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바이올린 연주 들으며 떠나"... 20세기 풍미했던 윤정희, 천상 스크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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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를 형성하며 한국 영화를 이끌었던 배우 윤정희(본명 손미자)씨가 프랑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방학 때 귀국해 영화 출연을 하며 활동을 지속했으나 1976년 백건우씨와 프랑스에서 결혼하며 영화계를 사실상 떠났고, 파리 제3대학 대학원에서 영화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백씨는 2019년 12월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시상식에서 윤씨가 공로상을 받자 아내를 대신해 "저희 부부는 항상 여성영화인과 한국 영화를 응원한다"는 소감을 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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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 문희, 남정임과 '트로이카' 형성
1960~7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를 형성하며 한국 영화를 이끌었던 배우 윤정희(본명 손미자)씨가 프랑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9세.
20일 오후 윤씨의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77)씨는 공연 담당 기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제 아내이자 오랜 세월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온 배우 윤정희가 2023년 1월 19일 오후 5시(현지시간), 딸 진희의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며 꿈꾸듯 편안한 얼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라고 밝혔다. 백씨는 "생전 진희 엄마의 뜻에 따라 장례는 파리에서 가족과 함께 조용하게 치를 예정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고인은 10여년 전부터 알츠하이머를 앓아 왔다.
1944년 부산에서 태어난 윤씨는 광주에서 자랐다. 조선대 영문학과 재학 중이던 1966년 합동영화사 주최 배우 공모에서 1,200대 1의 경쟁을 뚫고 선발됐다. 데뷔작은 강대진 감독의 ‘청춘극장’(1967)이었다. 고인은 이 영화로 대종상 신인상, 청룡영화상 인기여배우상을 수상하며 곧바로 스타덤에 올랐다.
고인은 비슷한 시기 데뷔한 문희(76), 남정임(1945~1992)과 함께 ‘트로이카’로 불리며 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매해 30~60편가량 촬영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멜로드라마와 문예물, 액션 영화, 사극 등 장르와 역할을 가리지 않았다. ‘강명화’ ‘안개’ ‘까치소리’(1967), ‘아빠 안녕’ ‘장군의 수염’ ‘내시’(1968), ‘물망초’ ‘이조 여인잔혹사’(1969), ‘그 여자를 쫓아라’ ‘황금70 홍콩작전’(1970) 등이 초기 대표작이다.
영화 촬영으로 바쁜 일정 중에도 학업을 이어갔다. 우석대 사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 연극영화과 대학원에 진학해 논문 ‘영화사 측면에서 본 한국 여배우 연구: 1903~1946년을 중심으로’로 석사학위를 국내 여배우 최초로 받았다. 전성기를 누리던 1973년엔 돌연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 세간을 놀라게 했다. 방학 때 귀국해 영화 출연을 하며 활동을 지속했으나 1976년 백건우씨와 프랑스에서 결혼하며 영화계를 사실상 떠났고, 파리 제3대학 대학원에서 영화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 남편과 유고슬라비아 여행을 갔다가 북한 공작원에게 납북될 뻔한 위기를 겪기도 했다.
고인은 1980년대 들어서도 드문드문 활동을 이어갔다. ‘자유부인 '81’(1981)과 ‘위기의 여자’(1987) 등에 출연하며 건재를 알렸다. ‘만무방’(1994) 이후 한동안 활동을 중단했다가 ‘시’(2010)로 16년 만에 복귀하여 눈길을 끌었다. '시'에서는 노년에도 시인의 꿈을 꾸나 냉혹한 현실을 맞이하게 된 여인 미자를 연기했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역할이었는데, 고인은 당시 초기 알츠하이머 상태였다고 나중에 알려졌다. ‘시’는 제63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각본상을 받았고, 고인은 청룡상과 대종상, 아시아 태평양 스크린상 여우주연상 등 국내외 여러 영화상을 수상했다. 한국영상자료원에 따르면 고인은 280편에 출연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고인은 한국 영화계에서 여배우로서 티켓파워를 발휘한 첫 사례에 해당한다”며 “현대적 한국 여배우의 위상을 정립했다”고 평가했다. 김영진(명지대 교수) 영화평론가는 "도회적이면서 자의식이 강했던 배우"라며 "독서량이 많아 교양이 풍부했던 배우로 기억하는 영화인들이 많다"고 전했다.
고인은 남편과의 관계로도 주목받았다. 고인의 알츠하이머 병세가 심해져 지인조차 못 알아보기 전까지 부부는 항상 붙어 다녔다. 백씨의 연주회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고인이 매번 동반했다. 고인의 영화 관련 일정이 있으면 백씨가 함께했다. 두 사람은 휴대폰 하나를 같이 쓰기도 했다. 고인은 2010년 4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만나는 친구도 엇비슷하고 항상 같이 있으니 휴대폰을 각자 가질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백씨는 결혼 후 40년 넘게 아내의 머리칼을 잘라 줬고, 고인은 백씨의 공연용 구두를 직접 닦아준 사연으로도 유명하다. 백씨는 2019년 12월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시상식에서 윤씨가 공로상을 받자 아내를 대신해 “저희 부부는 항상 여성영화인과 한국 영화를 응원한다”는 소감을 보내기도 했다.
2019년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사실이 백씨를 통해 알려져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2022년엔 고인의 동생이 백씨와 바이올리니스트 딸 진희씨를 프랑스 법원이 고인의 재산·신상 후견인으로 지정한 데 대한 이의신청을 냈다가 최종 패소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진희씨는 국내 법원에도 성년 후견 신청을 냈고, 고인의 동생은 이의를 제기해 소송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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