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달새 200원 싸진 1달러…'환율 1100원대' 시대 돌아올까
강(强)달러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행진이 막바지에 다다르면서다.
이에 원/달러 환율은 1230원대로 석 달 사이 200원 가까이 떨어졌다. 일각에선 일본의 초완화적 통화정책이 끝나고, 올해 유럽 경제가 잘 버텨준다면 원/달러 환율 1100원대 시대가 돌아올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0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3.4원 오른 1235.5원에 마감했다. 이날 환율은 3.9원 오른 1236원으로 출발해 장 초반 달러 약세 흐름의 영향을 받으며 하락세를 보였다.
그러나 오후 들어 달러 매수세 유입에 오름세로 돌아섰다. 중국인민은행이 이날 사실상의 기준금리인 대출우대금리(LPR)를 동결했고, 이에 역외 위안/달러 환율이 6.79위안대까지 상승한 것도 환율 상승 압력으로 작용했다.
지난해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을 펼친 것은 미 연준의 숨가쁜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한 달러화 강세의 영향이 컸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9월 22일 종가 기준으로 1409.7원으로 2009년 이후 약 13년여 만에 처음 1400원선을 넘어서더니 같은달 28일에는 1439.9원으로 마감하며 연고점을 찍었다. 지난 9월엔 달러 인덱스도 114를 돌파하면서 2002년 5월 이후 20년 4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해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로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은 최근 다소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 인플레이션(지속적 물가상승)이 한풀 꺾이면서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 인상 행진에 제동을 걸 것이라는 기대가 커진 데 따른 것이다.
전날 미국 노동부는 지난해 12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전년 동월보다 6.2% 올랐다고 발표했다. 전월 상승 폭(7.3%)에 비해 1%포인트 이상 낮아진 것으로 최근 9개월간 가장 낮은 수치다. 앞서 지난 12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의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도 전년비 6.5% 상승을 기록해 시장 예상(6.5%)에 부합하며 전월(7.1%) 수준을 밑돌았다.
환율은 지난해 10월 말 이후 가파르게 하락세를 보였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11월 한 달 동안 100원 넘게 하락했다. 지난해 10월말부터 현재까지 약 석 달 만에 192.2원이 내려 지난해 8월 이후 반년 만에 1200원대로 돌아왔다. 미 연준의 고강도 긴축으로 지난해 9월 말 114선까지 올랐던 DXY도 현재 102선으로 내려섰다. 지난해 6월 이후 7개월 만에 최저치다.
전문가들은 올해 환율 흐름을 결정지을 핵심 변수로 미국 통화정책과 일본 중앙은행(BOJ)의 통화정책 변화, 유럽과 중국의 경기 등을 꼽았다.
우선 환율 상승을 이끌던 미국 통화정책 전환(피봇)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는 평가다. CME(시카고상품거래소) 페드워치 툴에 따르면 미 현지시간 19일 오전 10시 30분 기준으로 시장 참가자들은 97.2%의 확률로 연준이 현 4.25~4.5%인 기준금리를 오는 다음달 1일 0.25%포인트(p) 인상하는 '베이비스텝'을 밟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0.5%포인트 인상의 빅스텝 확률은 2.8%다. 페드워치 툴에서는 경기 둔화 우려 등으로 올해 11월에는 연준이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이 57.1%에 달한다.
여기에 BOJ의 정책 변화 기대감도 원/달러 환율 하락을 부추길 수 있다. 지난 18일 일본은행은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단기금리를 -0.1%로 동결하고, 장기금리 지표인 10년물 국채 금리는 0% 정도로 유도하는 금융완화 정책을 유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시장에선 오는 4월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의 퇴임 전후로 전격적인 정책 전환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원/달러 환율이 1200원 아래로 내려갈 가능성도 열어둬야 한다고 진단했다.
안영진 SK증권 연구원은 "연준의 금리 인상이 사실상 올해 종료될 것으로 보이는 점과 유럽 경기 심리지표가 반등하고 있는 점, 생각보다 따뜻한 유럽의 겨울철 날씨로 인한 에너지 수급 불안 해소 등이 달러화 강세를 누르는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며 "BOJ가 올해 안에 초완화적인 정책에서 전환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 또한 달러를 끌어내리면서 원/달러 환율을 하락시키는 재료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안 연구원은 1100대 중후반을 올해 환율 저점으로 봤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수출 및 무역수지 개선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있고 북한과 관련한 지정학적 위험 등 원화 가치를 위협하는 요인들이 산재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약세로 전환된 미 달러 가치의 흐름이나 일본 엔화나 중국 위안화 같은 주변국 통화의 강세 등은 원화 역시 강세 흐름을 유지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며 "금년 중 원/달러 환율은 1200원 선 아래로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다만 미국 경기침체 등의 변수가 환율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안 연구원은 "만약 미국 경기침체가 급격히 발생해 연준이 금리인하 시기를 앞당길 수밖에 없다면 시장에서 극단적인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나타나고 신흥국들 자산은 저평가를 받기 때문에 금리 인하에 나서기 전까지 원/달러 환율은 급격히 1300원대까지 반등할 수 있다"면서도 "원화 가치가 크게 흔들릴만한 사건이 생기지 않는다면 지난해처럼 1400원대까지 올라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유효송 기자 valid.so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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