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이란 특사 파견, 오버 아닌가” 시큰둥…중동 전문가 “총리급 정도는 가야”
대통령실 관계자, 지난 19일 스위스 현지 브리핑에서 ‘특사’ 질의에 “오버 아닌가 생각”
윤석열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 순방 중 불거진 ‘UAE의 적은 이란’ 발언 수습을 위해 국무총리급 ‘특사’를 파견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이 20일 나왔다. 이는 이란 특사 파견 질의에 ‘오버하는 행동’이라던 대통령실 관계자의 스위스 현지 브리핑 답변과 배치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희수 성공회대 이슬람문화연구소 석좌 교수는 이날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총리 정도로 가도 우리 국격에 큰 손상이 안 되는 것 같고, 이란은 정말 중요한 나라”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교수는 “미래 가치로 봐서, 그런 면에서 어떤 미래의 전략 하부 구조를 다진다는 면에서도 가장 최고위급 인사가 가면 갈수록 더 좋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의 발언은 ▲우리은행이 보유 중인 이란의 동결 자금 ▲고위급 특사 파견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노력 등을 언급한 후, ‘특사는 어느 정도 급으로 가야 한다고 보는가’라는 진행자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이 교수는 “대통령이나 대통령실이 명시적으로 사과할 것 같지 않다”며 “초기 대응을 놓쳐서 어려운 상황인데, 명시적인 사과를 못한다면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건가(생각해봐야 한다)”라고도 밝혔다. 비슷한 맥락에서 “개인적인 걱정은 대통령실의 외교 안보라인 핵심 인사들이 이란에 가진 인식이 부정적인 생각이 아닌가”라며 “그게 대통령에게 투영되니까 대통령께서 그런 발언을 하지 않았겠느냐”고 이 교수는 조심스레 추측했다.
이 같은 이유를 들어 이 교수는 “외교 안보라인의 점검과 쇄신도 이 시점에서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앞서 대통령실 관계자는 현지시간으로 지난 19일 스위스 취리히 현지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 발언을 두고 “아크부대 장병들에게 UAE가 직면한 엄중한 안보현실을 직시하면서 열심히 근무하라는 취지의 말씀이었다”며 “다소 이란 측에서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이보다 앞서 이란 측은 윤 대통령 발언 관련해 자국 주재 윤강현 한국대사를 ‘초치’하고, 우리 외교부도 사이드 바담치 샤베스타리 주한 이란대사를 초치하면서 일부에서 양국 관계가 공개적 외교 갈등으로 더 꼬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외교사절을 주재국 정부가 불러들여 입장을 전달하는 외교적 행위인 ‘초치’는 우방국들 사이에도 이뤄지지만, 이번 일에 비춰보면 공개적 항의의 뜻으로도 받아들여진다.
대통령실은 이란이 윤 대통령의 발언과 직접적 연관이 없는 한국의 ‘핵무장’ 가능성이나 양국의 기존 현안인 원화 동결자금 문제 등까지 거론한 데 대해 ‘초점’이 흐려진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이 역시 오해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현지 브리핑에서 관계자는 ‘이란에 특사를 보낸다거나 다른 고위급 대화도 염두에 두는가’라는 질문에 “오버를 하는 행동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답했다.
‘중동의 대국’인 이란은 한때 한국의 중동 내 주요 교역상대국이자 1962년 수교 이래 오랫동안 우호협력 관계를 이어온 사이지만, 최근 수년간 양국관계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이는 70억달러 상당으로 알려진 한국 내 이란의 동결자금 문제 때문이다. 이란은 2010년부터 IBK기업은행과 우리은행에 이란중앙은행 명의로 개설한 원화 계좌로 한국에 대한 석유 판매 대금을 받고 한국으로부터의 수입대금을 지불했다.
하지만 미국 트럼프 정부가 2018년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대이란 제재 복원의 일환으로 이란중앙은행을 제재 명단에 올리면서 이 계좌가 동결됐고, 한국의 의지와 관계없이 미국의 제재로 묶인 자금임에도 이란은 한국에도 거센 압박을 가하며 동결자금 반환을 끈질기게 요구해왔다. 2021년 이란 혁명수비대가 호르무즈 해협의 오만 인근 해역에서 한국 국적 선박을 억류했다가 풀어준 것도 동결자금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국 정부는 인도적 교역, 이란의 밀린 유엔 분담금 대납 등 우회로로 이란이 동결자금을 사용하게 하는 한편 이란과 P5+1(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독일)의 JCPOA 복원협상 과정에서 이 문제가 풀릴 수 있도록 상당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JCPOA 복원 협상 타결이 임박하면서 초기단계 이행 조치 중 하나로 한국 내 동결자금이 풀릴 것으로 기대되기도 했지만, 최근 들어 협상 동력이 다시 떨어진 상황이다.
이 교수는 라디오에서 ‘그게(오해 등이) 잘 안 풀릴 경우 일이 더 커져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같은 추가 조치에 이란이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보느냐’는 진행자 질문에 그럴 수 있다는 취지로 답하면서, “그 단계까지 가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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