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호의미술여행] 다시 한 해를 보내며

2023. 1. 20.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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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 항구 풍경이다.

로랭이 많은 사람의 다양한 모습과 풍경을 한 장의 그림에 담았지만 그렇게 산만해 보이지 않는다.

음력으로 다시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시작된다.

그러다 보니 해가 지며 항구가 어슴푸레한 이 그림이 지금에 제격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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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 항구 풍경이다. 정박한 배는 이미 돛을 내렸고, 멀리서 배가 서둘러 들어오고 있다. 부푼 마음으로 아이까지 데리고 나온 여인들이 항구 한쪽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람들이 건너편 건물 앞과 여기저기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술에 취한 듯 목소리를 높이는 남정네도 보이고, 몸싸움을 벌이는 사람들까지 뒤섞여 저녁 풍경이 어수선하다. 프랑스 화가로 로마에서 주로 활동했던 클로드 로랭의 고전주의 풍경화 작품이다.
클로드 로랭, ‘해질녘의 항구’(1639)
로랭이 많은 사람의 다양한 모습과 풍경을 한 장의 그림에 담았지만 그렇게 산만해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 정박한 배의 깃대들과 건너편 건물의 수직선이 그림의 세로축을 이루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수평선이 그림의 가로축이 되는 단순한 구도 안에 담았기 때문이다. 또 사람들이 모인 전경, 들어오는 배와 그 주변인 중경, 그리고 해지는 모습인 원경이 그림 전면을 향해서 평행을 이루게 배열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림을 몇몇 규범으로 묶어두면 답답해 보일 것을 우려해서 로랭은 노을빛과 붉게 물든 하늘의 화려한 분위기가 화면 전체를 휩쓸며 밀려오는 느낌도 표현했다. 이성적 구성으로 화면 안에 절제된 형식을 만들고, 거기에 색채를 이용한 감성적 느낌도 덧붙였다. 이처럼 17세기 프랑스 고전주의는 좀 독특했다. 이성적으로 그림을 절제 있게 구성했지만 그 안에 바로크 미술의 감성적 느낌도 담는 절충주의 방식이었다.

고전주의의 이런 특징에는 유럽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한 프랑스의 루이 14세 아래서 탄생한 양식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루이 14세 시대의 정치적 안정을 이성적 형식으로 나타내려 했다면, 당시 전 유럽으로 확산된 바로크 미술의 다채로운 감성적 경향으로는 그 시대의 영광을 담으려 했기 때문이다.

음력으로 다시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시작된다. 그러다 보니 해가 지며 항구가 어슴푸레한 이 그림이 지금에 제격인 것 같다. 묵은 한 해를 다시 보내며 인사와 각오를 다시 새롭게 다져 보는 우리들의 마음에.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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