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픽처] 소재의 벽 높은 '교섭'vs 시대와 장르 겉도는 '유령'

김지혜 2023. 1. 20.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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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아바타:물의 길'과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롱런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영화 두 편이 설 연휴 극장가를 공략한다. 영화 '교섭'과 '유령'이다.

'교섭'은 최악의 피랍사건으로 탈레반의 인질이 된 한국인들을 구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한 외교관과 현지 국정원 요원의 교섭 작전을 그린 영화다. 2007년 발생한 샘물교회 피랍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황정민과 현빈이 주연을 맡고 '와이키키 브라더스', '제보자', '리틀 포레스트' 등을 연출한 임순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유령'은 1933년 경성, 조선총독부에 항일조직이 심어 놓은 스파이 '유령'으로 의심받으며 외딴 호텔에 갇힌 용의자들이 의심을 뚫고 탈출하기 위해 벌이는 사투와 진짜 '유령'의 멈출 수 없는 작전을 그리는 영화. 이하늬, 박소담이 주연을 맡고 '천하장나 마돈나', '독전' 등을 만든 이해영 감독이 연출을 담당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수년째 이어지면서 추석과 설 연휴 극장가는 한동안 기대작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2023년 설 연휴는 톱스타들을 내세운 중량감 있는 장르 영화 두 편이 동시에 개봉해 '아바타2',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4파전을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 '교섭', 감정 이입을 막는 소재의 벽…배제한 물음표들

샘물교회 선교단의 피랍은 사건 발생 당시에도 국민적 여론이 양분됐었던 사건이다. 물론 소재 자체는 영화적이다. 그러나 민감한 소재인 만큼 이야기의 관점과 메시지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난제에 가까워 보였다.

'교섭'은 사건이 아닌 사람에, 정확히는 인질이 아닌 인질을 구했던 교섭가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만듦새는 나쁘지 않다.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캐릭터들이 등장하며, 갈등과 위기를 거쳐 극적으로 사건이 해결되는 구성 안에서 톱배우들의 매력과 활약이 더해졌다.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사건을 등장시킨다. 빠른 전개를 위한 선택인 동시에 연출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오프닝이다. 영화는 논쟁의 소지가 다분한 실제 사건에 대해 관점이나 시선은 배제한 채 극을 진행시킨다.

임순례 감독은 사건 자체가 아닌 사건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휴머니즘 말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떤 원인과 결과로 사건이 발생했든 목숨이 위태로운 자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자 책임이라는 것, 또한 국가의 체면이나 돈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생명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외교부 직원 재호(황정민)와 국정원 요원 대식(현빈)이 탈레반과의 교섭에 총대를 메게 된다. 원리와 원칙을 중시하는 재호와 현지에서 장기간 체류한 대식은 경험과 촉을 내세우며 교섭의 방법을 두고 갈등을 빚기도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결국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는 것에 뜻을 함께하고 협력해 나간다.

감독의 좋은 의도와 메시지는 영화 내내 부유하는 느낌이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질문들을 피해 간다. 비록 그것에 대한 시선이 엇갈리고 논쟁의 여지가 있다 해도 배제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이러한 과정 자체가 사건에 대한 여러 관점과 해석, 이해를 수용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교섭'은 "왜, 지금, 다시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에 대해 관객을 설득하지 못한다.

영화 내내 핵심을 비껴다가 보니 사건의 피해자, 사건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에게도 감정을 이입하기 힘들다. 인질의 모습은 상황의 공포를 극대화시키기는 하지만 그들에 대한 연민이나 공감의 정서로 이어지진 않는다. 또한 교섭가들의 피와 땀, 절박함에도 감정을 싣기가 어렵다. 오토바이 추격신, 총격전 등 볼거리도 놓치지 않는 영화지만 장르적 쾌감을 오롯이 즐기기엔 앞서 말한 진입장벽들이 크게 다가온다.

외교부의 교섭 작전은 냉정하게 말해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교섭 초기 외교부가 내세운 기조는 뜻하지 않은 위기를 연달아 맞이하며 허물어지고 결국 최선이 아닌 차선의 선택을 하게 된다. 영화는 이러한 과정을 갈등-위기-해소의 흐름으로 긴박감 넘치게 보여주지만, 보는 이들의 가슴은 뜨겁게 달아오르지 않고 되레 차가워진다.

'교섭'은 시작부터 끝까지 따라다니는 '왜?'라는 거대한 물음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매듭을 지은 미완의 영화가 됐다. 사실 이 교섭은 어떤 논쟁을 거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다시 그때로 시계추를 돌린다고 해도 그들의 선택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이 사건을 투영해 영화가 하고자 한 이야기로 이것이 최선이었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어쩔 수 없다.

◆ '유령', 깊이도 울림도 없는 일제강점기 판타지 활극

2015년 '경성학교:사라진 소녀들', 2018년 '독전'을 통해 스타일리시한 연출력을 인정받았던 이해영 감독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추리극과 액션물을 결합하는 도전을 했다. 신작 '유령'은 전반부 한 시간은 유령 찾기가 중심이 되는 추리극, 후반부 한 시간은 항일조직 흑색단의 활약을 그린 액션물로 구성된 복합장르 구성을 띤다.

감독의 거대한 야심에 비해 그 결과물은 산만하고 엉성하다. 전반부의 추리적 요소는 애초에 팽팽하게 이어갈 생각이 없었던 것처럼 허무하게 무너지고, 후반부 액션은 개연성 부족과 비현실적 설계로 영화를 일순간 판타지물로 전락시킨다.

시대의 비극이 이 작품에서는 액션 활극의 배경 혹은 무대로만 소비된다. 영화 속에서 조선은 한옥과 서양식 건물, 한복과 기모노와 서양 복식이 혼재하며 이국적 아름다움을 뽐내는 공간으로 등장한다. 또한 억압하는 일본과 저항하는 독립군의 대립은 액션의 카타르시스가 폭발하는 기제가 된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미술, 과시적인 미장센은 영화 내내 빛나지만 허술한 이야기와 빈약한 캐릭터는 극이 전개될수록 한계를 드러낸다. 비장미 넘치는 대사를 쏟아낸다고 해서 시대의 아픔이 관객에게 전달될 것이라고 생각한 걸까. 겉멋이 잔뜩 든 대사에서 깊이나 울림은 느껴지지 않는다. 두 여배우가 '담배'를 소재로 나누는 시답잖은 대사는 최악이다.

캐릭터 조형도 기대 이하다. 조선 재력가의 딸이지만 신념을 위해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박차경(이하늬), 조선인임에도 정무총감 비서 자리까지 오른 유리코(박소담),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비극적인 가족사까지 극복해야 했던 총독부 감독관 무라야마 준지(설경구)의 사연은 캐릭터의 매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좋은 재료였다. 이들의 딜레마는 연출의 층위를 통해 영화적으로 활용할 여지가 많았지만 감독은 눈요깃감처럼 한, 두 에피소드나 몇 번의 대사로 간단하게 처리해버리고 만다.

이하늬가 연기한 박차경, 박소담이 연기한 안강옥이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해 돋보이기는 하지만 이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배우들이 캐릭터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남긴다. 깊이도 의미도 없이 소비된 캐릭터가 많다. 그 대상이 설경구, 박해수라는 것은 영화 자체로도 막대한 손해다. 역할의 크기나 비중이 문제가 아니다. 설경구가 연기한 무라야마의 경우 그나마 입체적으로 묘사된 것처럼 보이지만, 극 안에서 이 인물의 쓰임이나 마무리를 생각하면 배우의 역량을 보여주는데만 신경을 쓴듯한 인상을 준다.

두 여성 주연은 캐릭터 자체로 완결성을 획득하지 못한 채 몇몇 장면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고, 나머지 배우들은 캐릭터로서도 연기로서도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이야기 내내 겉돌다가 초라하게 퇴장하고 만다.

영화는 후반부 30분의 액션을 위해 달려온 것처럼 보인다. 이해영 감독은 두 여배우의 활극을 통해 시각적 쾌감을 선사하고자 한다. 그러나 영화 전체에서 가장 힘을 준 이 장면들은 시대 활용도 장르 설정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던 이야기를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보내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유령'의 액션은 스토리, 캐릭터와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액션을 위한 액션이다.

영화는 시대 혹은 역사를 허용범위 안에서 극화하고 변주할 수 있다. 이것은 창작자인 감독의 자유이자 능력이며, 감독의 영화적 상상력을 연기로써 시각화해 주는 것이 배우의 역할이다. '유령'은 감독의 취향과 야심만 보인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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