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마지막 순간까지도 표현하는 게 배우” 철칙 그대로였던 윤정희의 삶[플랫]

이아름·플랫팀 기자 2023. 1. 2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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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윤정희씨(본명 손미자)가 1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별세했다. 향년 79세. 고인은 2017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투병해왔다.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씨는 이날 “제 아내이자 오랜 세월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온 배우 윤정희가 19일 오후 5시, 딸 진희의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며 꿈꾸듯 편안한 얼굴로 세상을 떠났다”며 “생전 진희 엄마의 뜻에 따라 장례는 파리에서 가족과 함께 조용하게 치를 예정”이라고 기자들에게 보낸 e메일을 통해 알렸다. 백씨는 “1967년 영화 <청춘극장>을 시작으로 2010년 영화 <시>까지, 한평생 영화에 대한 열정을 간직하며 살아온 배우 윤정희를 오래도록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0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중인 영화배우 윤정희씨의 모습. 박민규 기자

알츠하이머로 어휘를 잃어가면서도 마지막 힘을 다해 시를 쓰는 미자를 연기한 <시>(이창동 감독·2010년)는 공교롭게도 고인의 마지막 영화가 됐다. 영화의 배역 이름은 고인의 본명이기도 했다. 실제 고인은 <시> 공개를 전후해 알츠하이머 증세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시> 이후에도 ‘영화배우’로서의 정체성을 버린 적이 없으나, 병세 악화 등으로 더 이상의 출연작은 남기지 못했다. 고인은 <시> 개봉 당시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영화는 삶을 재현하는 것이다. 삶에는 젊음만 있지 않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표현하는 게 배우의 몫”이라고 말했다.

고인은 1944년 부산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자랐다. 조선대 영문학과를 다니던 중 12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신인배우 오디션에 뽑혀 1967년 영화 <청춘극장>으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그해 대종상영화제 신인상, 청룡영화제 인기여우상 등을 받고 이듬해 <안개>로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시작부터 대중에게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문희, 남정임씨와 함께 196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다.

다작하는 배우였다. <신궁> <위기의 여자> <사랑의 조건> 등 참여한 작품이 약 300편에 달한다. 대종상, 청룡영화상, 부일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등에서 여러 차례 여우주연상·인기여우상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계를 호령했다.

영화 <시>의 한 장면, 윤정희는 알츠하이머로 어휘를 잃어가면서도 마지막 힘을 다해 시를 쓰는 미자를 연기했다. 미자는 배우 윤정희의 본명이기도 하다.

꾸준히 공부했다. 1971년 중앙대 대학원에서 한국 여성 배우의 역사를 연구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1973년 프랑스로 유학길에 올라 파리 제3대학에서 영화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1976년 피아니스트 백건우씨와 결혼했다. 이후 잠정 은퇴했다가 1994년 <만무방>으로 복귀했다. 다시 16년간 스크린을 떠났다가 2010년 <시>로 돌아왔다. 이 역할로 2011년 LA비평가협회와 시네마닐라국제영화제 등 국제 무대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으며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이후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 수여하는 ‘문화예술 기사 훈장’을 받기도 했다.

1995년 몬트리올영화제 심사위원, 2010년 뭄바이영화제 심사위원, 2006년 디나르영화제 심사위원과 청룡영화상 심사위원장 등을 지냈다. 2010년 즈음부터 알츠하이머 증세를 보였고 2017년에는 진단을 받았다.

고인이 세상을 뜨면서 그의 성년후견인을 둘러싸고 고인의 동생이 제기한 소송도 법적 판단 없이 종결될 것으로 보인다. 1, 2심은 딸 백진희씨가 고인의 성년후견인으로 지정된 것이 타당하다고 봤다.

평생 영화를 떠난 적 없다. 배우 활동을 하지 않을 때도 영화를 공부하고 영화제 심사위원을 지냈다. 2016년 윤정희 데뷔 50주년 특별전 ‘스크린, 윤정희라는 색채로 물들다’ 개막식 기자회견에서 고인은 “배우가 하기 싫었던 적은 한번도 없다. 전 하늘나라 갈 때까지 카메라 앞에 설 것이다”라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남편 백씨와 바이올린 연주자인 딸 진희씨가 있다.

▼ 오경민 기자 5km@khan.kr

플랫팀 기자 areumlee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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