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타강사’ ‘유퀴즈’와 ‘세치혀’…예능에도 재현 다양성은 필요하다[위근우의 리플레이]
비교적 최근 시작한 MBC의 새 강연 예능 <일타강사>의 홍보 문구는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 이런 강의는 없었다.’ 거짓말이다. 그들의 2023년 연사 라인업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김미경, 김창옥, 이다지. 연사들의 수준이 낮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그들은 이미 강연계의 검증된 슈퍼스타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다.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은 이미 수많은 강연 프로그램과 그들의 개인 채널로 들었던 자기 개발 담론이나 소통의 태도, 국어 지식을 왜 굳이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면서까지 지상파에서 또 들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 자체로도 안일한 섭외지만, 해당 프로그램에서 한국 방송의 역사와 함께한 배우 김영옥을 K드라마 일타강사로 섭외해 생애구술사에 가까운 이야기를 들려준 것을 떠올리면 더더욱 아쉬운 일이다. 이미 강연 시장에서 이름 높은 일타강사의 강연을 한 번 더 듣는 빤한 기획보다는, 전문 연사가 아니더라도 특별한 경험과 전문성을 지닌 이들을 그 분야의 일타강사로 존중하고 경청하는 것이야말로 초기 <일타강사>가 여타 강연 프로그램과 차별화될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이었다. 가령 초기 한국 TV 방송에서 의외로 다양한 형식의 프로그램이 시도됐더라는 김영옥의 증언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대중문화 사료다. 더 좋은 건, 그처럼 한국 방송사의 일타강사로서 강연할 때, 그동안 관습적으로 주말 드라마의 생활연기 정도로 소비되던 노년 여성배우의 목소리에 정당한 권위가 부여된다. 지난해 마지막 강연이었던 부검의 서울대학교 유성호 교수의 강연까지는 시사 프로그램에서만 자주 보던 전문가가 본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죽음에 대한 성찰을 전했다는 점에서 나름 새로울 수 있었지만, 거기까지였다. 아직 10회도 채우지 못한 채 <일타강사>는 김미경, 김창옥으로 회귀한다. 앞서 인용한 홍보 문구는 그래서 허망하다. 지금까지 이런 강의, 너무 많았다.
형식적 신선함이나 도전정신의 부재에 대해 말하려는 게 아니다. 유력 방송사의 마이크를 통해 권위가 재생산되는 한국의 공론장에서 이미 유명한 이들의 익숙한 담론은 계속해서 공론장의 중심부를 차지한다. 누구에게나 성공의 기회가 있고 자기 개발에 힘쓰라는 김미경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유의미한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한국은 삶에서 겪는 결과적 불평등을 거의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데 익숙한 사회다. 심지어 불평등을 겪는 당사자조차. 김미경의 강연이 인기 있는 건, 그것이 새로운 시각을 열어줘서가 아니라 이미 주류이자 내재화된 담론을 최대한 긍정적인 서사로 구성해내기 때문이다. 김창옥이 전하는 소통의 심리학도 마찬가지다. 불필요한 갈등과 감정 소모를 막고 원만한 대화를 이끄는 데 그의 테크닉은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또한 많은 경우 소통에서의 갈등은 자원의 불평등한 배분과 도덕적 옳고 그름의 차원에서 벌어진다. 때로 어떤 대화는 투쟁적이어야만 하지만, 이런 관점은 역시 비주류다. 공론장의 자원은 무한하지 않으며, 특정한 목소리가 논의의 중심부를 차지할수록 그렇지 못한 관점과 입장은 주변부로 배제된다. 이것은 그 자체로 일종의 부익부 빈익빈이거니와, 새로운 문제들을 발견하고 쟁점화하는 민감성은 기득권보다는 그 문제들에 부딪히기 일쑤인 비주류에서 더 발달한다. 비록 파일럿으로 끝났지만 교양 토크쇼인 MBC <오프 더 레코드>에선 스쿨미투 고발 당사자가 출연해 교내 권력형 성비위에 대한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에 대해 들려준 바 있다. 진정 우리의 세계를 넓혀주는 건 이런 이야기일 것이다.
강연 예능 ‘일타강사’ 안일한 섭외
검증된 슈퍼스타 위주의 식상함 속
배우 김영옥의 ‘한국 방송사’ 편은
주말 드라마 생활연기로 소비되던
노년 배우에 정당한 권위 부여해
트렌스젠더·탈북민 나온 ‘세치혀’
이들이 발언권을 얻는 것만으로
시청자 일반의 예측을 넘어서는
새로운 경험적 진실이 제시되고
그 중 일부는 마음을 움직이기도
강연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이야기를 경청해준다는 점에서 최근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이하 <유퀴즈>)의 섭외가 아쉬운 것도 그래서다. 이미 이 지면을 통해 과거엔 길 위에 나가 다양한 장삼이사의 목소리를 담아내던 <유퀴즈>가 유명인사의 성공담이나 화제 인물의 스토리로 대체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밝힌 바 있다. 최근 방영분에서 다양한 패러디 졸업사진으로 유명한 의정부고등학교 학생이 출연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소재 선정에서 예능보다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MBC <뉴스데스크>에서 ‘시청자가 뽑은 오늘의 뉴스’로 의정부고의 졸업사진 소식을 전한 게 2018년이다. 축구선수 이승우 패러디로 유명해져 이번 방송에 출연한 학생 역시 5개월 전 MBC 공식 뉴스 유튜브 채널인 <엠빅뉴스>에 소개된 바 있다. 비연예인 출연자조차 이미 미디어의 주목을 상당히 받은 이들 위주로 섭외하는 <유퀴즈>에서 과거와 같은 의외성과 다양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출연한 학생들이 기득권은 아니며 자신에 대한 관심에 신기해하는 모습은 귀엽다. 다만 이미 수년 동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여러 미디어를 통해 수없이 소개됐던 의정부고의 졸업사진을 마냥 즐겁고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소개하기 위해선, 2020년 의정부고에서의 ‘관짝소년단’ 패러디로 인종차별 논란이 생기고 이를 당사자로서 지적했던 샘 오취리가 정작 여론의 역풍을 맞고 방송에서 퇴출되었던 사건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굴어야 한다. 미디어의 영향력이란 누구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주는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누구를 어둠 속에 남겨두느냐는 것으로 드러난다.
위근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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