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편집국 간부 김만배 돈거래' 중간조사 공개
“시민의 힘으로 창간해 한국 언론사 가운데 처음으로 윤리강령을 선언하고 기자 촌지 문제를 공론화했던 한겨레에 있어서 ‘도덕성’과 ‘신뢰’는 무엇보다 중요한 자산입니다. ‘편집국 간부의 김만배 사건 관련 진상조사위원회’는 이번 사건이 한국 사회에 던진 충격과 엄중함을 무겁게 인식합니다.”
한겨레신문이 20일자 자사 지면 2면 전체를 할애해 편집국 전 간부가 대장동 의혹 핵심 인물인 김만배씨와 돈거래를 한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중간결과를 공개했다. 한겨레는 ‘김만배 돈거래’ 사건이 터진 이후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를 위원장으로 진상조사위)를 꾸려 11일과 13일, 18일 세 차례 회의를 가졌다.
진상조사위는 종이신문과 인터넷에 <<strong>편집국 간부의 김만배 사건 관련 진사조사 중간경과를 알려드립니다>에서 “아직 사안별 최종 판단이 이뤄진 것은 아니다”며 “그럼에도 공개 가능한 범위에서 중간경과와 향후 계획을 최대한 투명하게 알리는 노력이 신뢰 회복으로 가는 길에서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진상조사위 “정상적인 금전거래로 보기 힘들다”
진상조사위는 전직 간부와 김씨의 9억원 돈거래에 대해 “정상적인 사인 간 금전거래로 보기 힘들고, 심각한 이해충돌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이 간부는 정치팀장을 맡고 있던 2019년 3월 김만배씨로부터 아파트 분양을 위해 9억원을 빌리기로 구두약정 했고 △계약금과 중도금 납입 시기에 맞춰 모두 5차례에 걸쳐 8억9000만원(선이자 1000만원)을 수표로 받았으며 △2021년 8월 금융권으로부터 잔금대출을 받아 중도금과 잔금, 경비 등을 치르고 빌린 돈 일부(2억원)를 갚았다.
전직 간부는 9억원을 빌리면서 차용증을 쓰지 않았고, 담보도 없었고, 이자에 대해서도 뚜렷하게 약속하지 않았다고 한다.
진상조사위는 “이 전 간부가 청약할 당시, 분양가 9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해선 중도금 대출이 되지 않았다. 분양금 규모에 비춰볼 때 김씨와의 9억원 돈거래가 없었다면 이 청약은 시도하기 힘들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 점에서 이 전 간부가 비상식적 돈거래를 통해 경제적 이득을 추구했다고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는 청탁금지법 등 실정법 위반 여부를 따지기에 앞서 언론인으로서의 청렴 의무 등 일반적인 상식 수준을 크게 벗어났다고 판단한다”고 했다.
진상조사위가 특히 주목한 부분은 이 전직 간부가 대장동 사건이 보도되기 시작한 2021년 9월 이후 최근까지 핵심 직책을 그대로 맡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기사의 지면 배치 등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직책을 맡고 있었고, 김만배씨가 부동산 사업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진상조사위는 이런 사실을 알고도 한겨레에 보고하지 않고, 직책을 유지한 것은 이해충돌 회피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판단했다.
작년 3월 인지하고도 10개월가량 보고하지 않아
조사 결과, 한겨레는 지난해 3월과 5월 두 차례 해당 간부의 돈거래 사건을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 있었는데, 사실관계 취재로 이어지지 못했다.
동아일보는 2022년 3월5일 “김만배씨가 중앙일간지 기자에게 집을 사줘야 한다며 돈을 가져오라고 해서 6억원을 줬다”는 취지로 <남욱 “김만배, 기자 집 사준다며 돈 요구…6억 전달”> 기사를 게재했다. 매체 이름이 언급되진 않았으나, 해당 간부의 돈거래 사실을 언론을 통해 처음 노출된 것이다.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이 기사가 나간 당일 해당 간부는 담당 부장을 찾아가 이 기사를 보여주며 ‘언론사 간부가’ 자신이라며 돈거래 사실을 밝혔다. 그러나 전직 간부도, 담당 부장도 돈거래 사건이 터질 때까지 10개월가량 회사에 아무런 보고를 하지 않았다.
진상조사위는 “최소한 이때부터는 이 전 간부가 돈의 출처가 남욱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을 통해 나왔고, 대장동과 관련된 돈임을 인지했다고 볼 수 있다”며 “더 이상 사인 간 거래라고 주장하기 힘든 대목”이라고 했다.
담당 부장은 진상조사위 조사에서 “2억원이 이미 변제된 점 등으로 미뤄 사인 간 거래라는 그 간부의 설명을 믿었다. 그래도 논란이 있을 거래이니,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당사자가 회사에 신고해야 하는 문제라고 여겼다”고 말했다.
진상조사위는 “당시 법조팀에서 이 기사를 주목하지 않아 별도의 기사보고를 하지 않았고, 사실관계를 알고 있는 이 부장은 기자들에게 이와 관련해 아무런 취재 지시를 내리지 않았음이 확인됐다”고 했다.
지난해 5월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 심리로 열린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의 50억원 수수 혐의 재판에서 증인 출석한 남욱 변호사는 “김만배가 2019년 5월 한겨레 기자에게 집 사줘야 한다며, 자신과 정영학 회계사로부터 3억원씩을 가져갔다”고 진술했다. 진상조사위는 “이 사건과 관련해 ‘한겨레’가 공개적으로 언급됐으나, 이를 알지 못한 사실도 조사에서 확인됐다”고 했다.
진상조사위, 최종 결과 투명하게 공개
진상조사위는 △돈거래 사실관계 확인 △회사에 보고되지 않은 과정 △해당 간부의 기사 영향 가능성 △회사 대응 과정 등을 조사하고 있다. 지금까지 대표이사를 비롯해 편집인, 편집국장 등 사내 관련자 14명, 사외인사 5명에 대해 조사를 진행했다.
진상조사위는 “해당 간부가 대장동 사건 관련 기사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쳤는지, 김씨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한겨레 인사가 추가로 더 있는지도 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모든 조사가 끝난 뒤 주주·독자·시민들에게 최종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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