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탄핵도, 羅 린치도…발단 팩트 논쟁이 달갑지 않나[한기호의 정치박박]
"집단린치, 공포" 비판 자초…선관위원 일탈도
羅 헝가리모델 논의시사에 "정책 발표" 호들갑
"장관급 2자리" 거짓…내부총질 본말전도까지
태블릿PC 진상 멀리한 朴탄핵 과정 닮아가
다가오는 국민의힘 3·8 전당대회가 '탈(脫)경선'이다 못해 '반(反)지성주의' 자랑대회가 되는 느낌이다. 당대표 출마를 검토하는 인물 1명을 대통령실이 공개적으로 수차례 면박주고, 여권 자·타칭 실세가 '친윤(親윤석열)·반윤(反윤석열) 감별사' 행세를 하고, 더불어민주당 강경파 초선 10여명의 '처럼회'의 5배수에 달하는 여당 초선 50명이 자당 원외인사를 전례없이 "대한민국에서 추방할 정치사기행위" 주체로 몰아세우는 연판장을 돌리며 세(勢)를 과시했다.
현직 전대 선거관리위원 2명이 연판장에 동참한 다음날 슬그머니 '일신상의 사유'라며 사표를 냈고, 위원장이 수리했다는 공지만 내며 쉬쉬하는 일도 생겼다. 수도권에 적(籍)을 둔 당권주자들은 "집단 린치" "공포 분위기" 우려를 꺼낸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회'는 일련의 상황에 묵인하거나 가세하기도 한다. 일련의 상황을 모두 함축하는 말은 윤심(尹心·윤석열 대통령 의중)이요, 흡사 용심(龍心) 반열에 오르고 있다. 당심(黨心)도 종속변수화할 조짐이다.
이는 보름여 동안 나경원 전 의원의 전대 출마 여부, 친윤-반윤 포지션 시비에만 세간의 눈길이 쏠리는 결과를 만들기도 했다. '윤심 타이틀 독점' 김기현 의원이 여론조사상 비(非)당원 지지층 상승세를 과시하는 것 외에, '김장(김기현·장제원)연대' 말고 '연포탕(연대·포용·탕평)' 주자로 불러달라는 묘한 레토릭이 중심 이슈처럼 다뤄지는 건 덤이다. 누가 당선되고 떨어질지 '결과'가 큰 흥미거리가 되지도 않을 것 같다. 그러나 '과정'에서 드러난 '비정상'은 두고두고 부각될 전망이다.
사실중시, 자유, 공정, 경쟁 등 우파진영이 내세우던 가치는 깨져나가고 힘과 수적 우위 과시만 남았다. 발단 사건인 지난 5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던 나경원 전 의원의 신년간담회 당시 발언을 보면, 그는 보건복지부 출입기자들 질문에 답하며 "관련 정책을 보면 신혼부부 전세대출이나 주택구입자금 대출 관련해 '저리 대출'은 마련돼있는데 불충분한 부분이 있다"고 했다. 두달 전에도 본보 인터뷰에서 거론했던, '신혼 대출 2억원'을 전제한 헝가리 성공모델식 저출생대책을 꺼낸 전제다.
나 전 의원은 "출산과 연계해 이자를 낮추는 게 있는데, 이것보단 좀 더 과감한 정책, 일종의 원금 부분에 대해서도 탕감할 부분은 없나 '들여다보고 있다'"며 "(관계부처와) 함께 정돈하게, 정책적으로 정리하고 검토·논의해야 할 부분"이라고도 했다. 위원회 실무검토로 '연 12조원 소요' 추산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튿날(6일)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개인 의견일 뿐"이라며 "윤석열 정부의 관련 정책 기조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이례적인 '실명 저격' 브리핑에 나섰다.
뒤이어 "위원장인 대통령과 전혀 조율되지 않은 정책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는 등 용산 '익명 관계자'들이 내리 질책했다. 놀란 여론엔 '나경원'과 '빚 탕감', '윤심으로부터 배제'만 각인됐다. 어떤 대출 탕감을 논했는지, 상환능력 없는 소액연체자 등 빚 탕감을 단골 공약 삼던 민주당과 똑같다는 건지, "들여다보고 있다"는 답변이 곧 정책발표인지, "집행기구처럼 일하라"던 대통령의 명(命)은 힘실어주기가 아니었는지, '첫째~셋째 출산'이란 조건의 불가결성, 정부 기조는 효율지상주의인지 등 논쟁은 제껴졌다. '4자녀 시 소득세 평생 면제' 헝가리 사례나 '3자녀 이상 시 국가임대주택 무료·취업보장' 스웨덴 사례까지 제시했던 전(前) 대선주자가 이제 와 "좌파 포퓰리즘"이라 질타하는 촌극도 있었다.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과 시행령대로면 나 전 의원의 사의 표명(지난 10일)으로 위촉위원 '해촉' 요건이 갖춰졌는데, 용산은 꼬박 사흘 뒤에야 그를 기후환경대사직과 나란히 "해임"했다고 '공무원 징계'하듯 브리핑했다. 분야 관련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자'가 위촉 요건이고, 위원장 권한으로 간사위원(부위원장)에 지명되더라도 '당적을 가진 민간인' 지위가 그대로였다는 게 나 전 의원 측의 반박이다. 장관들이 당연직 위원이니 간사면 장관급으로 볼 순 있다. 하지만 '해임' 고집에, 윤 대통령의 상징인 '법대로'는 무색해졌다.
기후환경대사도 정식 특명전권대사(차관급~장관급)와는 다른, 무보수·명예직·임기1년에 외무공무원법 적용을 받지 않는 대외직명의 일종이었다. 나 전 의원이 지난해 11월 이집트에서 열린 COP27에 참석한 실질 근거도 대외직명보단 '대통령 특사' 자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자리까지 싸잡아 친윤 실세 장제원 의원, 연판장에 이름 올린 초선들, 지도부 등은 "본인(나 전 의원)이 그토록 원해서 맡겨진 2개의 장관급 자리를 무책임하게 수행했다"고 입을 모았다. 사실검증이 결여됐으면 마타도어다.
장 의원이 "대통령이 임명한 공직으로 대통령과 거래를 시도했던 패륜"이라고 규정한 일도 있다. 그러나 전임(1·2대) 저고위 부위원장은 국회 보건복지위원이 겸직했으며, 지난해 10월초 여당 복지위 간사 겸직 몫이던 걸 모 수석의 선제안에 맡았단 게 나 전 의원의 반박이다. '이준석 파동'에 당심이 나 전 의원에 쏠리던 때 당권 도전과 직책을 '거래'한 거라면 '시도'는 누가 했나. 말없던 용산은 "해임이 대통령의 본의가 아닐 것"이란 나 전 의원의 말에 "대통령의 정확한 진상 파악에 따른 결정"이라며 윤심을 재하달하기만 했다.
대통령비서실장이 여당 전직 중진의 "처신"을 꾸짖는 광경도 생경하다. 정치원로인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상하관계를 다투진 않았다. '내부총질'의 뜻도 왜곡되고 있다. 교섭단체대표연설로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대통령을 때린 여당 원내대표나, 대선주자와 주도권 다툼하며 2차례 선대위를 이탈한 당대표에 따라붙던 말이다. 경선 여론조사 100%(당원투표 0%)론도 이들 계파에서 나오면 초선그룹이 따랐다. 그 반대편에 섰던 정치인의 전대 출마가 갑자기 "유승민·이준석의 길"이 될 수 있나.
탈진실 측면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초기와도 일부 겹쳐 보인다. 지난 13일 장 의원은 나 전 의원에 대해 "박해받아 직에서 쫓겨나는 것처럼 약자 코스프레"한다며 "대통령 위하는 척 하며 반윤의 우두머리가 되겠다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2017년 1월로 시계를 돌려보면, TV조선 '강적들'에 출연한 '보수신당(바른정당) 대변인' 장 의원은 탄핵심판 중이던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자신이 임명한 검찰로부터 박해 받는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친근한 정치인에서 귄위주의적 우두머리로 변했다" 등 혹평을 쏟아냈다. 탄핵 찬성은 당시 나경원 의원·김기현 울산시장도 마찬가지였으나, 새누리당을 떠나진 않았다. 나 전 의원은 '안보는 보수·경제는 진보'라던 유승민 전 의원 노선을 합류 반대 사유로 들기도 했다.
대통령실의 압박전 명분이 된 저출생대책 논의가 실종된 채 '친윤이냐 반윤이냐' 정치공세만 확대되는 패턴도 그렇다. '국정농단 스모킹 건'이라며 JTBC에서 2016년 10월24일 보도한 건 "최순실PC"였다. 대통령 연설문을 최서원씨(개명 후)가 수정했딴 의혹이나, 박 전 대통령 정신지배설이나 퇴폐 섞인 루머를 대확산시킨 계기였다. 200여개 파일 출처가 '최씨의 사무실 쪽에서 폐기처분한 짐 가운데 나온 컴퓨터'라는 후속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25일)부터 컴퓨터는 '최순실 태블릿PC'로 바뀌어 불렸고, 검찰 입수 소식까지 들렸다.
이때 독일에 있던 최씨로부터는 "나는 태블릿을 갖고 있지도 않고, 그것을 쓸줄도 모른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친박(親朴)·보수진영에서 태블릿PC 조작 의혹 제기도 이어졌다. 그러자 2017년 1월 윤 대통령이 수사팀장이던 박영수 특검팀은 최씨 조카 장시호씨가 제출했다는 태블릿PC 실물이라며 단말기 외양만을 선보이거나, 후일 제2·3 태블릿 존재를 주장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 한편에서 JTBC는 "어쩌면 최순실PC들 따위는 필요없었는지도 모릅니다"라는 뉴스룸 앵커 브리핑을 했다. 지문감식같은 기초검증은 줄곧 결여됐다.
이후 포렌식 등으로 확인된 최순실PC 파일은 드레스덴 연설문 등 수 건에 불과했다고 한다. 2022년초로 시계를 당겨보면, 5년 전 특검을 출처로 "잠금 패턴이 'L자'로, 이미 압수된 다른 최씨의 휴대전화·태블릿과 동일했다"고 보도했던 언론사들은 "사실과 달라 삭제한다"는 정정보도문을 뒤늦게 냈다. 검찰·특검에 휴대전화를 압수당한 사실도, 'L자' 패턴을 설정한 적도 없다는 최씨의 반박이 통했다. 법원에선 검찰이 태블릿을 최씨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판결도 나왔는데, 실물이 있는지 없는지 반환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을 회고하자면 대기업으로부터 K스포츠재단·미르재단 출연을 받아낸 자체가 최씨에 대한 '제3자뇌물죄'라는 소추 논리가 빠졌고, 세월호 참사를 '(대통령의)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으로 규정한 소추사유도 기각됐다. 검찰 수사·처벌 단계에선 두 재단 출연기업별로 '강요냐 3자뇌물이냐' 판단이 엇갈리는 등, 발단과 크게 멀어졌다. 2년 전 확정된 박 전 대통령 형량은 징역 22년(벌금 180억·추징금 35억원)이지만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새누리당 총선 공천개입 등 별건수사의 종합체였다. 속된 말로 '답은 이미 정해뒀고, 절차나 사유는 얼렁뚱땅 아무래도 좋다'는 일이 보수여당에서 '선수'만 바꿔 재연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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