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난리 이어 불난리"...화마에 터전 잃어버린 구룡마을 주민들
주민들 망연자실, 내복에 슬리퍼 차림으로 대피
지난해 8월에는 물난리
수해, 화재 반복되는 노후환경
이날 오전 6시 27분께 구룡마을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는 좁은 길이 실핏줄처럼 이어진 마을 중턱 4구역에서 거대한 연기를 만들어냈다. 코를 찌르는 매캐한 냄새도 사방에서 진동했다. 이에 구룡마을 주민 500여명은 긴급 대피했다.
화재 진압에 나선 소방관들은 방화복이 검게 그을리는 줄도 모른 채 진압에 열중했다. 고생 끝에 화재가 완전히 진압된 것은 이날 11시 46분께였다. 4구역 주택 96세대 중 60세대가 소실되고 이재민 60여명이 발생했다.
그렇게 지난해 8월 기록적 폭우로 수해 피해를 본 구룡마을 주민들은 설을 앞두고 다시 한번 화마로 터전을 잃는 아픔을 겪게 됐다.
이날 화재로 이재민이 된 주민들은 망연자실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마을 회관에 앉아 몸을 녹이고 있었다. 더구나 급한 마음으로 집에서 뛰쳐나온 주민들은 내복 차림에 슬리퍼를 신은 모습이었다.
구룡마을 4구역에 거주하던 70대 신모씨는 "내 몸 하나라도 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눈물을 훔쳤다.
최초 신고자 중 한 명이라는 신씨는 당시 긴박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새벽 6시 20분께 화장실이 가고 싶어 눈을 떴는데, 형광등과 김치냉장고에서 평소에 보이지 않던 불빛이 보이자 불안한 느낌이 들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 문을 열었다고 한다. 목격한 장면에 대해 신씨는 "반대편 지붕에서 큰 나무처럼 불이 확 하고 올라오는 게 보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내복 바람에 슬리퍼를 신고 나와 온 동네방네 집을 두드리며 "불이야"하고 소리를 질렀다. 얼마나 소리를 질렀을까, 불이 점점 번져 도망가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소방에 신고한 뒤 신씨는 짐을 챙기러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겉옷을 챙겨 입고 배낭에 짐을 챙기려 했으나 긴박한 마음에 빈 배낭만 메고 밖으로 도망쳤다.
구룡마을 4구역에서 40년 동안 살았다는 70대 조모씨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슬리퍼만 신고 나왔다"며 "너무 황망한 마음이다"라고 토로했다.
조씨는 놀란 마음에 "그저 앉아있고 싶다"고 하다가 아들의 부축을 받고서야 차로 인근 호텔에 갔다.
다행히 이날 화재 초기에 발견됐고 신고 5분 만에 도착한 소방이 적극적으로 대응한 덕분에 인명피해는 없었다. 부상을 입거나 연기를 마셔서 병원으로 이송된 주민도 0명. 구룡마을에 사는 666가구 주민 대부분은 60세를 넘은 고령층이다. 조금이라도 지체됐다면 큰 인명피해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이날 화재를 키운 원인으로 쉽게 타는 합판과 비닐 등 가연성 소재로 지어진 낡은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환경이 꼽힌다. 집 겉에는 보온을 위해서 이른바 '뽁뽁이'라고 불리는 비닐이 겹겹이 붙어있고 스티로폼을 둘러 넣은 경우가 많았다. 내장재도 이른바 '떡솜'으로 불리는 솜뭉치가 차 있다. 화재가 발생할 경우 불이 쉽게 붙고 번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
주민 김재완씨는 "낡은 집, 전선 피복도 벗겨지는 등 시설 노후화로 불이 점점 더 잦아지고 있다"며 "재개발 이슈 등도 엮어있어 당장의 문제 해결이 어렵고, 여름엔 수해, 겨울엔 대형 화재가 반복되며 주민들이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화마를 피했지만 다른 구룡마을 주민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구룡마을 주택 및 시설 구조가 대부분 비슷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불이 옮겨붙었다면 삽시간에 마을 전체로 번졌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들 역시 오전 내내 불안에 떨어야 했다.
4구역과 떨어진 곳에 사는 70대 주민 김모씨는 "새벽부터 큰 소리에 잠을 깼다. 이후 불안한 마음에 집에 있지를 못하겠다"라며 "여름엔 물난리난거 이제 겨우 복구했는데 겨울엔 불난리"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화재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소방과 경찰은 조사를 통해 정확한 원인을 파악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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