 2021년 954억6900만원으로 2배 이상 뛰었다. 또한 외식 프랜차이즈 전문 기업 더본코리아의 전통주 커뮤니티 ‘백술닷컴’이 2021년 자사 회원을 대상으로 분석한 전통주 소비 트렌드 분석에 따르면, 전통주를 구매하는 회원 중 20~30대 비율이 66%로 가장 높았다. 40대가 32%, 50대가 3%였다. 전통주 업계에서도 MZ세대를 주목하고 있다. ‘고흥 유자주’로 이름을 알린 ‘어떤하루’의 김다은 이사는 “과거보다 젊은 세대들이 전통주를 많이 찾는 것이 판매를 하다보면 체감된다”며 “직접 생산공장까지 와서 유자주를 사가는 2030 손님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소주+맥주 ‘폭탄주’ 회식 드물어

MZ세대의 취향 맞춰 다양한 종류의 주류가 판매되고 있다. [뉴스1]
고흥 유자주는 해당 지역의 농산물로 빚는다. 명욱 주류칼럼리스트(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교수)는 “전통주 같은 경우 지역의 농산물이나 특산물과 연계해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며 “하나의 전통주가 인기를 얻으면 해당 지역 농민들과 산업 전반적으로도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 역시 “유자주가 인기를 얻으면서 꾸준히 지역 농장과 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며 “젊은 세대들이 꾸준히 즐길 수 있는 전통주를 빚기 위해 지역사회와 함께 노력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위스키나 와인도 MZ세대들의 ‘즐기는 술’ 취향의 대상이다. 최근 유명 위스키의 경우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품귀 현상이 발생할 정도다. 지난 6일, 7일 진행한 이마트의 ‘신년 맞이 위스키 런데이’는 일명 ‘위스키 지도’로 2030 세대 사이에 퍼지며 몇몇 이마트 지점에는 오전 4시부터 문을 열 때까지 줄을 서 기다리는 ‘오픈런’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날 위스키 오픈런에 참여한 최유호(31)씨는 “인기가 많은 스코틀랜드산 발베니·맥켈란, 평이 좋은 일본산 히비키·야마자키 같은 싱글몰트 위스키를 마셔보고 싶었는데 구하기가 어려워 일찌감치 줄을 섰다”며 “몇몇 친구끼리 각기 다른 지점에서 오픈런을 한 뒤 나눠먹자는 계획을 세우는 지인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2030세대가 위스키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내일연구소가 발표한 ‘2022 MZ세 데이터 총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MZ세대는 위스키에 대해 ‘성공한’ ‘어른들이 마시는’ ‘럭셔리한’ ‘전문적인’ 등의 키워드를 떠올렸다. 소셜미디어(SNS)를 즐겨하는 MZ세대는 위스키나 와인 등의 사진을 올리며 자신만의 이미지와 취향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최근 2030을 중심으로 시작된 하이볼 열풍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위스키에 탄산을 섞어 만드는 칵테일 하이볼이 유행하며 주 재료가 되는 가쿠빈 등 특정 위스키가 품귀 현상을 겪기도 했다. 대학원생 유경진(28)씨는 “코로나19로 인해 홈(Home)술을 하면서 나만의 레시피로 하이볼이나 칵테일을 만들게 됐다”며 “취향에 맞게 제조해서 마실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MZ세대의 취향 맞춰 다양한 종류의 주류가 판매되고 있다. [사진 GS리테일]
국내 위스키 매출은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마트 트레이더스에 따르면 위스키 연매출 신장률은 2020년 91.5%, 2021년 140.9%를 기록했다. 홈플러스에서도 2022년 위스키 매출이 전년 대비 22% 증가했다. 위스키의 수입량도 증가했다. 한국주류수입협회에 따르면 2021년 상반기 682만9177L던 위스키 수입량이 2022년 상반기에는 1118만9000L로 2배가량으로 늘었다. 오픈런의 주 타켓중 하나였던 싱글몰트 위스키 발베니의 김미정 브랜드 앰버서더는 “최근 위스키, 특히 싱글몰트 위스키에 대한 관심이 다양한 연령층으로 확산하면서 수요가 많이 늘었다”며 “단순히 술을 마시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증류소의 역사와 자연 환경, 제조 방식 등에 따라 달라지는 향과 맛을 비교해 음미하는 문화가 점차 자리잡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형마트와 편의점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고 가격대도 다양한 와인 또한 꾸준히 MZ세대의 취향을 자극한다. 서울에서 와인바와 와인 동호회를 운영하고 있는 임현섭(37세)씨는 “젊은 세대는 와인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소믈리에 자격증에 도전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며 “단순히 화이트와 레드 정도로만 나누던 기성 세대와는 달리 이들은 레드와인만 해도 카베르네 쇼비뇽, 피노 누아, 메를로 같은 대표 품종은 물론 이탈리아의 산지오베제나 스페인의 템프라니요까지 다양한 나라, 다양한 와이너리의 다양한 품종을 구분해 즐긴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음주 문화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고 설명한다. 명욱 주류칼럼니스트는 “마시고 취하는 문화에서 술의 맛과 향을 음미하는 쪽으로 변하면서 주류 시장이 다양성이 높아지고 질적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맞이했다”고 말했다. 진로 소주, OB 맥주, 장수 막걸리만 들어있던 과거 수퍼마켓 냉장고와 수십 종의 소주·맥주·막걸리를 진열한 요즘 마트·편의점 냉장고를 비교해보면 실감이 날 것이다. 그는 “무작정 취하면 장땡이던 문화보다 건강하고 건전한 음주문화가 생기는 것은 주류 시장은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도 고무적인 일”이라고 덧붙였다.

원동욱 기자 won.dong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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