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원화값 안정에 … 식품값 빼고는 물가 진정세
공산품 생산가격 둔화 지속
내달 금통위 금리동결 여부 주목
소비자물가에 선행하는 생산자물가가 2개월 연속 내려가면서 물가가 완연한 하락 국면에 진입했다는 신호가 짙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물가 안정을 위해 사상 처음으로 7회 연속 기준금리를 올렸던 한국은행이 긴축 기조에 변화를 줄 가능성이 커졌다.
20일 한은에 따르면 지난달 생산자물가지수는 전월보다 0.3% 하락하며 두 달 연속 내렸다. 전년 동기보다는 여전히 6% 높은 수준이지만 증가폭은 6개월 연속 줄어들었다. 생산자물가는 국내 생산자가 국내 시장에 출하하는 생산품의 가격을 지수화한 것으로, 통상 최종 물가에 선행한다고 여겨진다. 이 때문에 지난해 중순 6%를 넘나들었던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하락 안정 국면에 접어든 것 아니냐는 예측이 나온다. 지난달 하락한 것은 국제유가와 환율이 내리며 공산품 생산가가 떨어진 영향이 컸다. 석탄 및 석유제품(-8.1%), 화학제품(-0.9%) 등이 내린 영향으로 공산품 전체는 전월보다 1% 하락했다. 다만 농림수산품은 농산물(8.2%)과 수산물(3.1%) 모두 오르며 전월 대비 4.9% 상승했다. 지난달 기온이 평년보다 낮아 농가 난방비가 오른 것이 출하 가격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전력, 가스, 수도 및 폐기물 분야는 전력, 가스, 증기 항목이 0.3% 오른 영향으로 전월보다 0.3% 상승했다. 산업용 도시가스 요금 인상에 따른 결과다.
지난해 연간 상승률은 국제유가와 달러 대비 원화값 폭등으로 2008년(8.6%) 이후 최고치인 8.4%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물가를 끌어올렸던 유가와 환율 모두 고점 대비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다. 지난해 초중순 배럴당 120달러까지 치솟았던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같은 해 11월 90달러 수준에서 지난달 70~80달러대로 낮아졌다. 올해엔 70달러대에서 움직이다 이날 기준 80.18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 한때 달러당 1400원대였던 환율도 꾸준히 떨어지며 1200원대 초반까지 하락한 상태다.
통화정책의 첫 번째 고려 요인인 물가가 누그러지며 한은의 행보가 주목된다. 시장에선 2021년 8월부터 이어진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마무리됐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금융통화위원회가 다음달 회의에서 금리를 현 수준인 3.5%로 동결하면 이 같은 전망이 힘을 얻게 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최근 공개 석상에서 "물가에 중점을 두면서도 경기, 금융 안정과의 '트레이드 오프(상충관계)'도 면밀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생산자물가 상승 주원인이었던 원유, 원자재 가격이 떨어지면서 금통위의 금리 인상 유인이 적어진 상태"라면서 "2월엔 동결될 가능성이 많이 높아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은이 통화정책 선회를 결정하면 연말께 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질 수 있다. 주 실장은 "이미 시장금리가 금리 인하 기대감을 반영해 떨어지고 있는 만큼 올 4분기에는 금리 인하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향후 물가 움직임을 예측하기엔 불확실성이 높다는 입장이다. 서정석 한은 물가통계팀장은 "이달 전기요금과 생활용품 가격이 인상되는 반면 환율은 하락하는 등 (생산자물가) 상방 요인과 하방 요인이 혼재해 있다"며 "하락 흐름이 이어질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류영욱 기자 / 양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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