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55년전 나포한 푸에블로호 반환하라” 美하원 결의안 발의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2023. 1. 20.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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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하원에서 1968년 동해 공해상에서 북한에 나포된 미 해군 소속 정찰함 푸에블로호의 반환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발의됐다. 공화당 소속 그레고리 스튜비 하원의원은 지난 17일(현지 시각) 북한의 푸에블로호 나포와 승조원 억류는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며 푸에블로호의 반환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결의안(H.Res.44)을 발의한 것이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이것이 “118대 새 의회에서 한반도를 특정해 처음으로 발의된 안건”이라고 19일 보도했다. 과거에도 미 의회에서 푸에블로호 반환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발의된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실제 결의가 이뤄지지는 않았다.

-푸에블로호는 어떤 배인가?

푸에블로호는 경화물선을 개조해 만든 미 해군의 정찰함이다. 1968년 1월 23일 낮 북한 원산 앞 공해(公海)상에서 정보를 수집하던 중 북한 초계정의 공격을 받고 북측에 나포됐다. 국제법상 영해 바깥의 공해에서는 군함과 민간 선박을 가리지 않고 모든 선박이 항행의 자유를 누린다. 푸에블로호는 “국적을 밝히라”는 북한 초계정의 무전 질의에 “미국 소속”이라고 답변한 뒤 “공해 상에 있다”고 알렸다. 그러나 북한 측은 무장 초계정 4척과 미그기 2대로 푸에블로호를 포위한 뒤 무장 군인들을 푸에블로호에 승선시켜 원산항으로 끌고 갔다. 북한에 나포될 당시 푸에블로호에는 미군 장교 6명, 사병 75명과 민간인 2명 등 총 83명이 탑승하고 있었고 나포 과정에서 1명이 숨졌다.

-미국은 어떻게 대응했나?

나포 사실을 안 뒤 미국은 항공모함과 구축함을 동해로 옮겨 원산만 부근에 배치했다. 또 오산과 군산 기지에 2개의 전투기 대대를 급파하는 등 다른 군사적 조치도 취했다. 하지만 당시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감으로 미국 내 반전 여론이 높았기에 미국 정부는 협상을 통한 해결을 선호했다. 30여 차례의 비밀회담 끝에 미국이 사과를 하고, 북한은 325일 동안 억류하고 있던 승조원을 전원 석방하기로 합의했다. 미국은 북한에 억류 중이던 승조원들을 보호하고 크리스마스 전에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북한이 요구한 ‘영해 침범 사과문’ 작성에 동의했다. 푸에블로호 승무원 82명은 1968년 12월 23일 판문점을 통해 미군에 인계된 후, 고향으로 돌아갔다.

-푸에블로호는 어디에 있나?

북한은 푸에블로호의 선체를 미국에 돌려주지 않고, 사건 발생 후 30년 동안 원산항에 뒀다. 1999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푸에블로호를 평양 대동강 ‘충성의 다리’ 근처로 옮기라고 지시했다. 그 후 푸에블로호를 미국의 사과문과 함께 전시해 놓고 반미 교육에 활용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후인 2013년에는 푸에블로호를 평양 보통강구역의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야외전시장으로 옮겨 체제 선전에 계속 이용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2018년 2월 푸에블로호 승조원과 가족들이 북한의 책임을 묻는 소송을 미국 법원에 제기하면서 재조명되기 시작, 미 정부의 자산인 푸에블로호를 돌려받아야 한다는 여론이 미국 내에서 다시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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