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늦춘 연금개혁 안 돼” 노동자 분노로 들끓는 프랑스
파업으로 파리 시내 대중교통 올스톱…마크롱은 “개혁 계속 추진”
파리 중심가 레퓌블리크 광장은 19일(현지시간) 정오 무렵부터 발 디딜 틈 없이 인파로 가득 찼다. 프랑스 최대 노조인 일반노동총연맹(CGT) 등 8개 주요 노동단체가 정부가 지난 10일 발표한 연금개혁에 반대해 ‘총동원’을 선언한 날이었다.
시위 참여자는 10대 청소년부터 퇴직을 앞둔 50대 중반 노동자 등까지 다양했다. 직장인 플로라(26)는 ‘존엄이 일상적인 것이 될 때까지’라고 적힌 팻말을 든 친구와 참여했다. 그는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누구나 존엄한 상태를 항상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플로라는 “나는 70세까지 일하고 싶지 않다”며 “퇴직 연령을 64세로 늦추려 하지만 한번 늦춰진 연령은 계속 늦춰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연금 문제 해결에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음에도 정부는 밀어붙이고 있다”고 말했다.
앙투안 카토네(32)는 “60세 넘어서까지 일을 계속하라고 하는 삶은 가혹하다”고 말했다. 한 중년 여성은 광장 옆 횡단보도에서 성난 목소리로 “그러니까 투표를 잘 해야 한다”고 외쳤다.
이날 프랑스 전역에서 100만명 넘는 인원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하는 퇴직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늦추는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마크롱 대통령은 연금개혁을 변함없이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파리교통공사(RATP)가 파업에 참여함에 따라 이날 아침 시내 지하철, 버스, 트램 등이 멈췄다. 프랑스 국유철도(SNCF) 노동자 46.3%가 파업에 돌입해 고속철도 TGV는 부분 운영했다. 도버 해협을 통해 프랑스와 영국을 오가는 여객선도 운항을 중단했다. 프랑스 교육부에 따르면 초등학교에서 42.35% , 대학 및 고등학교에서 34.66%의 교사들이 파업에 참여했다. 프랑스 전력공사(EDF) 노동자들이 파업에 참여해 이날 하루 전력 생산량도 감소했다. 라디오에서는 파업으로 음악만 나오는 채널도 있었다.
파리 시위대는 바스티유 광장을 거쳐 나시옹 광장까지 행진했다. 검은 복면을 한 급진 아나키스트 그룹이 경찰에 유리병을 던지는 등 소란을 일으켜 30명가량이 체포됐고, 오후 5시쯤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했지만 큰 충돌은 없었다.
CGT는 파리에서 80만, 전국 200만명이 시위에 참여했다고 밝혔으며 프랑스 내무부는 전국 112만명이 시위에 참여했다고 집계했다. 툴루즈(3만6000명), 낭트(2만5000명), 리옹(2만3000명), 보르도(1만6000), 몽펠리에(1만5000명) 등 파리 외 지방 각 도시에서도 대규모 인원이 모였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다수 프랑스인은 마크롱의 연금개혁에 반대하고 있다. 영국 노팅엄대학 프랑스 정치 연구자 폴 스미스 교수는 “많은 대중의 반대는 프랑스 모델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다”며 “마크롱 정부가 프랑스의 퇴직 연령이 다른 국가들보다 더 높다는 점을 지적하지만 사람들이 이것이야말로 ‘프랑스 모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작동하지 않는다”고 프랑스24에 말했다.
물가상승으로 인한 생활고도 연금개혁 반대 여론에 불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마리안(62)은 “(물가가 올라) 6개월 전부터 고기와 치즈를 먹지 않고 있다”며 “연금개혁을 하면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한 사람이 되고 만다”고 라디오프랑스에 말했다.
이날 스페인을 방문했던 마크롱 대통령은 “개혁은 변함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강력한 동원력을 보인 노조는 오는 31일 다시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국회는 오는 2월6일 연금개혁 법안의 토론을 시작할 예정이다. 상·하원은 3월26일까지 표결에 나선다. 의회가 법안을 거부하면 마크롱 대통령은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그러나 커다란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된다.
파리 | 박은하 유럽 순회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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