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한 노력, 시민들이 알아줬으면” “반드시 회복될 것” 핼러윈 참사 겪은 이태원 상인들의 설 맞이
“이렇게 매일 가게 문 열고, 음식을 만들고, 그걸 반복하고... 저희가 노력하고 있다는 걸 시민들이 알아 주셨으면 하죠.”
지난 19일 오후 6시쯤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의 한 주점. 사장 권모(29)씨가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쌀쌀한 날씨에 10분 동안 가게 앞 거리 300m를 지난 시민들은 50여 명에 그쳤다. 이날은 이태원 상인들이 상권을 살리기 위해 음식값을 최대 30%까지 할인해주는 행사를 진행한 날이었다. 권씨는 음식에 사용할 쪽파 수십 개를 식칼로 다지고 매장 내 식탁들을 정리했다. 권씨는 “아직 손님이 많이 늘었다는 체감이 들지 않고 이번 설에도 매출이 어찌 될 지는 잘 모르겠다”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참사가 있고 나서 많은 상인들이 힘들어하고 있지만 그저 하루하루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으로 장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핼러윈 참사 이후 2개월 이상 지났지만 이태원 상권은 아직까지 참사 여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태원 상인들은 새해의 꿈을 품고 거리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태원 일대 60여 개 매장은 지난 19일부터 다음 달 28일까지 모든 메뉴 가격을 10~30% 깎아주거나, 일부 메뉴는 아예 무료로 제공하는 행사를 열었다. 지난 13~14일 주말 동안 1차로 이 행사를 진행했는데, 손님들과 상인들의 반응이 좋아 재개됐다. 다음 달 4~5일에는 이태원 곳곳에서 음악 공연, 미술 치료 등 추모 자선 캠페인을 진행할 예정이다.
상인들은 행사 취지에 대해 “사고를 없었던 일로 돌릴 수는 없어도 이태원이 점점 괜찮아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할인 행사를 주도한 상인 A(41)씨는 “평소에는 설에 이태원을 찾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번에도 예년처럼 찾아줄까 걱정스럽다”면서도 “설을 기점으로 시민들이 이태원을 많이 찾아주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A씨는 “이태원은 지금까지도 많은 일을 겪었지만 이렇게 남아있지 않느냐. 언젠가는 반드시 회복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이태원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B(40)씨는 “참사 이후 한 달에 5000만원 넘게 손해를 보면서도 계속해서 장사를 하고 있다”며 “이렇게라도 문을 계속 열고 상인들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찾아오지 않겠느냐”고 했다. 포장마차를 운영하다가 휴업 중인 정효봉(41)씨도 “설 연휴 대목에도 사람이 많이 찾지 않을 것 같아 희망적인 상황은 아니다”라면서도 “추운 겨울이 끝나고 시민들이 이태원을 다시 찾아줄 봄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나 지자체의 이태원 상인들에 대한 지원은 역부족인 상황이다. 액면가보다 10%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이태원 상권 회복 상품권’도 나왔지만, 다른 지역의 상품권과 달리 인기가 저조한 상태다. 용산구는 지난 10일 이태원 인근 가게 2600여 곳에서만 쓸 수 있는 상품권 100억원어치를 발행했는데, 90% 가까이가 여전히 판매되지 않고 남아있다. 일반적으로 각 자치구나 지방 도시들에서 발행하는 지역 상품권은 고물가 상황에서 물건을 10% 안팎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가 높다. 설을 앞두고 18일 발행된 강남구 상품권(7% 할인)은 판매 시작 후 약 1시간 만에 130억원이 다 팔렸다. 반면 이태원 상품권은 19일 오후까지 11억원 정도만 팔렸을 정도로 찾는 사람이 적은 상황이다.
이에 일부 시민들은 “앞으로 일부러 이태원을 찾아 상인들을 응원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직장인 김모(26)씨는 “이태원 상인들도 핼러윈 참사의 피해를 크게 입으신 분들”이라며 “2~3주에 한 번이라도 이태원을 찾아 상인들에게 힘을 보태려고 한다”고 했다. 고모(29)씨도 “원래도 이태원을 자주 오는 편인데, 최근에는 조금 꺼려지기도 했다”면서도 “앞으로는 주변에서 전시나 공연이 있으면 꼭 이태원을 찾으려고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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