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미래] 희망의 서사
해마다 오는 명절이지만 올해는 유독 가족의 품이 따스하게 느껴진다. 바깥세상이 너무나 암울하게 요동치기 때문이다. 일자리는 흔들리고 물가는 올라가고 돈은 구하기 힘든 세상으로 급속히 이동하면서, 살림살이가 어려워지고 인생 계획이 어그러져 앞날이 막막해진 사람들이 곳곳에 너무나 많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문학동네 펴냄)에서 작가 김연수는 말한다. "모든 믿음이 시들해지는 순간이 있어. 인간에 대한 신뢰도 접어두고 싶고,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때가. 그럴 때가 바로 어쩔 수 없이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할 순간이지." 지금이 바로 우리가 함께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할 때인 듯싶다.
이 소설집에 실려 있는 단편소설 8편은 모두 결말 이후의 삶을 다룬다. 하나의 삶이 완전하게 끝난 자리에서 여전히 삶이 이어질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 결말을 이별, 재난, 죽음, 종말 등으로 바꾸어도 좋겠다.
표제작은 동반자살을 결심한 두 대학생이 시간여행을 주제로 한 '재와 먼지'란 작품을 접하면서 일어난 일을 다룬다. '재와 먼지'에도 역시 사랑의 종말을 깨닫고 동반자살을 선택하는 두 연인이 나온다. 그러나 그 순간 두 연인은 하루하루 과거의 삶을 살아간다. 내일은 어제가 되고, 모레는 엊그제가 되는 식이다. 덕분에 날이 갈수록 완전히 소진된 사랑은 기쁘고 설레며, 신선하고 두근거리는 사랑으로 변해간다.
미래를 모두 당겨 써버린 이들은 불행하다. 이미 좋은 것을 다 겪었으니, 남은 삶은 공허하고 무의미하다고 여기는 절망만이 존재한다. 반대로 가장 좋은 일이 가장 나중에 온다고 상상할 수 있는 이들은 행복하다. 가장 나쁜 상황에 빠져 있더라도 나날의 분투를 통해 더 좋은 삶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는 까닭이다.
운동선수들은 신체적 한계에 이르러 더 이상 못하겠다 싶을 때, 계속 움직이다 보면 몸 안에서 두 번째 바람이 부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갑자기 고통이 줄어들면서 계속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마음이 일어선다. 인생도 다르지 않다. 버티고 버티다 세상의 핵펀치에 KO당한 후 링 바닥에 누워서 기진맥진할 때, '조금만 더' 어디선가 바람의 목소리가 속삭인다.
자기 삶의 미래에 대해 어떤 서사를 갖느냐는 무척 중요하다. 특히 좌절하고 절망했을 때는 더욱더 그렇다. 두 번째 바람이 불어올 때까지 우리를 이끄는 것이 가장 좋은 날이 미래에 있으리라고 내기를 거는 일이다. 작가는 말한다. "우리가 달까지 갈 순 없지만, 갈 수 있다는 듯이 걸어갈 순 있다. 희망의 방향만 찾을 수 있다면." 설에 이러한 희망의 서사를 주고받았으면 좋겠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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